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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20. 2020

태양의 서커스

아스테이아

  아스테이아. 그 아이의 이름이다. 내가 그녀를 구한다면 이 장막과 외줄 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스테이아는 형태가 없었다. 나는 거울처럼 이따금 아스테이아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면 그녀는, 나를 꿰뚫어버리곤 했다.


  나는 벙어리다.


  단장이 아스테이아를 아시아 어디쯤에서 데려온 것처럼, 단장은 나를 남미 어디쯤에서 데려왔다. 인신매매나 납치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단장은 좋은 사람이었다. 다만, 사양길에 접어든 서커스단을 유지할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술을 익혔다. 나와 함께했던 소년들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또 그 절반으로 줄어들 무렵 나는 간단한 마술부터 줄타기, 저글링까지 온갖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열세 살 즈음엔 적게나마 보수도 주어졌다.


  미트라는 줄 타는 여자다. 줄타기를 비롯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 여자. 우리의 합숙소는 그다지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상대를 바꿔가며 섹스를 즐겼다. 그저 만족스러웠다. 보수도 좋았고 유랑은 즐거웠으며 미트라와의 섹스도 좋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아스테이아를 보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아스테이아는 단장과 같은 방을 썼다. 기술을 익히는 일은 없었다. 아스테이아는 종종 단장실 테라스로 나와 우리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눈을 마주칠 때면 그 깊고 검은 눈 속에 고인 슬픔에 야트막한 탄식이 일었다. 그 탄식은 어떤 ‘말’ 같았다.


최근엔 단검을 투척하는 기술을 익혔다. 단검은 10m까지 세 바퀴를 회전하며 날아가 꽂힌다. 무회전 투척도 가능하다. 나는 단장의 이마에 단검을 꽂아 넣는 상상을 했다. 물론 상상일 뿐이다. 이곳은 나와 아스테이아의 새로운 터전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런 곳에서 단검을 투척해 단장을 죽일 수는 없다.


  대신 막사에 몇 가지 장치를 해두었다. 막사는 타기 쉬운 천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여섯 개의 기둥과 용마루 하나만 처리한다면, 막사를 무너뜨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이미 폭죽용 화약을 기둥과 용마루에 설치해두었으므로 내가 공연을 시작하는 20시쯤이면 모든 일이 끝나 있을 터였다.


  우리의 배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닿았다. 


  소련이 무너진 뒤 단장이 헐값에 사들인 유조선을 개조한 것이었다. 붉고 푸른 페인트가 율동적으로 거대한 선체를 감싼 모양이다. 갑판에는 대형 천막극장 ‘그랑 샤피또’가 70동의 컨테이너에 나뉘어 실려 있다. 움직이는 마을이다. 


  테크노 음악과 함께 내가 공중을 날고 있었다. 서울행 고속버스에서 본, 우리 서커스단의 광고였다. 공중에서 네 바퀴를 돌아 반대편 그네를 잡는 고난도 동작이 끝나고 하얀 화면에 우리를 후원해준다는 카드사의 마크가 찍힌다. 버스 창가를 바라본다. 아스테이아의 고향일지도 모를 이 나라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여기서 아스테이아를 구해낼 생각이다.


  내가 18살이 되던 해 우리 서커스단은 상파울루에 간 적이 있다. 나는 그 무렵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아스테이아와 단장을 제외한 우리 서커스 단원들은 완벽한 허벅지와 복근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땅에서 발휘하던 힘을 공중에서는 발휘하지 못했다. 바닥이 없다는 건 그 움직임에 전혀 다른 감각을 요구했다. 나에게 공중그네는 지상보다 편하고 자유로웠다. 


  서커스 공연이 끝나고 단장은 나를 불러들였다. 단장은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눈길로 나를 응시했다. 그는 ‘정말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가족사진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집어 들었다. 어미의 품에 안겨 카메라를 올려다보는 아이와 불안정한 눈빛의 남자가 있다. 여자는 거적 데기 같은 옷을 두른 채로 눈가에 


시커먼 멍이 들어있다.


  “네 부모님이다. 13년 만인가…. 아직 여기 살고 있더구나. 간다고 하면 말리지 않겠다만, 사진과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약을 하고 네 어머니를 패고 있더군. 네 수고를 생각해서 돈을 좀 쥐여주긴 했다만, 며칠이나 갈지…. 네 부모는 너를 팔았지만, 나는 너에게 정당한 수당을 지급하고 온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너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우리 같은 일류가 단원을 노예처럼 부릴 수는 없지. 갈지 말지는 네가 선택하도록 해.” 


  알만한 사진이다. 아버지는 약쟁이였으며, 어머니는 멍청했고 우리 집은 가난했다. 부모는 단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커스단에 나를 기꺼이 팔아넘겼으리라. 나는 사진을 뒤집어두고 단장실을 나섰다.




  서커스단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뭔 줄 아나? 재주가 쓸만해진다 싶으면 단원들이 빠져나간다는 거야. 초대 단장은 그런 면에서 천부적이었지. 나가려고 하면 전부 쏴 죽였거든.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거리에 부랑자 장애인들이 넘쳐났을 때 단장은 그런 치들을 긁어모아 우리 서커스단을 만들었어. 유방이 세 개 달린 여자, 샴쌍둥이, 남녀의 성기를 모두 가진 사람, 난쟁이들. 사람들은 우리 서커스단을 ‘괴물 서커스단’이라고 불렀지.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란 언제나 구경거리를 원한다는 거야 전쟁 통에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면서 우리에게 돈을 써댔지.


   단장은 서커스단을 좀 더 근대적인 모습으로 바꾸고 싶어 했어. 괴물 같은 녀석들을 치워버리고 아이들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기술자로 만들었지. 많은 자본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어. 화려한 막사에 놀라운 기술, 특히 중국에서 돈을 긁어모으면서 ‘괴물 서커스단’은 ‘태양의 서커스단’이 되었지. 아이들이 좋은 건 간단해, 가르치기 쉬운 데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이들은 자라서 큰돈을 벌어들였고 온전히 우리 서커스단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 그런데 TV가 대중화되면서 이런 식의 운영은 투자에 비하면 별 재미가 없었지.


  3대째 서커스단을 이어받으면서 나는 본질에 집중했지 사람들은 언제나 구경거리를 원하니까.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배우고 역사를 공부했어. TV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일류가 아닌 서커스단은 전부 망하고 말았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았어. 초대 단장처럼 단원을 쏴 죽이거나 2대 단장처럼 노동력을 착취하지도 않았지. ‘인권’이 중요시되는 세계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게 있긴 하더군.


  스티브 잡스를 좋아해 ‘사람들은 우리가 뭔가를 보여주기 전까지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멋진 말이지.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세상은 한 세기 전에 끝났어. 적어도 이 분야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해야 하지. 나는 단원의 수를 최소한으로 줄였어. 연극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한 명 한 명을 예술가로 길러냈지. 그럴싸한 광고를 만들고 투자를 받아내고 표정 하나, 떨림 하나까지 캐치할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를 도입했어. 선택과 집중. 멋진 말이지. 


  아스테이아 말인가?


  로마 제국의 멸망, 종교전쟁과 마녀사냥, 프랑스 대혁명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전부 소빙하기에 발생했다는 거야. 현실은 빙하기만큼 냉혹하지. 어제 귀족이던 여자가 내일 창녀가 되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야.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있어. 영국 왕족은 권력과 재산을 독점하기 위한 근친혼 때문에 유전병에 시달리고 러시아에는 여자를 납치해 결혼하는 약탈혼이 있었어. 일부다처제는 중동에서 흔해. 매년 1,4000명의 소녀가 18세 이전에 강제로 결혼하기도 하지, 당신네 나라에도 조혼이 있었다더군. 난 아이들을 좋아해. 가르치기 쉬운 데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스테이아는 내 정당한 노동의 대가였어. 나는 최소한, 아스테이아를 자유롭게 두었지. 어제는 ‘인민의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변절자로 처형당하고 따라 죽게 될 운명이었던 소녀를 내가 구원한 거야. 마리아를 구원한 예수처럼.


내가 역겹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누구에게나 취미는 필요한 법이야. 이런 작은 쾌락조차 없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스테이아가 누구와 뭘 하든 자유롭게 둘 생각이야. 난 좋은 사람이니까. 




  아스테이아는 형태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동양인을 인식할 수 있는 한계이기도 했다. 어리고 여린 얼굴선에 비해 내면을 꿰뚫어 볼 것만 같은 검은 눈이 곧은 머리카락, 알 수 없는 표정, 목소리와 함께 매 순간 변화하면서 형태를 알 수 없는, 빛을 바라보는듯했다.


  단장은 아스테이아에게 사회를 맡길 셈이다.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얕은 수작은 아니었다. 우리는 일류였고, 아스테이아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아스테이아의 위치는 양측에 공중그네가 내려온 2층의 중심이었고 막사를 둘러싼 모든 곳에서 아스테이아를 볼 수 있다. 하얀 원기둥 위의 그녀는, 아찔하고 아름답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조잘거리는 아스테이아는 평소와 달리 생기 넘쳐 보였다. 나는 관객을 자처하며 아스테이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선한 목소리를 마이크를 통해 증폭시킨다. 그랑 샤피또는 그녀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주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쁘지?”


  미트라는 옆에서 아스테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가운 회색 눈이 잘 어울리는 여자다. 


  “이번 공연 끝나면 은퇴하려고.”


  나는 미트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이제 스물아홉 살이다. 서커스단원, 그중에서도 공중그네나 줄을 타는 단원은 수명이 짧았다. 그녀는 아스테이아와 달리 스스로 자원해 단원이 된 여자였다.


  “내 원래 이름은 유라 마커스야.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없었어. 어머니도 세 살쯤 되던 해 세상을 떠났어.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마커스’는 나뿐이었지. 부모 없는 혼혈아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 아이들은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필사적으로 영어를 공부했지. ‘데이비드 마커스’라는 가짜 아버지를 만들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신다고 거짓말을 했어. 처음으로 친구도 사귈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어.”


  미트라는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렸다. 우두둑- 하는 뼈 소리가 들린다.


  “나머지는 다음에 말해줄게”


  나는 가만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을 걸어오는 일은 잦았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하지 않았다. 은퇴를 앞두고 생각이 많아진 탓이리라.


  내가 다시 아스테이아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단장의 손에 이끌려 무대를 퇴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저 손에서 너를 해방시켜줄게


  공연을 이틀 앞두고 단장은 하루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나는 렌터카를 빌려 아스테이아와 바다에 가기로 했다. 한국에 도착하고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아가 출입국사실 증명서와 운전면허증, 여권을 제시하고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해두었다. 내 아이폰에는 나와 아스테이아의 대화방이 있고 거기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단장은 사업상 지인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아스테이아는 내 옆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고 또 눈을 깜빡였다. 우리에게 소통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스테이아는 소통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으므로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언어라도 금방 배우고 말 터였다. 아스테이아가 수화를 이해할 리 없었지만 나 역시 손을 움직여 대답을 해 보였다.


  우리는 차에 기대 영종도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스라이 저녁노을이 지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아스테이아에게 모든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에게서 너를 해방시켜줄게.’ 아스테이아는 고개를 떨군다. 그 얼굴은 노을빛을 받아 더 슬프고 애잔해 보였다. 잠시 후 아스테이아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죽여줄 수 있어?”


  물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과속하지 않았다.

  서커스는 무수한 합으로 이루어진다. 서커스에 사용하는 단검은 날이 살아있는 것이며, 불 쇼에 사용하는 솔벤트는 폭발물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서커스단의 맹수는 맹수다. 호랑이 조련사는 팔이 하나 없다. 우리는 진짜 세계 속에서 환상을 만든다. 한 치만 삐끗하면 현실의 덫에 걸리고 마는 환상.


  주어진 시간은 6분이다. 늙은 화약공에게 폭약과 솔벤트, 도화선을 훔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졸고 있는 라오슈는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깨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수화를 배웠다. 어렸을 적 화약 사고로 귀를 먹어 말을 배울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그날 공중그네에서 아스테이아의 허리를 낚아채는 기술을 선보일 생각이다.




  연습을 끝낸 미트라는 단장실로 향했다. 계약을 마무리하고 퇴직금을 정산할 요량이다. 땀에 젖은 타이즈 차림에 어깨끈 아래로 드러난 등 근육이 갓 사냥을 끝낸 암사자를 연상시켰다. 호흡은 안정적이었지만, 단장실 문고리를 잡는 순간만큼은 심호흡이 필요했다.


  단장은 기른 수염을 어루만지며 미트라를 바라보았다. 테이블에는 퇴직 일시금과 퇴직수당, 실지급액까지 명료하게 제시된 한 장의 서류가 있다. 미트라가 공연을 마치는 대로 그녀의 통장에 3만 5,114,32달러가 지급된다. 미트라가 사인을 마치자 단장은 포식을 마친 수사자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트라는 단장의 새 애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새끼 고양이 같은 아이가 이곳을 온전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단장은 단원 그 누구에게도 본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작게는 벨트에 권총을 차고 다닌다든가 동물을 길들일 때 쓰는 채찍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 성적 취향이 확고하다는 것과 발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정도. 미트라는 스물둘이 넘어서야 자기 숙소를 가질 수 있었다. 꾸준히 줄타기를 연습한 덕이었다. 단장은 수시로 애인을 바꾸었는데, 그녀들 중 서커스단에 남은 여자는 미트라 밖에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귀여운 새끼고양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자꾸 줄어들었다. 서커스단의 그 누구도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트라는 화물칸에 놓인 드럼통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았다. 아이들이 줄어들수록 드럼통은 늘어났다. 알록달록한 유조선은 큰 항해가 있을 때면 바다에 드럼통을 내다 버렸다. ‘아이들에게 꿈을’ 배에 쓰인 문구다. 미트라는 단장의 ‘사업상 지인’이 어떤 부류 인지도 알았다. 그들은 대개 고아원과 이어진 브로커를 말했다.


  단장은 두툼한 손으로 아스테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껏 위축된 얼굴로 미트라를 올려다보는 아스테이아를, 미트라는 외면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미트라는 단장실 문을 나서며 되뇌었다. ‘이곳에 출입한 자 모든 것을 잊을 것.’ 단장의 말이다.


  허기가 몰려왔다. 미트라는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는다. 은퇴를 앞두고 식단을 신경 쓸 리 없었다. 편의점에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내키는 대로 사두었다. 차가운 통조림 하나가 손에 잡혔다. 익숙하게 통조림을 깐 미트라는 둥둥 뜬 채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골뱅이를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토기를 느꼈다.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구역질을 해야 했다. 미트라는 거기서, 아스테이아를 본 것 같았다.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발길은 어느새 미트라의 숙소에 닿았다. 문을 두드리자 슬립 차림의 미트라가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밀어젖히며 입술을 핥았다. 부드러운 입술과 달리 어깨가 탄탄하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허벅지 사이로 몸을 붙였다. 다리가 골반을 감아왔다. 오래 줄을 탄 여자의 다리였다. 그녀는 몸을 움직여 자세를 바꾸더니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젖은 몸이 버틸 수 없을 만큼 나를 빨아들였다. 나는 맥없이 사정하고 말았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나른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 쪽으로 몸을 누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짓말은 금세 들통 났다.


  유라는 고아원에서 살았다. 아무도 혼혈아를 입양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14살 유라는 고아원의 맏언니로서 온갖 잡일에 치이며 칭얼대는 아이들을 달래야 했다. 여름방학이었다. 평소처럼 아침을 배식하고 빨래를 널고 청소를 마칠 즈음 한 무리의 여학생이 고아원을 찾아왔다.


  “유라야 여기서 뭐 해?”


  유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벽에 걸린 사진들 사이에 유라 마커스의 사진이 있다. 커다란 회색 눈의 소녀, 다음 학기 유라는 ‘미국에 사업하는 아버지를 둔 혼혈 여학생’에서 ‘거짓말쟁이 혼혈 고아’가 되어 있었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한 유라는 고아원에서 나와야 할 나이가 되었다. 여성보호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유라는 고아원에서 맡아둔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을 기반 삼아 독립을 하기로 했다.


  ‘사람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유라는 생각했다. 친구도, 어른도, 아이도, 부모도 유라 마커스에게는 지긋지긋하고 증오스러운 대상일 뿐이었다. 단칸방을 구한 유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졸 인정고시를 치렀다. 같은 해 치른 대학고사 성적도 원하는 대학을 지원하는데 발목을 잡지 않았다. 유라 마커스는 거리가 가깝고 등록금이 싼 지방대학 영문과에 진학했다. 유라는 그즈음 많은 책을 읽었다고 했다.


  물건을 진열하거나 계산을 하는 일을 빼면 유라의 차가운 얼굴은 책을 향해 있었다. 손님들도 구태여 말을 걸지 않았다. 유라는 자신이 고양이 한 마리로 충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유라는 매일 11시에 찾아오는 젊은 남자에게 문득 호감을 느꼈다. 담배와 커피, 가끔 맥주를 사 가는 남자는 유라에게 말을 걸어오는 몇 안 되는 손님이었다. 유라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와 따뜻한 미소가 좋았다. 대화는 점점 길어졌다. 온도는 달랐지만 비슷한 점이 많았다. 둘 다 고아였고 독서취향이 비슷했다. 그도 삶이 ‘지독히 외롭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유라는, 자신이 녹고 있음을 느꼈다.


  유라는 종종 남는 도시락을 주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폐기 직전의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 들고도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가게 문을 나섰다. 유라는 남자의 허리를 안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책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편의점에 오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어디가 아픈가?’ ‘사고라도 난 걸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남 걱정이다. 12시가 가까워져 오자 유라 마커스는 맥주와 도시락을 챙겨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집은 가게 맞은편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빌라다. 우편함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호수를 찾았다. 그녀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기에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부드럽게 열린다. 집안은 크고 휑뎅그렁한 공간에 단출한 가구뿐 아무것도 없었다. 집을 둘러보는데 문득 안쪽 방에서


  양 울음소리가 들렸다.


  유라 마커스는 역시 앓고 있는 모양이라 생각하고 안방 문을 열었다. 거기서 유라가 본 것은, 양과 섹스를 하는 남자의 실루엣이다. 유라를 눈치챈 남자는 황급히 바지를 찾아 입었다. ‘툭’하고 맥주와 도시락이 담긴 봉지가 떨어졌다. 


  “유, 유라 내가 다 설명할게”

  남자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남자가 양과 섹스를 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야···. 사실 오늘 좀 외로웠어. 16세기 선원들은 외로움 때문에 배에 양과 소년들을 태웠다고 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 나는 소년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하지만 양은···. 유라 듣고 있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라 마커스는 당황해서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남자의 성기가 유라의 시선을 끌었지만, 이내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과 이상하게 굽어진 무릎, 발 대신 자리한 검고 반질반질한 발굽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유라, 당신을 만나고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미안해. 난 이제 사람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 너무, 너무 외로워. 난 그녀와 함께 떠날 거야.” 남자는 침대 위의 양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녀를 닮은 아이를 낳고 풀을 뜯으며 사는 게 내 운명인 것 같아. 양꼬치가 되어 죽어도 좋아.”


  유라는 할 말을 잃었다. 반인반수라니, 16세기 선원은 뭐고 저 양은 뭔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의 집을 박차고 나온 유라는 집에서 한참을 울었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유일한 식구인 데이비드를 바라본다. ‘나라면 데이비드와 섹스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를 닮은 고양이를 낳고 한 마리 고양이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유라는 도쿄행 티켓을 끊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모두 찾았다. 남자와 디즈니랜드를 가려고 했지만, 아무런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학교도 필요 없다. 유라는 마지막으로 일류 중의 일류라는 ‘태양의 서커스’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유라 마커스는 거기서 외줄을 걷는 한 여자를 보았다. 오롯이 공중에 뜬 여자는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스크린은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마치 초인 같은, 아름다운 표정이다. 그 위라면 외로움 따위는 초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라는 집을 정리하고 단장을 찾아갔다. 유라 마커스는 그렇게 미트라가 되었다.


  이야기를 마친 미트라는 이내 잠이 들었다. 나는 이불을 덮어주고 미트라의 숙소를 나와 내 숙소로 향했다. 피로가 몰려왔다.





  “두 발을 땅에 디딘 채로 날 길 원한다면 단지 길어질 뿐이야.”

  목이 긴 소녀가 키 큰 소년에게 말했다.


  “너는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위태로워 보이는 소년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폴론은 달에 간 적도 있어.”

  소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얀 아치형 이마가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한 사람에게는 한 걸음, 인류에게는 큰 도약.”

  소년은 낮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늘고 긴 팔다리가 앙상한 나무처럼 보였다.


  소년과 소녀는 달이 뜨는 모습을 지켜본다.

  어스름을 지나 파랗게 물든 밤하늘이 소녀의 눈을 닮았다.


  “넌 내가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위태로운 소년은 달빛을 받아 한층 창백해 보였다.


  “넌 두 발을 땅에 디딘 채로 날 수 있다고 믿니?”

  소녀는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소년의 발치에 금을 그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절벽이 되었다.


  “자, 여기서부터 추락선이야 뛰어내릴 수 있겠니?”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

  소년은 깎아지는 절벽을 근심스럽게 바라다보며 말했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

  소녀는 결연하게 말하고서 절벽을 향해 작은 몸을 던졌다.

  소년은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지만

  끝내 발을 떼지 못하고 길어질 뿐이었다.

  그런 꿈을 꾸었다.




  문제가 생겼다. 리허설 동안 단장은 사회자를 교체했다. 스폰서의 요구라고 했다. 스폰서는 아스테이아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했다. 아스테이아의 자리에는 유명 연예인이라는 키 큰 여자가 마이크를 점검하고 있었다. 아스테이아의 휘파람 같은 목소리에 비하면 훨씬 굵고 단조로운 톤이다. 단장은 아스테이아의 가는 허리에 팔을 감은 채 단장실로 향했다. 아스테이아의 애처로운 얼굴이 나를 돌아본다. 오후 네 시가 되면 공연이 시작될 테고 나는 선택해야만 한다.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다시 한 번 조건을 되새겼다. 막사는 불에 타기 쉽다. 나는 단장실 반대편 기둥부터 화약을 심어두었고 불을 붙이고 2분이면 1차 폭발이 시작된다. 4분 후면 중간 기둥과 용마루가, 6분에는 단장실 기둥이 폭발하면서 막사는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폭발이 실패할 가능성은 없다. 라오슈가 개발한 도화선은 결코 중간에 불이 꺼지는 법이 없다. 천으로 된 입구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테다. 무너져 내리면, 빠져나올 곳은 없다.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내가 메인이므로 앞으로 네 시간의 여유가 있다. 오프닝은 광대 분장을 한 단장의 인사와 코미디 수준의 쇼다. 원숭이나 코끼리 따위가 나오는가 하면 마술과 저글링이 주를 이룬다. 단장은 이것을 밑그림이라고 불렀다. 차츰 광고가 화려해지면서 더 높은, 고난도의 곡예가 펼쳐진다. 카메라는 무대를 둘러싼 수천 명의 관객을 스크린에 잡아두었다.


  하루하루가 죽은 것처럼 행복한 그들이 저 번듯하고 화려한 스크린 너머를 과연 볼 수 있을까? 성 노예와 다름없는 소녀와 외로움으로 세상을 등진 채 외줄을 걷는 여자, 청각을 앗아간 폭약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남자와 호랑이에게 팔 하나를 잃고도 남은 팔로 먹이를 준비하는 사육사,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불만에 찬 남자가 있다는 걸, 과연 알 수 있을까? 스크린은 철문처럼 단단하게 그사이를 가로막아 두었다. 


  나는 암전된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광대 분장을 했지만, 우습다기보다는 기괴한 얼굴이다. 분장은 얼굴의 화상을 막아준다. 옷에는 방염처리가 되어있고 온몸에 불을 붙여줄 특수피복을 덧입었다.


  오케스트라의 비장한 음악과 함께 불꽃이 솟아오르자 무대 양쪽에 감추어진 케이지에서 카인과 아벨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스테로이드를 넣은 고기를 먹으며 자라난 두 괴물은 꼬리를 뺀 몸길이만 4m에 이른다. 특히 카인은 조련사의 팔을 해치운 뒤로 한동안 공연에서 제외되었다가 오늘 다시 복귀했다. 녀석은 사람 고기 맛을 알았다.


  우리는 진짜 세계 속에서 환상을 만든다.


  횃불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두 마리 호랑이를 응시했다. 노란 호안이 사선으로 꼬나보며 빈틈을 찾는다.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렇게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차이를 감지한다. 위기는 아름다움을 만든다고 단장은 말했다.



  카인은 등허리를 세우고 과감하게 육박했다. 나는 투우를 하듯이 카인을 흘리고 입안의 튜브를 깨물어 횃불에 분사한다. 커다란 불길, 카인이 아니다. 불길은 무대 중심의 기둥에 닿았고 마침내 설치해둔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앞으로 6분, 호랑이 따위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나는 특수피복에 불을 붙이고 장치대 쪽으로 질주했다. 카인이 맹렬하게 따라붙었지만, 몸에 붙은 불길에 더는 다가오지 못했다. 장치대는 새총과 같은 원리다. 몸을 누이고 버튼을 누르자 불붙은 몸이 13m 위로 쏘아 올려졌다. 환호성이 쏟아진다. 곧장 공중그네를 잡은 나는 온몸의 무게를 실어 다음 그네로 다음 그네로 빠르게 도약했다. 채 2분이 걸리지 않아 마지막 그네에 닿았다. 단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단장실은 판옵티콘과 다를 바 없었다. 아래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아래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이렇게 곡예를 하지 않는 이상, 나는 그네를 크게 뒤로 빼고 반동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창문 깨지는 소리 대신 폭발음이 귀를 때렸다.



  특수피복은 전부 연소했다. 단장은 창문 너머를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막사 1/3이 붕괴한 그곳에 불길과 연기가 일었다. 째지는 비명이 들린다. 가슴을 드러낸 아스테이아를 살피고 발목에 숨겨둔 단검을 뽑았다. 짐승 같은 놈이다. 단검을 던지려는 순간 단장은 아스테이아를 붙잡고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댔다. 38구경 리볼버, 남은 시간은 3분, 러시아어로 욕설을 지껄이고 있는 단장을 어떤 식으로든 제압해야 했지만, 방법이 없다. 광대 분장을 한 단장과 나는 반라의 아스테이아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막사는 반파되었지만,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스크린은 여전히 광고를 영사한다. 더는 미룰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때 내 눈길을 끈 것은 아스테이아의 손이었다.


  ‘내가 3을 세고 몸을 숙이면 그때 단검을 던져.’

  수화다. 아스테이아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1, 2, 3.’



  단검은 정확히 세 바퀴를 그린 뒤 단장의 이마에 꽂혔다. 총성이 들리긴 했지만, 아스테이아는 웅크린 채 몸을 떨 뿐 총에 맞지 않았다. 몇 초가 남았을까, 망설일 시간이 없다. 나는 아스테이아를 일으켜 세우고 단장의 머리에 박힌 단검을 뽑아 들었다. 시뻘건 피와 뇌수가 엉겨왔다. 단장실 외벽을 단검으로 찢었다. 13m 위, 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나는 아스테이아를 끌어안았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길이 나를 올려본다.


  “뛰어내릴 수 있겠어?”


  물론


  나는 그대로 몸을 던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내가 어려서 자주 떨어졌을 때, 안전그물을 등으로 받아내던 감각을 기억한다. 공중에서 몸을 비트는 1초, 1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아스테이아를 안은 채로 몸을 다 비트는 순간 폭음과 함께 단장실 쪽에서 화염이 솟아올랐다. 아스테이아는 더욱 내 품으로 파고든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마주친 아스테이아의 눈은, 마침내 심연이 되었다.




  눈이 부셨다. 붉고 형체가 없는 빛이다. 붉은빛이 얼룩지기 시작하자 온몸에 격통이 느껴졌다. 살아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발가락도 마찬가지로 움직였다. 상체를 일으키자 부드러운 감촉이 미끄러지는 게 느껴졌다. 따뜻하다. 익숙한 향기가 났다. 눈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그 부드러운 형체를 더듬어 보았다.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배어 나온다. 형체는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나는 차라리 눈을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스테이아다.


  내가 등으로 받아냈다고 생각했던 땅에 아스테이아가 깔려있다. 붉은 피 웅덩이에 하얗게 드러난 아스테이아의 얼굴은, 형태가 없었다. 인공호흡을 하려고 가슴을 누르는 순간 몸이 가라앉았다. 갈비뼈가 산산이 부서진 탓이었다.



  다시 폭음이 들렸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붉게 타오르는 막사에서 몇 개의 불꽃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솟아올랐다. 피날레로 쓰이는 폭죽. 폭음과 함께 온통 붉은빛이, 붉은빛이 하늘을 뒤덮는다. 붉은빛은 한강에 스며들었다. 막사가 타오르는 열기가 끼쳐온다. 살타는 냄새, 비명이 들린다. 대교에는 붉은 트럭 여러 대가 사이렌을 울렸다. 한강 둔치와 대교 위의 시민들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몇몇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막사는 폭죽을 몇 차례나 더 쏘아 올렸다. 내 눈에 비친 것은 어떤 기술로도 탈출할 수 없는 막막하고 붉은 장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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