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의 법칙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 없는 친구가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유대교의 교리 중 하나인 이 구절은 우리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가르쳐준다.
나는 이것을 '2·7·1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두 명은 조건 없이 나를 좋아하며 일곱 명은 나에게 무관심하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내가 무얼 해도 무조건 나를 싫어한다.
우리는 해당 교리를 통해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에게 초점을 맞출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할지,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들 것인지, 나를 무조건 싫어하는 한 사람에게 지극정성을 쏟아 나를 좋아하게 만들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미움받는 것을 원치 않는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미움’뿐이다.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바꾸기 위해 갖은 아양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의 감정을 숨기며 그 사람에게 아양을 부릴수록 오히려 나의 감정은 점점 날카로워져서 갔고, 그 한 명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나머지 아홉 명에게 풀었던 적도 있었다.
그들 중 내가 가장 미안했던 사람들은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화를 내도 어차피 내 곁에 있어줄 사람들이니까 화를 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화를 냈고, 그들은 그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던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뺨 맞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서 화를 푸는 격이었다.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당신의 감정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당신의 감정을 당신이 좋아하고, 당신을 좋아하는 두 명에게 집중해도 되고, 당신에게 관심은 없지만, 언제든 당신을 좋아할 수 있을 만한 일곱 명에게 집중해도 된다.
또한,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 간단하듯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자세로 사람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열 명의 사람 중 소수에 불과한 한 사람을 얻기 위해 다수인 아홉 사람을 잃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