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스님 두 명과 마두 치는 꿈이었다. 헬스를 했는지 우락부락한 스님 한 명과 평범한 인상의 평범한 스님이었는데, 어깨를 부딪히곤 ‘죄송합니다’라고 분명히 말을 했지만, 근육질 스님은 ‘뭐 죄송해?’라고 말하곤 폭언 욕설을 쏟아냈던 것이다.
“뭐 죄송해? 네가 그래서 개성이 없는 거야. 이게 다 전생의 업이야 업.”
"무슨 소리예요. 전 곧 의대도 졸업하고 의사가 될 거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던 뒤에 계신 스님이 갑자기 목탁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헬스 근육 스님의 속사포 같은 디스 랩이 이어졌다. 요지는 네 인생이 소설이나 영화라면, 또는 만화라면 시시해서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저주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 나는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고민했던 문제였는데, 다른 친구들은 경제며 음악이며 그림이며 각각 잘하는 게 하나씩은 있었다. 나도 중학교 때부터 제과 제빵, 중창단, 바리스타 등등 많은 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도무지 오래가지 못했고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도 마땅한 취미를 찾지 못했다.
“엄마 난 잘하는 게 뭘까?”
“의대까지 갔으면 잘한 거야. 뭐가 고민이니?”
도저히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의사가 된 후에도 나의 자아 찾기는 계속되었다. 두 스님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르마타지에서 요가를 배우기도 하고 플로리스트, 성악, 방송댄스, 주짓수, 심지어 스쿠버 다이빙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도무지 적성을 찾을 수 없었다. 꽤 시간이 흘러 개인 의원을 차릴 때까지도.
개인 의원을 차린 나는 병원에 그동안 했던 것들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커피 메이커를 들여놓고 종종 환자들에게 커피를 내려주기도 하고 직접 그린 그림을 병원 한편에 걸어놓기도 했다.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요가 자세를 가르쳐 보았더니 꽤 효과가 있었다. 가끔 아이들이 오면 직접 만든 쿠키를 주기도 했다.
그래도 종종 그날의 꿈이 생각날 때면 또 뭘 시도해보아야 하나 하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냥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싱숭생숭한 마음에 오래간만에 대학 동기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반가워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혹시 아직도 첼로 하니?’
“아니 접은 지 오래됐지. 그냥 일하느라 바빠.”
역시 당연한 순서인가? 헛헛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 밤 두 스님이 꿈에 나왔다. 10년 만이었다. 스님들은 내 병원을 둘러보더니 ‘아주 개성이 넘친다’는 말을 건넸다. 헬스 스님은 그동안 운동을 더 했는지 몸집이 두 배는 커 있었고 뒤에 계신 스님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더욱 경쾌한 리듬으로 목탁을 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남들은 수박 겉핥기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말하고 싶다. 수박을 핥아라 언젠간 뚫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