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와요]시리즈
'엄마한테 전화 한지 오래된 것 같은데, 오늘 저녁에 전화해야겠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중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최근 아빠 문제로 고생이 많으신 엄마에게 자주 안부를 묻지 못한 게 괜히 미안해졌다.
사무실에서는 편히 통화하기 어려우니 집에 가서 전화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 보니, 또 다른 핑계들이 줄줄이 늘어선다.
아이 밥 먹이고, 숙제 봐주고, 설거지하고...
어느새 시간은 밤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엄마에게 전화하는 게 어려울까.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달려가 하루 있었던 일들을 쏟아냈다.
친구와 싸운 일, 선생님께 칭찬받은 일, 급식이 맛없었던 일까지도 모든 게 엄마와 나눌 이야기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와의 대화가 부담스러워졌다.
"잘 지내니?"
"응, 바빠."
이런 뻔한 대화의 반복.
심리학자들은 이를 '성인기 부모-자녀 관계의 재정립 과정'이라고 한다. 독립한 자녀가 부모와의 새로운 관계 방식을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럽다고 해서 쉬운 건 아니다.
특히 엄마의 목소리에서 피로가 느껴질 때면 더욱 그렇다.
뭔가 힘든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나는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없는 걸까.
그 무력감이 나를 더욱 전화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오늘도 전화하겠다고 다짐해놓고는 또 미뤘다. 매번 이런 식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다!
'아, 엄마에게 전화하기로 해놓고 깜빡했네.'
마음이 통했는지 엄마가 먼저 전화를 주셨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엄마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셨구나. 자식에게 전화하고 싶지만 바쁠까 봐, 귀찮을까 봐 망설이셨을 거라는 걸.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걸까.
서로를 생각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게 되는 것.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조심스러워지는 관계.
"엄마, 먼저 전화 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야, 바쁠 텐데 미안해."
이 짧은 대화 속에 우리의 모든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완벽한 대화를 기대하지 말자. 거창한 안부를 전하려 하지 말자. 그저 "엄마, 오늘 뭐 하셨어요?"라는 간단한 인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때로는 침묵도 괜찮고, 어색함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엄마와 나, 우리는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다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건 서로를 향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 뿐이다.
내일은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보자.
"엄마, 저예요.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이 한 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가장 가깝고도 먼 사람, 엄마.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여전히 울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마음도, 이 거리감도, 모두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내 아이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엄마도 처음 엄마 하는 거야. 너도 처음 자식 하는 거고."
서로 배워가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