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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quniill Jul 02. 2019

“저는 회사에서
솔직함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제16 일꾼의 말 

"회사에선 솔직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생활을 그대로 오픈하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상황과 감정을 

솔직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제 16의 일꾼_10년 전 대기업 마케팅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여전히 같은 회사, 같은 업종에서 근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슨 일을 하든 잘 해내고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습니다. 




대학교 3, 4학년 때 취업 성공기를 들고 특강을 하러 오는 선배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정장을 입고 사원증을 목에 매달고 온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럽고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선배들은 어떤 노력을 해서 이 기업의 신입사원이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다. 


특강이 끝난 뒤 뒷풀이에서는 회사생활 뒷얘기를 풀어냈다. “이건 후배인 너희에게만 들려주는 사회생활 꿀팁”이라며 조언을 해주기도 했는데 대부분이 비슷했다. 회사에선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가면을 쓴 상태로 생활을 해야 편하다는 것이다. 회사가 어찌나 말이 많은 곳인지 작은 말실수, 하다못해 애인의 유무까지도 돌고 돌아 결국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으니 마음이 ‘쿵쾅’거렸다. 


어린 마음에 ‘회사=정말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란 인식이 박혔다. 애인이 생겨도 없다고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쿨한 척 호쾌한 척 웃어넘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 같은 곳. 실제로 선배들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독 한 선배만 다른 이야기를 했다. 


“저는 회사에서 ‘솔직함’을 담당하고 있는데요.”로 시작하는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몸이 앞으로 쏠렸다. 


“회사에선 솔직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입사한 뒤 솔직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업무 욕심에 “다 할 수 있다”고 무리하게 일을 맡았다가 결국 구멍이 생겨 비상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요. 함께 일하면서 느낀 불쾌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가 뒷탈이 나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생활을 그대로 오픈하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상황과 감정을 솔직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내가 지금 힘들면 힘들다고, 아니면 일에 집중이 잘 되면 잘 된다고 꾸준히 소통하는 게 즐겁게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조금 다른 의견이구나 정도로만 느끼고 스쳐지나간 이야기였다. 그런데 막상 회사 생활을 시작하니 이 말을 해준 일꾼 선배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나에게 회사란 ‘가면을 써서는 절대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이었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절반 정도를 함께 보내는데 내 진짜 모습이 아니라 만들어진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 수 있나 싶었다. 무엇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일꾼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을 때 ‘가면’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늘 밝고 상냥한 선배 일꾼이 있었다. 신입인 내게 항상 “잘했네”라고 칭찬해주고,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실수에 눈감아주는 이 선배 일꾼이 좋았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누구보다도 신입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실수하면 득달같이 달려가 상사에 보고하는 게 이 선배의 숨겨진 캐릭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내 코가 석자 정도는 베어진 뒤였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실수에 자비없던 ‘옆자리 선배’가 오히려 더 도움을 주고 있었다. 


결국 나는 가면 쓰기를 포기했다. ‘본투비 덜렁이’인 모습도 보여주고, 너무 웃기면 목젖까지 보여줄 태세로 깔깔 웃었다. 애인과 싸운 다음 날에는 선후배를 붙잡고 울었다. 못하겠다 싶은 일은 내 능력 밖이니 도와달라고 SOS를 쳤고, 욕심나는 일은 부족하지만 내가 해보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일을 더 잘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회사에 오는 게 즐거워졌다. 감출 게 없으니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 자체가 힘들지 않았다. 무조건 “네, 좋아요”를 하기 보단 어떤 부분을 고쳤으면 좋겠다고 조언할 수 있는 용기도 조금씩 생겼다. 


2, 3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부서 이동을 앞두고 받은 개인 평가 결과에는 이렇게 적혀 있기도 했다. “잘한 일을 스스로 잘 했다고 포장하는 일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실수를 감추지 않고 공유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실수를 알리고, 다시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한 과정을 통해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솔직함이 불러온 효과는 생각보다 큰 듯했다. 어깨에 긴장을 풀고 회사에 출근할 수 있게 됐고, 누군가는 나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내가 회사의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 한 ‘솔직함’은 더 강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가면을 쓴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아주 강력한 무기. 


나는 10년째 회사에서 ‘솔직함’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생 때 처음으로 나에게 ‘솔직함의 기술’을 전수해줬던 그 선배 일꾼도 여전히 그러할까. 


단 한번도 취업에 성공한 선배가 되어 후배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나의 기술을 더 추가하고 싶다. 나의 솔직함을 한낱 가십거리나 약점으로 취급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다시는 그 사람과 진심을 다해 대화하지 말 것. 일꾼인 우리 모두는 어른인데 ‘어른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는 솔직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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