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와요]
둘째가 간식을 먹었더니 배가 많이 안 고프다며 밥을 남겼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살 찌니깐 배부르면 그만먹어"라며 얘기를 했을 텐데, 이번에는 "배가 안 고프면 먹기 전에 미리 밥을 덜었어야지!"라며 잔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힘들게 농사 지어서 우리에게 보내준 쌀인데 남기면 어떡하니? 이제 시골 할머니 쌀이 마지막이야. 이제는 우리가 돈 주고 사 먹어야 해."
아빠의 치매 진단 후, 엄마는 올해부터 과감하게 벼농사 일을 동네 다른 분에게 넘기셨다. 그동안 너무 힘들게 농사를 지으셨기에 "이제 농사 그만 지고 텃밭이나 가꾸면서 살아라"고 말씀해도 두 분 다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더니, 드디어 벼농사 일을 그만두신다고 하셨다.
우리 남매들은 모두 잘 했다며 쾌를 불렀다.
이제 우리가 먹을 쌀 걱정은 하지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자식들에게 줄 쌀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는지 말씀하셨다.
"너들에게 줄 쌀은 안 있겠나."
논을 동네 다른 분에게 임대해 준 것이기에 그에 대한 댓가를 쌀이나 돈으로 받을 것이다. 예전에는 논을 빌려서 농사를 지으면 그 논에서 나온 수확량에서 일정 부분을 때어 주인에게 주었다. 요즘은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고는 하는데 확실히 어떻게 한다는 얘기를 못 들었기에, 이번에 시골에 가면 한번 물어보려고 한다.
그렇게 부모님은 올해부터 몸이 좀 더 가벼워지셨다. 하지만 밭농사는 여전히 하고 계시기에 마냥 쉬고만 계시지는 못한다. 그러니 필요하다는 얘기도 안 했는데 밭에서 나온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택배로 보내주시는 것이다. 아마 우리들에게 보내기 위해 밭농사를 지으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추석 선물을 무엇을 사 갈까 의논하면서 얘기가 나왔다.
언니: "이제 농사도 안 지으니까 돈이 들어올 데가 아무데도 없대."
나: "이제 우리가 매달 용돈을 드려야지."
언니: "국민연금, 노령연금 다 합해서 100만 원이 조금 안 된대."
나: "그렇잖아도 남편이랑 부모님 용돈에 대해서 얘기했었어. 매달 용돈 보내기로..."
그러면서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부모님의 주 수입원이 없어졌기에 용돈을 미리 챙겼어야 하는데, 부모님이 농사를 안 지어서 '이제 좀 편하시겠지?'라는 생각만 했지 돈이 없어서 생활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
물론 부모님은 아직까지 돈이 없어서 생활을 못 한다는 얘기는 안 하신다. 우리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신 것이겠지. 그렇다고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다.
얼마 전, 엄마가 쌀을 보내셨을 때 남편이 말했다.
"제말, 받아먹지만 말고 장모님께 용돈 좀 드려. 나도 너 몰래 엄마한테 용돈 계속 드렸어."
남편은 말은 안 했지만, 시어머니께 매달 얼마씩 보냈다고 한다. 시어머니께 용돈을 보낸다고 해도 뭐라 하지 않을텐데 괜히 미안했서 나에게 얘기는 안하고 보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조금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숨기고 싶어 하니 말은 안 했을 뿐이다.
"그래, 알았어. 보낼께"
난 매번 부모님에 얻어 먹기만 하고 배풀줄은 모르는 나쁜 딸인가 보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빠를 닮았나 보다.'
어릴때부터 유복하게 자라지 못한 탓에 돈을 움켜지고 남에게 잘 베풀지를 못하는 것 같다. 그럴때면 꼭 아빠를 닮은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곤 했다. 아빠의 구두쇠 성격 싫은데...
그래서 TV나 인터넷 광고에 나오는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도 하고, 많은 돈은 안지만 매년 정기적으로도 기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내가 착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남편이 10년 넘게 기부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남편이 하는데 굳이 나까지...'라는 생각으로 나의 정기 기부금을 끊었다.
참으로 계산적이지 않는가?
어쨌든, 부모님은 이제 수입원이 끊어졌기에 자식들이 용돈을 드리는 방법밖에 없다.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는데 용돈이라도 잘 챙겨줘야 불효자식이라는 딱지라도 땔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우리는 4남매이기 때문에 형편이 되는데로 돈을 모으면 크게 부담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형제자매가 많다는 것은 이럴 때 좋은 것 같다.
엄마에게 전화하기 어려웠던 그 마음이, 이제는 "용돈 보내드렸어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따. 트렁크가에 가득 담아 주시던 농산물들이,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받기만 했던 딸에서 주는 딸로.
돌봄받던 자녀에서 돌봄하는 자녀로.
가장 가깝고도 먼 사람들, 우리 가족.
이제는 정말로 아주 많이 가까워질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