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관을 가져라
“수동적인, 소극적인” 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Passive’는 라틴어로 “고뇌, 수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pássĭo’에서 유래가 되었다.
즉, 고대부터 수동적인 사람은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수동적인 사람은 남들에게 받는 것에 익숙하다. ‘수동적’이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다른 것의 작용을 받아 움직이는”이라고 되어있듯이 말이다.
우리는 모두 수동적일 때가 있다. 바로 노동을 할 때이다. 회사에 나가거나 알바를 할 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그 내용대로 업무를 행한다. 하지만, 노동 할 때를 제외하면 우리는 능동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나의 길을 가야한다.
하지만, 능동적인 사람은 오늘과 같은 수동적인 세상에서는 이방인 취급을 받기에 십상이다.
물론, 오늘날만이 수동적인 세상은 아니다.
17세기에 쓰여진 최고의 소설 ‘돈키호테’ 속 세상도 수동적인 세상이다.
모두 그저 자신들에게 부과된 세금을 내기 위해 농사를 짓고, 일을 할 뿐, 자신들의 꿈과 목표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수동적으로 세상을 살던 소설 속 주인공은 자기 스스로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붙인 뒤, 자신이 원하는 ‘편력 기사’라는 직업이자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든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본 마을 주민과 친구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비웃었으며 그들 중 한 명은 그를 '구해준다'는 명분을 들어 직접 자신이 기사로 변장하여 돈키호테를 굴복시킨 뒤 그에게서 1년 동안 무기를 쥐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게 된 돈키호테는 크나큰 상실감에 빠져 우울증에 걸린 채 병석에 눕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 세상을 떠난다.
이렇듯 수동적인 세계에서 능동적인 사람은 살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세상에 기억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능동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 자신의 삶을 개척한 사람들이다. 에디슨, 스티브잡스, 이건희, 정주영 회장 등 말이다.
우리가 돈키호테 속 다른 인물은 몰라도 돈키호테라는 사람은 알고 있는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들 혹은 세상을 바꾼 많은 인물은 대부분 능동적인 인물들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 안의 세상을 먼저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동적인 세상일지라도 나만은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