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치매 진단 후, 엄마의 첫 하소연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와요] 시리즈

by 캔디작가

"잘 지내니?"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무거웠다.


이런저런 안부를 나눈 후, 지난번 택배로 보낸 베지밀 얘기를 꺼내신다. 당분이 적게 들어간 담백한 베지밀을 보냈었는데, 처음엔 밋밋했지만 먹다 보니 괜찮다며 같은 제품을 또 보내달라고 하신다.


"엄마, 아빠는 어떠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엄마는 처음으로 아빠의 상태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하셨다.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어."


작년부터 의심스러웠지만 아빠의 고집으로 올해 겨우 병원에 모셔갔다고 하신다. 약을 드시고 있지만 하루하루 상태가 더 안 좋아진다고 하신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하지만 숫자로 접했던 치매가 우리 가족의 현실이 되었을 때, 그 무게는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어제는 냉장고 문을 열어두고 잤더라."

"요즘은 자꾸 물건을 어딘가에 두고는 잊어버려."


평소 힘든 내색을 잘 안 하시는 엄마가 오늘은 아빠 상태에 대해 조금씩 하소연을 하신다. 나에게 처음 말한다며 아빠의 치매 증상들을 얘기하시고는 몸도 마음도 힘들다고 하신다.


"엄마, 많이 힘드시죠?"


그 말에 엄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작은 한숨 소리가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치매로 고생하셨는데, 아빠까지 그러시니 엄마의 뒷바라지는 끝이 없어 보인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온갖 고생을 다 하시고, 자식들 시집장가 다 보내놓고도 이제 남편 뒷바라지까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우울증 발병률은 일반인의 3배라고 한다. 신체적 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배우자가 주 돌봄자인 경우 그 부담은 더욱 크다.


"엄마,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내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을까.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실질적으로 해드릴 수 있는 건 정말 제한적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가 원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마음을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다.


"엄마, 힘들면 언제든 전화하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고마워. 네가 있어서 엄마는 든든해."


그 말씀에 오히려 내가 울컥했다.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는 것 같은데, 엄마는 내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하신다.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치매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증상의 진행 과정, 돌봄 방법, 가족들이 알아야 할 것들. 직접적인 도움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다.


치매는 환자만의 병이 아니다. 가족 모두의 병이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도 충분한 지원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절실히 깨달았다.


그날 밤, 나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언제든 저한테 얘기하세요. 엄마가 힘들어도 제가 여기서 해 줄 게 없어서 죄송해요."


가족이라는 건 이런 것이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도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 함께 아파하고, 함께 견뎌내는 것.


엄마의 첫 하소연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님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걸.


내일은 베지밀과 함께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찾아서 보내드려야겠다. 멀리서나마 엄마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질 수 있도록.


가장 가깝고도 먼 사람, 엄마.

이제는 그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다.

하나씩, 천천히.

keyword
이전 02화엄마에게 전화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