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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Aug 04. 2020

아이

INTP 30대 대학원생

  한 분야를 오래 연구하면서 느끼는 피로감이 컸다. 남들은 심리학이라고 하면 무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며 ‘내 마음을 맞춰보라’는 식의 말도 조금 지쳐가고 있었다. 미국 유학 동안 심리학을 배우고 국내에 들어와 연구를 시작하면서 학회에서는 점점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는데, 그럴수록 지쳐가는 마음은 심리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내담자를 받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책과 논문에 쌓여 사람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오랜만에 받은 내담자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ADHD 어린이었고 듣던 대로 한시도 가만있지 못했다. 나는 심란한 마음에 도무지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무당도 의사도 아니건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미쳤다. 친한 지인이고 아이에 대한 걱정이 심해 어쩔 수 없이 보고 있긴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연구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이는 어느 날 나를 그렸다며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예전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본 침팬지 그림이 거기 있었다. 물론 현실은 영화와 달라서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말이다.


  “JH씨 그거 알아요? ADHD가 질병에 등록 안 돼있는 거?"

  연구소 동료의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JH씨가 보고 있는 그 아이, 원시시대였으면 족장 감이라고요. 계속 움직이고 받아들이고 탐구하잖아요. 우리도 좀 배워야 돼 그런 건.”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곤 실험실 문을 닫았다.


  나는 그날 이후 현석이를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동료의 말대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산하며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너무 한 곳에 매몰되어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돈해 받아들인 정보들 속에서 점차 세심한 감정들을 잃어버리고 머리에만 의존하지 않았나,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현석의 손을 잡자 현석은 행동을 멈추고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부터 무언가 전해져 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놀러 나가자”

  현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집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지인으로부터 너무 감사하다는 문자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아이가 나를 만나고 나서 상당히 좋아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웃음이 났다. 나는 뭔가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작가의 말]

   관심 있는 분야에 공부 중이셔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굉장히 지적이고 직관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미국 유학을 가시더라도 충분히 잘 해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균형을 잡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럴 때일수록 아이처럼 생각하고 살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상담을 하긴 했지만 제가 오히려 배운 것 같아 너무 감사했습니다. 부족한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분은 원래 누나가 상담을 예약했지만 뭔가 부담스러우셨는지 누나 대신 상담을 진행했다. 장발에 이십 대 후반, 많아야 삼십 대 초반의 남성분으로 ‘제가 뭘 하면 되죠?’라고 말씀하시는데, 뭔가 어색해하는 모습에 우선 전공을 여쭤보니 현재 대학원생으로 인지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해서 저도 현재 상담일 하면서 MBTI 초급교육 수료했다니까 ‘MBTI’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위기에 빠졌지만 cs 교육 새싹 반 수료자로서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기에


  “저도 그쪽에 관심이 많은데, 미국 쪽은 약간 행동심리학 쪽이라서 행동교정 같은 실질적인 매니지먼트 위주라면, 유럽 쪽은 소파에 눕혀놓고 어렸을 때 이야기부터 끄집어낸다면서요?”

  라고 말하니까

  “아, 그건 50년 전 이야기고요"

  하시면서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하셨다.


  확실히 전문 분야에 오래 몰두하신 티가 났다. 최근 재밌게 본 영화로 기생충을 꼽았고 생각할 거리가 있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최근 본 영화로 기생충을 꼽으신 분들이 많았는데, 반응들이 대부분 ‘심오하다 - 이입이 된다.’와 같은 반응이었다면, 이분은 기생충을 두고 그렇게 심오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며 재미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약간 내향적이면서 직관과 사고를 잘 사용하는 INTP 또는 INTJ가 아닐까 추측했다.  


  고민은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너무 계획 없이 살아온 부분, 당장 불투명한 근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특히 ‘삶의 균형’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 부분에서 INTP 성향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INTP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인슈타인이 있다. 그 역시 한 분야에서 천재적 성취를 해낸 사람이지만 생활력 부분에서는 백치에 가까웠기 때문에 주변(특히 아내 엘사)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물론 극단적인 예다.


  우선 유학을 다녀온 후 연구소에서 일을 한다는 설정으로 전혀 다른 성향의 아이와 마주하는 상상을 해봤다. 원체 고차원적이고 정적이며, 개인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으시니 다른 환경에 놓였을 때, 특히 관계를 맺는 환경에 놓였을 때 본인이 원하는 '삶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짧고 즉흥적인 소설이지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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