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와요]
5월이면 가정의 달이라 몸도 마음도 바쁜 계절이다. 5월 5일 어린이날부터 시작해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챙겨야 5월의 집안 행사가 마무리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달이라고도 한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있는 주말이면 매년 시댁 식구들과 펜션에 예약을 하고 1박 2일로 놀러 갔다. 그 말인 즉슨, 친정에는 가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늘 어버이날이면 카네이션과 선물을 보내고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만 전할 뿐이다.
그런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에 엄마는 '괜찮다. 시어머니한테나 잘 해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말은 그렇게 해도 1남 3녀를 뒀는데 어버이날이라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다행히도 남동생이 올케와 함께 찾아가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시댁 모임에 가듯이 올케도 남동생 따라 올케의 시댁으로 가는 것 같다.
그리고 5월 중 다른 주말에 찾아뵙겠다고 하면 '곧 있으면 아빠 생일인데, 그때 와라. 뭐하러 힘들게 왔다 갔다 하냐'며 오지 말라고 하신다. 아빠 생신이 6월이라 매년 그렇게 되는 것 같아 부모님께 늘 죄송한 마음뿐이다.
TV를 보면 시댁과의 고부갈등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정말 고부갈등이 그렇게 많은 걸까? TV는 늘 부풀려서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왜냐하면 나와 시어머니는 딱히 갈등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가? 명절에 시댁에 갔다가 늦잠을 잔 적이 있다. 형님도 함께 내려왔는데 형님은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막내 며느리는 쿨쿨 잠이나 자고 있으니 괜히 큰며느리한테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새아가. 빨리 일어나서 같이 밥해야지. 너희 형님은 벌써 일어나서 밥 준비 다 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살며시 얘기하신다. 그제서야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잠에서 깨어나서는 부엌으로 향했다.
시실 시어머니가 형님의 눈치를 좀 보는 것 같았다.
남편이 5남매 중 막내라 시어머니는 친정 부모님보다 연세가 한참 많으시다. 시아버지는 내가 결혼 후 3년 즈음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결혼 3년 차인데도 아이가 없어서 시부모님이 많이 기다렸다는 얘기를 뒤늦게서야 들었다. 사실 우리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천천히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었기에 부모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걸 몰랐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상가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데 어찌나 잠이 오던지, '아니, 이 와중에 왜 이렇게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는 거야?'라며 나를 나무랐지만 쏟아지는 피로감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유족들 쉬는 방에 들어가 쪽잠을 잤다. 상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도 차에서 잠만 잤던 것 같다.
그리고 집에 와서야 왜 그렇게 피곤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해서 임신테스트를 해봤더니 두 줄이 나왔다. 그래서 그렇게 피곤하고 잠이 쏟아졌던 것이었다.
임신을 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아버님이 이 사실을 알고 돌아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마음이 너무나 짠했다. 며칠만 더 버티셨으면 좋은 소식을 안고 가셨을 텐데 말이다.
그 뱃속에 있던 아이는 이제 그 무섭다던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시장에서 생선장수로 5남매를 키워내신 시어머니의 거친 말투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는 없었지만 시골 할머니처럼 잘 보살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시어머니가 올 3월에 세상을 떠나셨다.그런 시어머니가 올 3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올 추석에는 이제 시댁이 아니라 친정으로 먼저 차를 돌린다. 뭔가 마음이 짠하다. 친정으로 바로 간다는 즐거운 마음과 이제 시댁에 못 간다는 무거운 마음이 교차하는 것 같다.
이런 마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라앉은 마음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는 기분이다.
이제는 시어머니도 그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올 추석, 처음으로 친정에 먼저 가는 길에서 시어머니를 생각할 것 같다. 거칠었지만 따뜻했던 그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