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7 2021.11.24
이 죽일 놈의 오지랖
오늘은 웬일로 야근을 올린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간단하게 컵라면이나 하나 먹고 조용하게 업무나 처리하다가 집에 가려고 했다. 컵라면에 물을 부은 순간 한 사람을 발견했다. 팀장T가 팀장으로 있는 팀의 파견 직원의 모습. 게다가 등이 잔뜩 굽어있다. 계약상 야근의 의무가 없는 이 어린 직원은 퇴근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회의에 참석을 했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굽은 등으로 가방을 싸고 있다. 회의비 식대로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술 먹으러 갈 생각에 들뜬 팀장T는 수고했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이나, 잘 가라는 말없이 법카를 가지고 룰루랄라 나갔다. 이와 대비되게 그 직원은 씁쓸하게 주섬주섬 퇴근할 채비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그 직원은 내가 먹지 않았다면 먹고 가겠다고 대답을 고쳤다. 그래서 마주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팀장T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 어린 직원은 팀장T의 폭언과 난폭한 행동에 난감한 눈치이다. 스물셋에 처음 하는 회사 생활인데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싶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래, 변명이 맞다. 그 직원보다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에서 변명을 했다.
그 직원은 한 시간 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지막에는 고맙다고 이야기 했다. 오늘 내가 아니었다면 쓸쓸하게 집에 돌아갔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 고마운 마음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누군가가 똑같은 상황이 되면 먼저 손을 내밀어 주라고 이야기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몇 년 전에 내가 겪었던 일이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어떻게든 저녁을 먹여 보내려고 했던, 그리고 쓰러진 아빠를 뒤로하고 중간보고에 참석했을 때도 아무 잘못 없는 박사님은 연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야근을 할 때는 항상 왕복 택시비를 주셨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온갖 산해진미를 사주셨다. 그래, 이 좋은 기억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 죽일 놈의 오지랖이 아니라 박사님의 마음을 갚은 것이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