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4

D-44 2021.11.17.

by 유영

책임감의 정의


팀이 정신없이 바쁘다. 본래 퇴사를 앞두고는 인수인계를 준비한다. 파일을 정리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그리고 마음도 정리한다. 근데 이번에는 이렇게 퇴사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를 정도로 아무런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팀장에게 15명 정원 중에 10명이 나가는 것이니 퇴사 절차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를 연거푸 물어보고 있다. 하지만 팀장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아직 멀었으니 괜찮다는 대답만 한다.


이렇게 답답함 가운데 업무를 하고 있다. 언제나 시끄러운 팀장 T가 속해있는 팀은 축제로 인하여 바쁘다. 이 회사는 전시 행정답게 전시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10, 11, 12월 세 달 동안 대내외적인 행사가 계속 되고 있다. 축제를 담당하는 담당자는 병가를 마치고 복직한 정규직 부장님이다. 일명 성골인 셈. 몸도 작고 마른 그 부장님은 복직과 함께 혼자 큰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고 우리 팀을 포함한 다른 팀에게도 업무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체구도 작은 부장님이 오죽했으면 요청했을까 싶지만, 그걸 덥석 문 직원C도 그걸 허락한 팀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업무 지원했을 때는 본인 재택근무라 이야기하고, 또 어렵사리 부탁했을 때는 휴가를 냈다. 심지어 직원C는 오후에 본인이 참석해야 하는 회의도 있는데, 운전 지원을 굳이 한다고 한다.


팀장D에게 오후에 회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직원 C가 책임감이 뛰어나서 운전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답변이 들려온다. 거기에 더해 직원 C를 칭송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내가 생각하는 책임감과 팀장이 생각하는 책임감은 다른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 졸업 할 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자네가 쓴 모든 글들과 행동을 자네라고 생각해야 해. 그리고 그건 자신을 파는 거야. 일명 세일즈지. 그러니깐 자네가 파는 글과 행동에 대해서 책임질 줄 알아야 해.” 이게 내가 배워온 책임감이다. 회사 생활을 9년 가까이하면서 큰 원칙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끈질기게 익히고 배워왔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웬만한 것은 뚝딱뚝딱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착각이었나 보다. 팀장D와 직원 C가 생각하는 책임감은 자신의 일과 팀의 일을 내 팽개치고 본인을 챙기는 것, 그리고 정규직인 성골이 요청한 지원을 돕는 것이 책임감 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답잖은 다른 정규직 지원의 부동산과 주식 투자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것도 포함이 된다. 아, 진짜 치사하고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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