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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Jul 22. 2021

대체로 같은 소망을 품는다는 것

   나무에서 매미가 운다. 선풍기 바람을 쐬다가 찌는 더위에 어찌할 바를 몰라 베란다를 활짝 열었더니 매미가 더 시끄럽게 징징댄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에 나뭇잎 색깔이 더욱 진한 초록빛을 내는 여름. 나는 무더위가 찾아오면  미뤄뒀던 대청소 하는 걸 즐기는데 더위에 뭘 해도 집중이 안 되던 마음이 한결 정돈되는 기분이 들어서다. 베란다 너머 이글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다가 베란다 창고를 열고 케케묵은 플라스틱 상자 뚜껑부터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나조차도 잊고 있던 이런저런 용도의 수첩이나 공책이 어수선하게 담겨있었다. 십 대 때부터 쓰던 일기장이나 스무 살에 감성이 가득 묻어나는 다이어리들. 그때만이 내 안에 살던 풋풋한 생각들의 기록을 새삼스레 펼쳐보는 일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베란다 창고를 청소해야겠다는 생각도 잊은 채 어릴 때 썼던 일기장과 벚꽃만 봐도 가슴이 이리저리 흩날리던 시절의 기록들을 찬찬히 살핀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열병처럼 마음을 앓았다. 누군가는 유난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스무 살의 한여름 밤, 나는 사람은 왜 살까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곤 했다. 어릴 때부터 존재의 이유 같은 것에 유독 관심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틈만 나면 다이어리에 그때그때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 같은 걸 끼적거리길 좋아했다.


  플라스틱 박스 안에서 소녀 일러스트가 그려진 스케줄러를 펼치자 작은 종이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2008년의 대학생 시절 스케줄러니깐 정확히 스물한 살 때다.  작은 종이에 2008년이라는 제목 밑으로 10개의 넘버링이 있었고 그 옆에는 일종의 다짐 같은 것들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스무 살 무렵의 내 귀여운 글씨체에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적힌 내용들을 소리 내어 읽었는데, 사뭇 진지한 마음이 들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열정을 가지며 살기,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나 자신은 소중하다고 하루에 세 번씩 생각하기, 중립적인 마음 유지하기, 가족 이해하기,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나에게 여유 주기, 학교 스트레스받지 않기, 심각하게 의미 부여하지 말기, 글쓰기, 현재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하며 살기··· ···.」


  이젠 기억 저편에서 추억으로 잠긴 스무 살의 나. 그때 내가 바랐던 일상의 소망들. 그 바람들은 서른 중반이 된 나의 소망들과 여전히 닮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학교 스트레스받지 않기는 직장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바뀐 정도랄까. 대체로 같은 소망을 계속 품어왔다는 건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계속 원하는 쪽에 가까운 마음일 테다. 무언가를 여전히 바라는 마음. 간절히 바라는 것 안엔 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새해가 되는 일월이면 가장 아끼는 볼펜을 골라잡아 손 글씨로 또박또박 소망을 적는다. 미묘하게 같은 소망을 반복해서 적는 일일지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새겨본다. 나는 여전히 내가 세상살이에 열정 있길 바란다. 사람과 사물을 긍정적이게 보는 사람이길 원한다. 남들보다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 탓에 간혹 나 자신을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 날엔 다시금 내가 나를 사랑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산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성격 덕분에 쉬이 지쳐도 아예 멈추지는 않기를 바란다. 특히 글쓰기가 내게 그렇다. 무엇을 하며 살던 늙어가도 계속 글 쓰는 나이길 소망한다. 나는 내가 언제나 같은 소망을 품으면서 스스로를 계속 궁금해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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