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2

D-32 2021.11.29

by 유영

안녕, 대장


오늘은 마지막 월간회의이다. 월간회의는 부서별로 센터장과 이루어지는 회의이다. 우리 센터에는 매주 열리는 주간회의가 있고, 매달 열리는 월간회의가 있다. 주간회의는 팀장과 센터장, 처장이 참석하는 회의이고, 월간회의는 팀원, 팀장, 센터장이 참석하는 회의이다. 월마다 이번 달에 한 일과 다음 달에 할 일을 담당자가 보고하는 것이 월간회의이다. 여기서 키포인트는 처장이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이다. 즉, 센터장이 하는 그리 필요하지 않는 대장 놀이인 셈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회의가 비대면으로 되었을 때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줌 회의가 재미있었던 센터장은 수시로 대장 놀이를 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회의는 배로 늘어났다. 그렇게 대장 놀이를 좋아하는 센터장은 60이 넘은 나이에 젊은 직원들보다도 줌의 대가가 되었다.


그런 대장 놀이가 오늘로 끝이 난다. 살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무의미한 회의이지만 이 회의를 위해서 누군가는 문서를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업무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센터장이 갑자기 스케줄이 생겨버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조정해야 한다. 이런 무의미 없는 짓을 다시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언제나 회의는 일찍 끝난다. 물론 대장 놀이에 맞장구쳐주는 부장이 말을 적게 하면…. 오늘은 삼십분 정도로 매우 일찍 끝난 편이었다. 센터장이 다른 일정이 있는 건지, 더 이상 대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일찍 끝났다. 이것조차 황당하다. 회사 내규에 따라 계약직 인력이 다 나가야 하는 상황이고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세 달 동안 센터는 텅텅 비게 된다. 그리고 그 인력이 다 다시 들어올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면 그에 대한 방책을 세워야 하는데 일언반구 없이 회의는 끝났다.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우리가 매달 회의 자료를 만들면서 난리 쳤던 것은 회의가 아니라 그의 대장 놀이였음을…. 그리고 리더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 인정을 위해 대장 놀이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성희롱 팀장, 거북이, 갑질이, 여사님, 한문 선생님, 지금 부장, 센터장…. 어디서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연들이면서도 이런 사람들을 또 어디서 만날까 싶다. 다른 부서에서 우리 부서를 보고 시트콤이고 재미있다고 했던 것들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순풍산부인과의 표 간호사(표인봉 분)이 된거 같아서 남들이 볼 때는 즐겁지만 괴롭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떤 캐릭터일까? 너무 못되고 흉악한 캐릭터만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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