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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21. 2020

오디오 게이트



  베를린 시내 다섯 곳에서 총격과 자살폭탄 테러가 있었다. 공원과 광장, 시장과 극장에서 총 130명이 죽었다. 부상자는 세배였다. 총책은 수니파 이슬람 무장단체 IS 출신으로 5일 후 독일 경찰특공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한 명은 국경을 넘나들며 천 킬로미터를 도주했다가 이탈리아에서 체포되어 압송되기도 했다. IS는 공식 성명을 통해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했다. 이민가정 출신의 젊은이와 난민 틈에 섞여 들어온 IS 대원도 주범에 포함되었다. 전문가는 IS가 현지의 소외된 청년들, 이른바 ‘외로운 늑대’를 포섭해 테러에 이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경비가 강화되고 국경은 문을 걸어 잠갔다. 아말도 그날 경찰에 연행되었다.




  “왜 그래? 이거 싫어해?”

  여선이 말했다.


  “아뇨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요.”

  아말은 우리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제 고향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는 게 죄에요. 그런데 구호 식량마다 돼지고기가 들어있었죠. 전 사람들이 버리고 간 통조림을 주워 다가 신물이 날 정도로 먹었어요. 아, 미안해요…. 이상한 이야기 해서.”

  아말은 나이프로 소시지를 잘랐다. 


  “다 지난 일이야.”

  내가 말했다. 


  “그럼 우리, 미래의 열쇠공을 위해 건배 한번 할까요?”

  여선이 잔을 들며 말했다. ‘프로스트’라는 건배사가 이어졌다. ‘당신의 행운을 빈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좀 신나는 거로 듣자” 

  여선은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쇼팽이 사라지고 비트 섞인 빠른 랩이 들려왔다. 여선은 젊은 애가 만날 방구석에서 지루한 음악만 듣는다며 아예 클럽에 데려가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넌 분명 인기가 있을 거야.”

  여선은 팔짱을 끼고 확신하듯 말했다. 아말은 수줍은 듯 머리를 긁는다. 확실히 또렷한 이목구비에 회색 눈동자가 제법 매력적이었다.


  나는 강아지를 선물했다. 다리가 짧은 잡종이다. 애견샵 창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외면하지 못했다. 이름은 아인, 여선이 지어주었다. 녀석은 이미 동거인이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내 집에서 기르기로 했다.


   “너는 어쩌다 아저씨랑 같이 사는 건데?” 

  아말은 살짝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심한 듯 와인을 한잔 비우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일에서 난민을 받는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난민 캠프에 합류했죠. 정착교육을 받고 지원금으로 운 좋게 집을 구했어요. 그걸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말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여선은 그만해도 좋다는 손짓을 해 보였다.


  “제 비명을 들은 아저씨가 절 찾아왔어요. 이야길 듣더니 또 악몽을 꿀 거 같으면 여기서 자도 좋다고 했어요. 건물 관리도 맡겨줬고요.”     

  아말이 나를 은근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건 자꾸 민원이 들어와서 그런 거야 세입자들이 비명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보채길래 어쩔 수 없었어. 관리인도 필요했고.”

  절반은 사실이었다. 여선은 대견하다는 듯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선은 뱅쇼를 만들어 주겠다며 주방으로 향했다. 술 끓이는 향이 거실까지 퍼져왔다. 아말은 약간씩 리듬을 탔다.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여선이 가져온 와인글라스에서 뜨거운 김이 솟았다. 뱅쇼는 계피와 설탕을 넣고 끓인 와인으로 독특한 향기가 났다. 건배를 하는데 음악이 멎었다. 곧 아나운서의 경직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IS의 소행으로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여선은 라디오를 껐다.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아말은 불편한 듯 잔을 내려놓았다.   


  여선의 손이 어깨에 닿았다. 취기 때문인지 적막 때문인지 잠시 정신을 놓은 듯했다. 여선은 나에 관해 묻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저 소시지만 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 년 전, 그날도 방금처럼 침묵과 취기 속에서 깨어난 듯했다. 수많은 꿈을 꾸고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그날 나를 깨운 것은 여선의 손이 아니라 자동응답기의 목소리였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은 안전합니다. 금고를 확인해 보십시오. 곧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얀 벽에 흰 가구들, 아무런 장식도 없는 그야말로 공간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진공관 오디오만이 방 안에 둥둥 뜬 느낌이다. 집에는 생필품부터 식재료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전혀 일상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호텔에 갓 체크인한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닐 테다. 거실에 나가 금고문을 열었다. 상당한 금액의 현금과 통장, 건물등기를 포함한 서류가 들어있었다. 서류철 안에는 한국 여권과 독일 영주권이 포함되어 있다. 붉은색 명함도 발견할 수 있었다. ‘슈나이더’라는 이름과 주소가 적힌 심플하기 이를 데 없는 명함이다. 이 남자가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겼음을 직감했다. 그 어색한 말투, 주소는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아래 칸 깊숙이 도시락처럼 생긴 알루미늄 케이스를 열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튀어나왔다. 케이스 안에는 탄창과 탄알, 부담스러운 크기의 자동권총이 들어있었다. 무거운 수수께끼였다.




  면도날이 지나갈 때마다 모르는 얼굴이 드러났다. 집에는 금방 적응할 수 있었지만, 내 모습은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서류상 나이는 43살, 생일은 이 집에서 깨어난 날이다. 자동응답기의 의사는 어떤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리셋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부작용이 좀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하지만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없었을 때이니 안심하십시오. 당신은 안전합니다. 제 처방을 따라주기만 한다면.’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 묻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곤 ‘당신은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퍽이나 위로가 되었다. 면도를 끝내고 면도칼과 거울 속의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게 당신을 위한 길입니다.’ 의사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당신처럼 빠르게 배우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여선은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 말할 때마다 짧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독일어를 배운 지 두 달 차였다. 의사는 현지 적응의 일환으로 사람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된다나? 그녀는 독일 유학생으로 용돈 벌이 차 현지인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의사의 어색한 한국어도 그녀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감시를 의심했지만, 격일로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회화가 거의 완성될 즈음 수업은 일상적인 대화와 구분되지 않았다. 


  “이제 더 배울 필요가 없어요.” 


  내가 어버버 하는 흉내를 내자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여선은 사소한 것에도 크게 반응했다. 반응은 머리카락에서 시작되는데, 말할 때마다 짧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면서 좋은 냄새가 났다. 머리카락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녀가 오지 않는 날이면 온종일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전생의 기록은 전부 사라진 듯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웹에서는 내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몇몇 사이트의 아이디를 새로 만들었다. zombie0415, 깨어난 날짜를 뒤에 붙였다. 


  웹에 죽은 사람의 SNS나 블로그가 무덤처럼 쌓여가고 있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내 흔적을 찾는 동안 그런 SNS 계정을 몇 개 본 적이 있다. 국화 이미지와 함께 20XX년 X월 X일 사망이란 타임라인이 뜨는 계정이면 그 사람이 남긴 게시물을 남김없이 읽어보았다. 


  여선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았다. 호기심이 우울한 기분을 뒤덮었다. 역시 회사에서 보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또래 친구들과 찍은 평범한 사진들, 일상을 다룬 토막글 몇 개가 전부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개 스크랩하고 친구 신청 버튼을 눌렀다. 


밖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창문으로 낯선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든다. 여선의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곧 초인종이 울릴 것이다. 여선만 있다면 이 익숙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재민 씨는 지금 무슨 일 하세요?”         

  “임대업?”

  “아무도 없는 것 같던데요?”

  여선은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이제부터 받아야지, 혹시 방 필요해?”


  여선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교에 기숙사에 살고 있다고 했다. 텅 빈 새 건물이 흥미롭다는 듯 질문을 이어나갔는데, 이럴 때면 꼭 튀어 오르는 고무공을 보는 것 같다. 여선이 돌아가고 진지하게 방을 내놓을 계획을 세웠다. 돈이 급하진 않았지만, 내 소유의 건물을 놀려둘 이유는 없었다. 온라인을 통해 부동산에 의뢰했더니 괜찮겠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세 사람이 식탁에 앉아있다. 두 사람 사이에 알아들을 수 없는 고성이 오간다. 귀를 막았다. 감각이 어지러움과 역겨움으로 비틀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을 잡고 싶었지만, 팔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어디론가 끌려들어 가는 감각을 느꼈다. 세 사람은 거실에 앉아있다. 나는 가운데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두 사람은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무척이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여자의 뺨을 갈겼다. 뺨 맞는 소리가 이명처럼 머릿속을 울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빨라지다가 필름이 끊기듯 사라졌다. 나는 낯선 여자의 손을 잡고 있다. 그녀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얼굴을 올려다보고 싶었지만,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눈은 두 사람을 향해있다. 두 사람도 나를 바라본다. 고철을 보는 눈빛도 그것보단 따뜻할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손에 쥘 수 있는 도구를 떠올렸다. 손바닥에 금속성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겼다.     


  여기까지 쓰고 노트를 덮었다.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혼란을 느낄 때마다 글을 쓰는 버릇을 들였다. 어떤 주제건 좋았다. 전날 꾸었던 꿈이나 여선과 나누었던 대화, 단순한 일기도 좋았다. 


  파란 알약을 먹고 헤드폰을 쓴 채로 오디오를 켜면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단순한 뮤직 테라피 라기보다 마약이 의심되는 감각적인 환상이다. 의사는 도통 제대로 설명해주는 법이 없었다. 치료의 진도를 물을 때면 얼버무리곤 사람을 사귀라는 둥 외출을 하라는 둥 쓸데없는 간섭으로 사람을 귀찮게 했다.


  방은 금세 나갔다. 시세 절반에 못 미치는 월세에 학생들이 주로 찾아왔는데, 1, 2층은 현지 학생들이, 3층은 한인 학생 두 명과 ‘아말’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차지했다. 내놓고 세만 받으면 될 줄 알았지만, 뜻밖에 해야 할 게 많았다. 어제는 아래층 학생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길 꺼냈다.   


  “302호에서 밤마다 비명이 들리는데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왔습니다. 찾아가도 문을 안 열어줘요. 경고라도 한번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학생은 야속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시간이면 나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니 비명을 지르는지 뭘 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학생을 달래 돌려보내고 302호 초인종을 눌렀다. 꿈이 뒤숭숭한 게 비명 탓인지도 몰랐다. 녀석은 매일 밤 악몽을 꾼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용건을 마친 나는 방으로 돌아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공습 예보 전단이 떨어지던 날 밤, 아말은 몰래 자물쇠를 풀었다. 포로는 겁에 질려있었지만, 이내 다른 포로들을 이끌고 빠져나갔다. 다음은 부녀자들을 가둔 방이었다. 어리고 예쁠수록 값이 비싸다. 적극적이었던 포로들과 달리 도통 미동이 없었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아말은 자물쇠를 열었고 나머지는 그들 몫이었다. 그대로 IS구역을 넘어 레바논 헤즈볼라 구역으로 향했다. 그림자처럼 한 사람이 따라붙었다.    


  아말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었다. 해가 뜨기 전에 최대한 이동해야 했다. 언 듯 바라본 그 아이는, 비싸게 팔릴법한 소녀였다. 동이 트고 있었다. 잠깐 언덕에 앉아 다리를 풀었다. 가방을 열어 빵을 꺼내는데 총성이 들렸다. 아이의 어깨에 구멍이 뚫렸다. 포복으로 얼마간을 이탈하고 전력으로 뛰었다. 몇 발의 총성이 들릴 뿐 추적해오지 않았다. 바위산 부근에 비트를 파고 몸을 숨겼다. 동이 튼 이상 더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허기가 몰려왔다. 빵을 씹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죽음 같은 잠이 쏟아졌다. 


  그날 밤, 아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녀석들은 이미 소녀를 시간(屍奸)하고 버려두었다. 당하는 순간까지 살아있었을지도 몰랐다. 제발 즉사했길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녀석의 비트는 그 아이의 무덤이 되었다. 빵 반 덩어리를 던져 넣고 흙을 덮었다.


  레바논 시내에 도착해 시리아 난민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문이 닫혔다. ‘정책이란 때론 바뀔 수 있다’는 그 한마디가 국경마다 수천 명의 난민을 가로막았다.           


  아말이 독일에 도착했을 때,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장이 서 있었다. 솜사탕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반쯤 삭은 돼지고기가 신물과 함께 올라왔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화약 냄새를 닮았다. 짧은 정착교육을 받고 주어진 지원금으로 지금의 방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그 아이가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작문에 재능이 있는지 몰랐어요. 소설이에요?”

  여선이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전부 사실이야, 내 꿈도 그 녀석 이야기도.”

  인스턴트커피를 뜯으며 말했다. 여선은 고개를 한번 갸웃거린다.


  “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당신은 그렇게 기억을 잃은 사람 치고 너무 여유롭지 않아요?”

  “하지만 사실인 걸” 나는 여선에게 커피를 건넸다.


  “음…. 잘 모르겠지만, 글은 계속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독일어로 써보는 건 어때요?”


  내 이야기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너무 여유롭지 않아요?’ 그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말이라면 어땠을까? 내가 10살쯤 더 어렸다면, 이 혼란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말과 대화를 나누고 쓸모없어 보였던 권총이 실용품처럼 느껴졌다. 두려웠던 것은 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분해조립부터 사격까지 권총에 대한 모든 것을 숙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몸 곳곳의 흉터도 예사롭지 않았다. 사십 대 중반의 한국 남자가 권총을 익숙하게 다루는 건 매우 드문 경우다.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힘들게 메워놓은 무덤을 다시 파헤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말은 21살 청년이라기엔 훨씬 어려 보였다. 아마도 십 대 중후반쯤, 긴 머리카락 때문에 어쩐지 여성스러운 인상이다. 녀석은 매일 밤 악몽을 꿨다. 생활도 완전히 망가진 모양으로 몸에 뼈가 다 드러나 보였다. 월급 절반을 가불 해주고 건물관리를 부탁했다. 계단청소나 세입자 민원 같은 귀찮은 일을 덜 요량이었다. 또 소리를 지르면 곤란하니 악몽을 꿀 것 같으면 이 집에서 자도 좋다고 허락해주었다.


  만들어준 일이나 다름없지만, 녀석은 성실하게 일했다. 영리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언젠가 열쇠를 잃어버린 입주자의 문을 따주기도 했다. 전기를 다룰 줄도 알았고 계단은 먼지 하나 앉는 법이 없었다. 밤이면 베개를 안고 내 집으로 올라왔다. 재밌는 것은 내가 녀석을 깨우는 날 보다 녀석이 나를 깨우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내가 독일어 작문을 연습하고 있으면 아말은 여선에게 회화를 배웠다. 수업료를 대신 내겠다고 하자 ‘재능기부’라며 마다했다. 그 사이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덕분에 한결 성숙해 보이는 한편 아말은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제법 살이 붙었다. 둘 사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사이좋은 오누이를 보는 것처럼 뿌듯하면서도 약간의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이거 켜 봐도 돼요?”

  아말이 오디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약을 먹고 헤드폰을 쓰지 않으면 보통 오디오와 다를 바 없었다. 아말은 음악을 좋아했다. 재미가 붙었는지 근처 시립도서관에서 음반을 잔뜩 빌려다가 오디오에 돌려보곤 했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기에 딱히 방해되지는 않았다. 일이 없으면 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기에 차라리 심심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조용한 음악을 상기된 표정으로 듣는 소년은 아말이 거의 유일할 테다. 


  “제 라디오로 잡히는 주파수가 뉴스랑 클래식 채널밖에 없었어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오디오에서는 쇼팽이 흘러나왔다. 커피 두 잔을 타서 한 잔을 아말에게 건넸다. 커피를 홀짝이며 음악에 집중하는 아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잠겨 들었다. 헤드폰 없이도, 약이 아닌 약간의 카페인만으로도 잃어버린 기억의 감각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외출을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아말은 나에게 시립도서관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얀 주사위 같은 도서관 건물은 중심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텅 빈 사각형 공간이 있다. 기하학적인 멋을 부린 건물이었다. 여선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병원 같았다. 아말이 음반을 고르는 동안 나는 유럽 문화사 한 권과 얇은 소설책 한 권을 빌렸다. 


  “그냥 같이 들으면 안 돼요?”

  헤드폰을 쓰는데 아말이 말했다.  


  “이게, 뮤직 테라피 같은 거라서 헤드폰을 안 쓰면 효과가 없어.”  

  파란 알약을 집으며 말했다.


  “들어봐도 돼요?”

  아말에게 헤드폰을 건넸다. 오디오의 진공관이 달아오르자 까만 방이 노랗게 물든다. 시원한 콧날 옆으로 커다란 눈이 반짝거렸다. 기억을 리셋해야 하는 쪽은 이쪽이 아닐까? 나는 한동안 아말의 눈가가 반짝이는 걸 지켜보았다.


  아말은 이제 작문을 배운다. 내년에는 기술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열쇠 기술에 흥미를 보였다. 나는 더 배울 필요가 없었으면서도 그녀를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직 독어가 서툰 아말이 고맙기도 했다. 




  의사는 ‘당신은 성공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길 전해왔다. 세 사람 이상 관계를 확장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나? 비록 하나는 강아지긴 하지만, 슈나이더는 대부분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폐인처럼 연명하다가 ‘잘못’되고 만다고 했다. 이번에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야외수업 어때요?”

  여선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어깨 아래로 내려왔다. 패딩 모자 뒤로 부채처럼 펼쳐질 정도다.


  “그럴까?”

  “빨리 나오세요. 아인도 데리고, 크리스마스 시장은 처음이죠?”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있다. 크리스마스 보름 전부터 장이 들어서고 시청 근처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장식품을 사서 트리를 꾸미기로 했다. 한 걸음만 움직이면 다른 상점이, 그 옆에 또 다른 상점이 시선을 끌었다. 가족 단위로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운영한다고 여선이 말해주었다. 노점 식당에서 학센을 해치우고 광장으로 향했다. 아말은 거의 뛰어다니듯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여선은 아인을 데리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날씨는 추웠지만, 노란 크리스마스 등과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어떤 온기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아말이 광장 가운데 멈춰 섰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길거리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중년의 독일 남자가 심취한 듯 건반을 탔다. 잘 손질된 수염이 퍽 신사답다. 음률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10유로 지폐를 꺼내 상자에 넣었다.     


  “쇼팽 전주곡 4번 E단조예요”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아말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아말은 여선과 음악에 대해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여선의 모습이며 꼬리를 흔들며 앉아있는 아인, 처음 보는 표정의 아말, 한 곡이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연주자는 목례를 하고 다음 곡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여선이 곡 제목을 맞췄다. 두 곡을 더 듣고서야 우리는 다른 곳을 향했다.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요. 뱅쇼 사 올게요.”

  여선은 북적거리는 시장으로 사라졌다.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말은 옆에서 자기가 산 물건을 하나씩 꺼내보며 미소 지었다. 근사한 전나무를 사고 싶었다. 우리가 꾸민 트리 앞에서 카드와 선물을 교환하고 크리스마스 음식을 잔뜩 사다가 맥주 파티를 할 테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몸에 열이 올랐다. 잠깐 아말에게 아인을 맡기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여선을 혼자 보낸 게 마음에 걸렸다. 


  “사람이 되게 많아요. 좀 걸리겠는데요?”

  여선은 팔짱을 끼고 짝 다리를 짚었다.


   “좀 비싸지 않아?”

   “잔은 반납하면 값을 내줘요. 가져갈 거죠? 이런 게 나중엔 다 추억인데…. 재민씨는 그런 거 없어요? 추억 같은 거”


  “난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 사실이야. 기억을 전부 지웠나 봐, 내가.” 

  나도 모르게 의사의 어색한 말투가 따라 나왔다.


  “진짜 재미없다.” 


  머그잔 세 개가 우리 앞에 놓였다. 암적색 와인에서 계피 향이 났다. 여선은 잔을 집다 그만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아까운 듯 쭈그려 앉아 깨진 머그잔을 바라본다. 한잔 더 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멀리서 탁음이 메아리쳐왔다. 익숙하면서도 불온한 소리였다. 본능적으로 여선을 덮쳐 안았다. 곧 귀가 멍해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과 함께 총성이 메아리친다. 곧 넘어지고 부딪히고 구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리 옆으로 사람이 쓰러졌다. 떨고 있는 여선을 보며 손짓했다. ‘엎드려 있어.’ 여선은 커다랗게 뜬 눈으로 내 손을 주시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간헐적으로 총성이 들려오더니 이내 소리가 멎었다. 또 한 번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들려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말이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손이 붉게 물들었다. 엎드린 여선의 머리카락 사이로 암적색 액체가 베어 나왔다. 비릿한 향기에 숨이 막혔다. 다시 시야가 흐려졌다.




  여선의 배에 손을 올렸다. 옆구리에 작은 흉터가 느껴졌다. 아물어가는 흉터는 선명한 분홍색이다. 여선은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훑었다. 어깨에서부터 등, 팔과 가슴, 흉터가 있는 곳마다 그녀의 손이 닿았다. 계피향이 났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와 함께 퇴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누워있는 내 옆에 앉아 흉터를 내보이며 비키니는 다 입었다는 둥 애써 밝은 척을 해 보였지만, 그 눈빛을 보고 있으면 아말 생각이 났다.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나는 펜을 쥐고 오늘 꾼 꿈을 기록했다. 벌써 네 권 째다. 얼마쯤 작문을 끝냈을 때 여선은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몸을 숙여 노트를 바라본다. 그녀의 옆모습과 체취에도 격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한없이 그리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여선은 말없이 돌아서서 오디오에 CD를 넣었다. 진공관이 예열되고 곧 베토벤이 재생된다. 여선이 생일날, 아말에게 선물했던 CD였다. 침대 한쪽에 걸터앉아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이 아말과 꼭 닮았다. 


  수사를 담당한 형사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내가 귀찮았는지 녀석이 단순한 난민 출신이 아닌, IS소년병이었다는 게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이도 출신도 이름도 속였음은 몰랐다. 알 수 없는 동질감의 정체와 마주한 듯했다. 면회는 불가능했고 당국에서는 추방까지 염두할지 모른다는 말이 전해졌다.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가려 구요.”

  여선의 표정이 어둡다. 그녀는 내가 들을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그녀가 돌아가고 나는 노트에 그녀의 이야기를 적었다. 


  백화점과 지하철은 여선의 전부였다. 독어 독문과를 졸업하고 취직한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팔았다. 그나마 주홍빛 온기를 주던 가스등은 형광등 빛을 내는 LED로 교체되었고 도시는 한층 더 밝아졌으나 여선에게 어떤 온기도 주지 못했다. 화장한 얼굴이 지하철 좌석 맞은편 창문에 비친다. 여선은 웃고 있다. 머릿속은 텅 비어있다. 피로가 몰려왔다.


  그럼에도 여선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공들여 화장을 지우고 다리를 마사지한다. 하지정맥류에 걸렸다는 사수의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아무리 피곤한 날에도 영화는 꼭 한 편씩 보곤 한다. 칙릿. 혹은 유럽 영화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질려가던 차였다. 무의미한 웹서핑을 하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선의 원룸 앞에는 하천이 흘렀다. 문득 림마트 강에 비친 달이 떠올랐다. 독문과 졸업 기념으로 다녀왔던 독일 여행, 면세점에서 구매한 샤넬이 10평짜리 원룸 한구석에 영롱한 빛을 발한다. 눈물이 났지만, 입은 여전히 웃고 있다. 그 소름 끼치는 표정이 싫었다. 여선은 다음날 샤넬을 들고 도망치듯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선이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그녀의 계좌에 수업료를 입금했다. 아말의 몫과 퇴직금을 포함한 적당한 금액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가자는 그녀의 제안은 거부했다. 무덤을 파헤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아인과 함께 아말을 기다린다.




  남자는 칼날이 오가는 틈 사이를 피해 가며 건반을 눌렀다. 쇼팽을 치는 듯했다.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나가고 그 위로 건반 덮개가 떨어졌다. 뱃고동 소리 같은 비명이 들렸다. 남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피아노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피아노와 함께 타오른다. 붉게 무너지는 모든 틈 사이에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붉은 액체가 흘러넘쳤다. 금속성의 불쾌한 냄새가 와인 향과 섞여 들었다. 불길은 나에게로 번져왔다. 손가락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손가락을 중심으로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구멍은 점점 커지고 풍경들이 유화처럼 뭉개졌다. 나는 그 구멍 속으로 튕겨 나갔다.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었다. 아인이 내 손가락을 물어뜯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자 곧장 침대에서 내려와 짖는다. 오디오 진공관이 무드 등 같은 빛을 발했다. 아인이 거실로 달려 나갔다.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말의 뒷모습이 보였다. 도망쳐 나온듯했다.


  “다가오지 마세요.”

  돌아보는 아말의 눈빛이 차갑다. 


  멈춰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월광 덕분에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금고문이 열려있었다. 탁자에 알루미늄 케이스가 열려있다. 내가 한 발짝 다가가자 아말이 권총을 겨눴다.


  “이제 다 끝났어요. 추방이에요. 더 도망칠 곳은 없어요.”


  “맞아 다 끝났어.”

  나는 자세를 낮춰 보였다. 아말은 총구를 내린다.


  “아니에요. 저도 똑같은 놈이에요. 당신은 제가 불쌍하고 순진한 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틀렸어요. 제가 어떻게 금고를 열 수 있었는지 말해줄까요? 당신이 자고 있을 때면 몇 번이고 시도했어요. 문을 열고 생각했죠. 봄이 오면, 그 돈을 가지고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미안해요. 용서해주세요.”


  아말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었다.


  “자꾸 생각나요. 제게서 도망치던 사람들의 눈빛, 비명소리, 시체들…. 경찰에 연행되면서 생각했어요. 이젠 그냥…. 다 끝났으면 좋겠어요.”

말을 마친 아말은 권총을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아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그런 동작이 가능했는지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튀어나가듯 아말에게 접근해 양손을 교차시켰다. 왼손에 권총 슬라이드가, 오른손에 손잡이 아래가 닿음과 동시에 권총이 내 손에 쥐어졌다. 탄창을 내리고 슬라이드를 젖혔다. 탄알이 튀어 올랐다. 모든 동작은 한 번에 이루어졌다. 권총을 버리고 아말을 끌어안았다. 따뜻했다. 등까지 고동 소리가 울렸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새벽 다섯 시, 방송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염불 같기도 하고 타령 같기도 한 낯선 노래가 들려왔다. 내가 경계를 서는 동안 아말은 자물쇠를 만졌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아말은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낯선 노래도 제법 들어 줄만 했다. 그들을 데리고 돌아가는 길, 동이 트면서 붉은빛이 돌았다. 우리는 소총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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