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은 진짜 인생을 살고 있나요?”
해당 문구는 현실을 가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증후군 중 하나인 ‘트루멀리즘’을 만들어 낸 영화 ‘트루먼쇼’의 한국판 포스터에 쓰인 문구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트루먼 버뱅크의 삶에 불행이라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일상에서 점점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며 그는 자신의 삶이 모두 만들어진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자신을 감싸고 있는 세트장의 끝을 향해 나아간다.
이후, 세트장 비상문을 발견하고, 문을 열자 해당 방송의 기획자인 크리스토프는 그에게 트루먼의 삶은 모두 가짜였으며 그가 바깥으로 나가도 그곳과 자기가 만든 이 세상은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그곳이 훨씬 더 위험하다며 오직 ‘행복’만이 존재하는 이 세트장에서 삶을 보내라고 말한다.
하지만, 트루먼은 그에게 혹은 자신을 브라운관 너머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나중에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말해둘게요.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세요”라고 말한 뒤, 웃으며 세트장을 벗어난다.
완전한 행복을 뒤로한 채 불안과 슬픔이 존재하는 현실로 향한 트루먼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내가 트루먼이었다면 현실 세계에서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트루먼쇼처럼 불안이 없는 완전한 행복의 상태는 권태를 불러일으킨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모든 삶은 고통 그 자체이며 욕구와 욕망이라는 역학이 인간을 구조적으로 분투하게 만든다.”라고 말함과 동시에 “아무것도 욕망하는 것이 없는 무욕의 상태가 계속되면 권태가 시작된다. 이는 심지어 욕망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럽다. 권태는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공허함을 마주하게 하며 이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저 존재하기를, 더 나아가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갈구하지만, 마침내 존재를 온전히 확보하여 아무것도 갈구할 것이 남지 않게 되면 자기 존재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중략)... 권태는 욕망하는 상태보다도 훨씬 더 끔찍하다. 권태는 손쉽게 우리를 절망에 이르게 하고 심지어 목숨을 끊도록 만들기도 한다.”라고 말하며 완전한 행복 속 권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며 같이 변화한다.
때로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슬픈 일이 생기면 기쁜 일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슬픔에 빠지지 않기 위해 더욱 자신의 일에 정진한다. 이러한 순환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트루먼과 같이 행복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았다면 몇 달간 혹은 몇 년간 행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감정은 무감각해졌을 것이다.
인생이 본인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 다시금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