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 Aug 03. 2020

마녀의 오르골

INTJ 고등학생의 주문 소설

  중세에 어린이는 인생의 한 단계가 아니라 과정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중세 그림을 보면 갓 태어난 아이도 작은 성인의 모습으로 그렸다고 미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가려진 것은 없는 것이다. 발견하지 못한 것도 없는 것이다. 이름이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이 더 답답해졌다. 고등학교 3학년은 공부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일탈만 하면 괴물이라도 된 양 바라보는 시선들에 소름이 끼쳤다.


  머릿속에서 웅웅 울리는 생각들에 숨이 막힐 때면 조용히 작은 일탈을 즐겼다. 기숙사에서 술을 마신다거나 넷플릭스로 성인 드라마를 본다거나 하는 일들, 마녀의 상자처럼 하나 둘 모아놓은 생각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수록 외부에서 들어오는 시선이 더 따갑고 두려웠다.


  ‘여자는 아주 철저히 순종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므로 미덕의 주춧돌인 진실과 인내심도 어느 정도 한계를 두고 가르쳐야 한다.’ 루소의 말이었다. 언젠가 사회 선생님께서 해준 말이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다시 한번 짜증이 솟구쳤다.


  학교에서는 성실한 학생이 되려고 노력했다. 겉과 속이 달라도 그 편이 나았다. 다 드러내 놓으면 인상을 찌푸릴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차라리 생존본능에 가까웠다.


  중세 화가들이 현대에 와서 학생을 그린다면 어떻게 될까? 잔뜩 축소된 어른의 모습으로 그릴까? 다비드상에 있는 털이 왜 비너스에게는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펜을 잡고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려보았다. 어떤 은유도 없는 노골적인 그림이었다. 도저히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그림을 가지고, 그런 욕망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언젠가 누구든 이 그림을 꼭 보여주고 싶다. 없는 것은 있는 것이고, 다만 모르는 건 생각이 없을 뿐이라는 사실을 종이에 싼 다음 서랍 아래 집어넣었다.  


  [작가의 말]


  어린 나이에도 아주 단단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쁘고 오히려 제가 배울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가려진 부분이 있고 HN님이 언젠가 그런 부분들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난해하고 부족한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N 님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어쩔 줄 모르는 모습 때문에 상담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막상 이야기를 터놓고 보니 나와 비슷한 성향(INTJ)여서 몇 가지 공통점을 토대로 이야기를 끌어나갈 수 있었다. 겉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내적으로 굉장히 완고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상향을 계획적으로 추구하는 듯했다.


  인상 깊었던 건 '혹시나 하고자 하는 분양에서 롤모델로 잡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었는데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한계가 있다. 딱히 사람을 롤모델로 한다기보다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 자체에 관심이 더 많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과학자형'이라고 불리는 INTJ 유형답게 사람보다는 학문 자체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감각보다는 직관을 활용하는 특성이 잘 드러났고 그 가운데 독립심(아직 고등학생임에도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하는 등)의 모습이 IJ 유형, 내향 판단 유형의 특징이 잘 드러난 것으로 보였다.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딱 두 번 마주한 적이 있다. 한 번은 MBTI 교육에서, 한 번은 이날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였는데, INTJ 유형의 경우에는 내향형임에도 아주 강하고, 한편으로는 고집 있어 보이는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외향적이지 않고, 현실감각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며 마음이 따뜻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부분, J(판단) 특유의 완고함 때문에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약간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페르소나로 감추는데 타고난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즉 INTJ 성향은 그 속을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한번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경향도 있지 않나 싶다.


  명확한 계획과 강한 독립성, 나이에 맞지 않는 깊은 지식 등은 HN 님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꼭 원하는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왜 사람마다 태도가 다를까? (feat. MBT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