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룰 수 없는 일

어느 날 쓴 일기

by 하리니

20201204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잠시라도 들어가 앉을 곳이 없어 지하철 역 입구 한편에 앉아 쓴다.


미뤄둔 일을 하나씩 해내고 있다. 그동안 졸업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미뤄둔 일들이다. 예를 들면,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 맡기기나 컴퓨터 부품을 구입해 설치하는 일들. 이런 것들을 하나씩 해내며 소소한 보람을 느끼는 게 요즘 참 즐겁다. 겨울용 외투를 세탁소를 맡기면 따뜻한 외투가 하나 생기는 기분이 든다. 컴퓨터 부품을 추가하면 더 조용하고 빨라진 내 컴퓨터가 나를 어디든 데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미뤄둔 일들은 귀엽다. 필수적인 일이 아니어서 그동안 밀려왔다는 게 귀엽다. 그러다 자신의 때가 오면 어김없이 보람을 줘서 귀엽다. 이 일들을 한다고 해서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지 않지만, 조금은 삶이 개선되는 기분이 들어 좋다. 두 번 다시는 이 일들을 미루지 않으리..라는 장담 따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어차피 미뤄도 되는 일이라서 좋다.


하지만 개중에는 미루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도 있었다. 어깨를 살피러 병원 진찰을 받는 일은 미루지 말았어야 했다. 엉겁결에 촬영해 본 내 뼈 사진에서 목디스크 초기 증상이 보인다. 더 늦지 않아 다행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일도 미루지 말았어야 했다. 안부를 묻거나 애정표현을 하는 건 사소하지만 중요하고, 미뤄지면 안 될 일이다. 이런 일들은 보람을 느끼며 기분 좋게 하게 되지 않는다. 그나마 안도의 한숨이나마 내쉬면 다행이다.


미뤄도 되는 일과 아닌 일을 분별하는 것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일기에 이 내용을 쓰게 되었다. 사실 이 내용은 쓸거리도 많지 않고, 재미있는 주제도 아니기에 다음에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미루지 말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기에 오늘 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만 한달 체험 후기 2 -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