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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18. 2020

바보 삼대


  대부분 진부한 집안 썰이 그렇듯 우리 집은 원래 잘 살았다.



  증조할아버지는 면장이었고, 큰할아버지는 축구선수에 우리 할아버지도 당시에는 글깨나 읽으시는 분이었다고 하니 동네에서 팔자걸음 좀 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당시 나이가 있었는지 빽이 좋았는지 큰할아버지는 군대에 안가시고, 둘째였던 우리 할아버지는 국군에 징병되어 참전하셨다. 아버지 피셜에 따르면 국군이 북한군을 밀어내고 서울을 다시 수복했을 때, 키가 커서 기수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튼 한국전쟁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통조림이며 파인애플 같은 당시로써는 굉장히 귀한 것들을 싸가지고 고향에 내려왔고 곧 집안이 풍비박산 나있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북한군이 t-34땅크로 밀어버렸으면 차라리 덜 억울하겠다. 


  이유인 즉 집에 남아있었던 큰할아버지는 전쟁통에 축구경기도 없고 심히 무료하셨는지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그 전쟁통에도 도박은 했나보다) 그러던 와중 집문서를 날려버렸고 그대로 제주도로 도피해버리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분노한 할아버지는 바닥에 파인애플을 내팽게치곤 그대로 주광에 빠지게 된다. 


  어렸을 적 간혹 성묘를 가면 할아버지에게 우리 집에 종이 몇이었고, 양천허씨에 제양군파가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그런것 치고는 소키 우는 막사가 집보다 신식에, 자려고 누우면 방에 곱등이가 뛰어다녔다) 심지어 이걸 못 외우면 발바닥도 때렸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망조든 집안일수록 형식미에 집착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집안꼴이 이런데 야 자식들을 잘 건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4형제 중 셋째였던 우리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술 심부름부터 온갖 노역에 시달리다가 중학생 나이에 집을 나와 광주로 상경했다. 웨이터, 화물차, 인쇄소 등을 거쳐 택시기사로 20여년을 넘게 운전대를 잡고 계신다. 


  나는 공부를 싫어했다. 그림 그리고 놀거나 책 읽는 건 좋아했어도 학교에서 성적을 내는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평생을 거친일을 하면서 자라난 아버지나 시골에서 살다 서울로 상경해 올라와 아버지를 만난 어머니가 이런 구제할 수 없는 수준의 자식에게 어떤 비전을 심어주거나 동기를 주기란 더 어려운 일이었을 테다. 나는 정말 문제’만’ 안 일으키는 사람으로 자라났고 어떻게 어떻게 대학을 가긴 했다.(대한민국에 이렇게 대학이 많은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내 세대 즈음에서 대학교 진학률이 맥스를 찍고 점점 하향곡선을 찍는 그래프를 본 적이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외압은 컸는데, ‘무언가를 왜 해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못하는 맹목적의 레이스가 아니었을까?


  무언가 좆됨을 직감한 건 군 복무 도중 상병을 단 후였다. 앞으로 1년을 더 버티면 전역인데, 막연한 꿈이었던 작가는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군에 나를 의탁하기로 한다. 5년 군 복무의 시작이었다.


  1년이 지나갔다.


  2년이 지나가고


  3년이 지나갔으며


  4년, 전역할 때가 되었다.


  시간이 광속으로 지나가고 다시 백수로 사회에 돌아왔을 때, 큰아버지-그러니까 큰 할아버지의 아들이- 제주도에서 육지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나는 군 복무 간 모아둔 전세금을 가지고 서울에 자리를 잡은 차였다.


  후문인즉 제주도로 도피한 큰할아버지는 농사라도 지을 겸 제주도 땅을 구매했고, 점차 경작지를 늘려갈 수 있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 중국자본이 제주도로 유입되면서 유커들이 기존 시세의 5배~10배를 부르며 땅을 매입했다고 한다. 그때 떡상한 땅을 모두 팔아치운 큰아버지는 건물주에 벤츠를 끌고 다니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게 어쩌면 큰할아버지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역시 인생은 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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