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8

D-58 2021.11.3

by 유영

그런 친절은 사양합니다.


우리 분야의 업무는 사례지 답사라고 해서 전국의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는 센터를 방문하곤 한다. 사실 센터장을 빼고는 어느 누구도 반기지 않는 업무이다. 업무를 계획하는 사람은 모든 일정을 짜야하고, 사례지 답사를 참여하는 사람들은 업무 과다로 인하여 조절해야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반갑지 않은 사례지 답사 날이다. 코로나 시대에 맞게 4인 이하로 조를 짜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원 퇴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모든 사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하루의 시간을 빼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재택도 시행되고 있으니 사무실에서 일을 처리할 시간은 점점 모자라다.


나의 조는 센터장과 함께하는 조이다. 이럴 때마다 내가 담당자에게 큰 잘못은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초에도 센터장과 함께, 그리고 나이 많은 여사님과 한문선생님과 함께 다녀왔다. 그러니 나는 꽃보다 시리즈의 이서진이나 이승기의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4명 중에 1명만 힘듦을 담당하고 있으니 참을 만하다. 우리의 답사지는 다행히도 서울이다. 서울까지 가는 길에 센터장은 본인의 수고를 자랑하고 찬양했다. 차량에 동승한 차장님의 적절한 리액션으로 센터장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1시간 반을 달려 잘 도착했다.


답사는 재미있었다. 우리 센터와는 다른 인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행정담당자(공무원)도 책임감 있게 업무를 가져가며, 센터와 협력하고 있으니 모든 사업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도통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답사지 구석구석을 보면서 사진도 찍고 질문도 하고 오랜만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회사 사내번호로 전화가 온다. 불길하다.


‘어제 낸 회계 문서가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회계팀에서 전화가 와야 하는데, 센터 내부에서 전화가 왔다. ‘민원인 전화가 온 걸까? 아니면 시청?’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리고 전화 통화를 하고나서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회사 사규상 회의비를 사용하면 출장비에서 여비가 1만 원을 제외하고 지급이 된다. 그래서 삼일 동안 회의비 영수증과 식사한 명단, 회의록 작성을 보고 또 봤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회의비 사용 내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나에게 전달했어야 했는데, 친절한 사원은 본인이 사업비 처리를 했고 나에게 사업비 사용 내역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출장 문서가 올라간 걸 보고 나서 본인이 수습을 하였고 이제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전달하기 위해 전화했다. 사업비를 사용하고 영수증을 전달 안 한 것도 조금 황당한데, 담당자인 나를 건너 뛰고 본인이 회계팀에 전화해서 문서까지 반려했는지 말이 안 나온다. 이럴 경우에는 회의비를 사용한 사람들이 여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문서를 반려하고 처음부터 문서를 다시 결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담당자와 결재권자가 결정해야하는 문제이다. 나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왜 이런 일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아니 처음부터 회의비를 왜 사용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 담당자와 상의되지 않은 회의비 사용은 자제해 달라고 이야기했고, 혹여나 사용을 하게 된다면 분명히 언제까지 전달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어제 문서 마지막 점검 전에 처장님이 ‘이거 밖에 회의비 안 썼어?’라고 물었을 때, 택시비와 회의비 사용 여부를 명확히 확인을 했다. 식사 자리에 동석한 처장님은 의아했겠지…, 하지만 전달 받은 게 없다고 이야기하자 ‘그럼 아닌가?’라는 나지막한 한마디와 함께 그렇게 결재는 시작되었다. 이렇게 나의 공지와 확인은 처절하게 무시당했고 이윽고 나의 휴가도 무시될 위기에 처해있다. 처장님이 다시 한 번 물었을 때, 그때 이야기만 해주었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내일은 그렇게 기다리던 몇 달 만의 휴가이다. 휴일근무로 인한 대체휴가로 그날만을 기다렸다. 늦잠도 자고 친구도 만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게 날아가게 생겼다. 나의 잘못이 아닌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 직원에게 그런 친절은 고맙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너무 미안해하고 나름 일을 덜어준다고 친절을 베푼 것이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사회생활 십 년이 지나도 미스터리인 문제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친절을 누군가가 베풀었을 때, 나는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어쨌든, 오늘 답사 일정을 마치고 사무실 가서 문서를 상신하고, 처장님의 결재를 거쳐 회계팀에 실물 문서를 전달하지 못하면 나의 휴가는 날아간다. 마음이 급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답사는 일찍 끝났다. 그리고 다섯시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팀장과 처장님께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문서를 만든다. 겨우 문서를 상신하고 결재를 받고 나니 6시에 다다랐다. 다행히도 회계팀 실물 문서는 조금 늦게 제출하는 걸로 끝났다.


이제 퇴사는 두 달 앞을 두고 있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007작전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뛰어다니면서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걸까? 모두들 우아하게 업무하는데, 나만 정신없는 사람처럼 하는 건 아닐까? 퇴근길에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이런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걸로 항상 끝을 맺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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