길 위에서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주말이라 좀 한가할 줄 알았는데 정형외과 안이 온통 와글와글 장터다. 진료 대기실 옆 공간조차 가림막도 없이 도수치료 중인 침대가 수두룩하고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로 병원이 북새통이다.
진료 대기실도 환자가 밀려있어 자연히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화면 속에서 중년의 여자 환자가 손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평생을 쉴 새 없이 일하면서 살아야 했다는데 한눈에도 고단한 삶의 흔적이 보인다.
통증은 참는 게 아닌데 미련하게 버티다 병을 키운 내 경우야 할 말이 없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온 환자의 사연이 측은하다. 그런데 그렇게 가만히 보고 있으니 뜬금없이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에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몸이 아프니까 괜히 마음까지 약해지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아파서 우울 모드인데 노래 가사를 떠올리니 마치 인생의 끝자락에 혼자 남은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다. 또 조금 이상한 것이 예전에는 어디가 아프면 통증에만 골몰했는데 요즘은 마음까지 흔들린다고나 할까? 몸이 좀 안 좋다고 하면 주위에서도 “다 그런 거다”,”이젠 인정하고 살아야 된다“는 얘기뿐이니 퇴직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아서 마치 딴 사람이 된 느낌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까? 그동안 자전거도 타고 홈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서 몸 상태가 조금 좋아지니까 무리하게 조깅 연습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천천히 강도를 높여야 했는데 첫날 100m 뛰기만으로도 헐떡이는 체력을 가지고,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계속해서 일주일 만에 거리를 10km로 늘렸더니 기어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과거 재직 시절에 꾸준히 즐겼던 조깅도 어느 날 찾아온 좌골신경통으로 접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하필이면 또 그 부위에 상처를 입었다.
운동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통증이 와도 스스로 운동을 멈추지 못한다. 통증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지만 참고 이겨내면 성취감도 들고 또 기본 체력이 있으니 며칠 쉬면 쉽게 회복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에서 부상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찾은 병원에서 몇 번의 주사와 물리치료로도 차도가 안 보이자 나는 인터넷과 지역의 ‘맘카페’ 등을 뒤적이며 본격적인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요즘은 ‘맘카페'에 들어가면 병원의 시설이나 주차 환경은 물론이고 어느 병원의 어느 의사가 실력이 뛰어나고, 간호사는 어떻고 등 온갖 정보가 상세하게 올라온다. 댓글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해가며 치열한 검색 끝에 마침내 한 정형외과를 찾아냈다.
- 00 정형외과 추천해요. 과잉진료 절대 없으시고 약간 츤데레 쌤이 계세요.
- 과잉진료는 안 하시는데 의사샘이 좀 독특하세요
- 개개인의 차이가 있나 봐요. 전 너무 좋았어요. 친절한 설명, 정확한 진단하신 것 같고 암튼
전 대만족이요
사람은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속성이 있나 보다. 주치의에 대한 표현이 ‘츤데레’나 ‘독특’인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과잉진료는 안 한다고 하니 ‘친절한 설명', ‘정확한 진단'이란 표현이 더 크게 부각돼 보인다. 내 병만 잘 고쳐줄 수 있다면 설사 괴팍한 의사면 어떤가?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의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40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에 약간 가늘면서 쏘아보는 듯한 눈매의 소유자. 걸치고 있는 얇은 안경테 때문인지 눈매가 더 매서워 보인다.
나는 약간 긴장한 상태에서 유튜브를 통해 얻은 의료 정보를 토대로 내 통증의 원인과 부위에 대해 설명을 했다. 사실 얘기를 하는 내내 의사가 듣기를 꺼릴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 말을 들어주고 있다. 이후 우리는 ’근육의 염증‘이라는 것이 곪았다는 것인지, 찢어졌다는 것인지, 아니면 부어있다는 것인지 등에 관해 문답을 이어갔고 마침내 학술포럼에서조차 이 부분에 대한 정의가 분분해 의사 사이에서도 소통의 오류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누게 됐다. 참 친절한 의사다.
‘바램’이라는 노래의 가사와는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의사가 ‘내 얘길 들어준다’고 생각하니 여기에서 완치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믿음 때문일까? 나는 한 번의 주사 치료만으로도 몸 상태가 월등히 나아졌음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평소에 허리만 안 아프면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를 하셨는데 그 고통을 흘려버리고 지나친 것이 너무나 죄송했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을 때는 무슨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아무튼 세상이 복잡하고 힘들다고 느꼈는데 정작 몸이 아프니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고통만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요즘은 무언가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혀도 좌측 엉덩이 깊은 부위에 통증이 없다는 게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보면 내 힘으로 걸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건 어떤가? 그냥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제는 그런 의미조차 새롭게 다가온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따라 무너진다. 노년의 초입(初入)에 들어선 사람 중 건강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대체로 또래에 비해 노화의 속도가 빠른 편이다. 불편한 몸이 생각을 끌고 가니 생각이 자꾸 움츠러들고 수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두 해 지나 그늘진 얼굴에 주름이 하나둘 더해지면 그게 바로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노년의 삶이 두렵고 겁도 난다. 무엇을 한다고 한들 갈수록 몸이 약해질 것은 분명하니까.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산다는 건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죽을 건데.
운동한다고 세월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는 동안은 내 자존감을 지키고 싶다. 그런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니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 중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가 큰 것은 역시 ‘몸만들기’였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과 체형에 자신이 생기니 생각이 바뀌고 삶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지나친 욕심과 잘못된 운동 방식으로 부상을 거듭하긴 하지만 그럴수록 몸의 중요성에 대해 더 깊이 깨닫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된다.
부모 세대에게 들어 익숙한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다 소용없는 나이’라는 말도 그 나이가 80대나 90대처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건강을 잃은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몸은 현재의 내 생각과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곧 나의 정체성이다.
모두의 소망처럼, 나 역시 아무리 늙는다 해도 내 몸 하나는 내 의지와 힘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
몸이 자존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