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

D-29 2021.12.2

by 유영

졸작이 확실해졌다.


그래 누구 잘못이겠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내 잘못이지…. 이렇게 반성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이 회사에서 도대체 몇 번의 자기반성을 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몇 번의 자기반성을 해야지 퇴사가 가능 할 것인가.


화근은 센터장N이다. 사례집의 삽화와 레이아웃을 담당할 디자인 업체를 찾아야 했다. 센터장은 무조건 사회적 기업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천에 있는 사회적 기업 중에 디자인을 잘하는 기업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업무 처리가 깔끔한 업체는 그동안 센터의 업무를 많이 담당했기 때문에 또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작은 업체를 찾았다. 박람회로 인하여 정신이 나가있는 상태에서 나는 그 업체와 꽤 큰 금액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구구절절하게 메일도 썼다. 촉박한 일정에도 작업을 응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센터는 포스터, 책자 등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요소들이 많은 곳이니 이번 인연을 통해 좋은 동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말과 함께 최대한 디자이너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겠다며…. 실제로 그랬다. 나는 한번 인연을 맺은 업체와는 몇 년째 같이 일하는 것이 부지기수이고 대부분 나의 의견보다 전문가인 디자이너의 의견을 더 존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렇게 탄생한 작업물들은 꽤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처럼, 이번에는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처참하게. 매일로 도착한 초안을 보고 기가 막혔다. 한 달 동안 했다는 작업물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아도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센터에 있는 디자이너에게 보여주니, 그 금액으로 진행하는 작업이 맞는지 되묻는다.


디자인 업체에 전화해 물었다. 얼마 안 작업한 것이라는 나의 질문에 한 달이라는 당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차라리 작업할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했으면 희망이라도 있으려면 이제 더 이상 희망도 없다.


이렇게 사례집은 졸작이 확실해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D-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