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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23. 2020

다다


 ‘미친 나무’


  다다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시간이 부지런히 금을 긋고 있을 때도 다다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계집처럼 그 사이를 유희하곤 했다.


  다다를 생각 하면 뭉텅 잘려나가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잘려나간 자리에 새 가지가 꽂히고 살아남아서 다른 색의 기억을 피워내다가 흩어져 내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땅속에 처박힌 굳건한 입이다. 몸속에 나이테 같은 문장을 새기고 미친 꽃을 피우고 싶었다.


  중간고사가 한참이던 때에도 나는 잔디밭을 뒹굴며 군에서 배운 담배를 태웠다. 내키지 않으면 수업을 빼먹기 다반사였다. 자취방은 어둡고 찌든 냄새가 났다. 누울 자리를 만들려면 쓰레기부터 치워야 했다. 몸에서 홀아비 냄새가 났다. 자기 전 바퀴벌레와 눈을 마주쳤다.  


  다음날 아침 목욕탕에 갔다. 몸의 물기를 닦는 동안 전신 거울로 꼼꼼히 살핀 몸은 20대 남성의 몸이라기엔 어폐가 있었다. 처진 뱃살과 마른 팔, 근섬유가 있긴 한지 의심스러운 가슴팍, 이상하게 뚱뚱한 하체가 전체적으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울 속 마주친 얼굴은 움푹해 보였다. 그곳에 한가득 혐오감을 담고 있다.


  입주 후 처음으로 자취방을 청소했다. 담배 선인장을 내다 버리고 대용량 쓰레기봉투에 건초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잡히는 대로 쑤셔 넣었다. 지저분한 바닥에 압살 당한 바퀴벌레가 껌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바닥을 쓸고 매트릭스와 이불을 내놓자 텅 빈방 안에 신선한 공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자취방은 거의 비어 있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월 3만 원 밖에 하지 않았다.)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시들시들했던 중간고사를 만회하기 위해 대도서관에 머물며 늦게나마 수업을 따라가려고 애썼다. 


  나는 전기나 토목, 전자, 건축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비파괴 공학’이 마음에 들었다. 무전기처럼 생긴 장비를 매고 주파수를 방사해 건물이나 기계의 고장 난 부분, 금 간 부분을 찾아낼 때면 공들여 감춘 비밀을 꿰뚫어 본 것 같은 희열을 느끼곤 했다. 전공에 집중할수록 나는 대칭에 집착하는 강박과 함께 사람을 상대로도 주파수를 쏘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구멍 난 학점을 메우기 위해 계절 학기를 들었다. 교양필수와 개인적인 흥미로 신청한 서양 미술사, 나는 거기서 다다를 만났다.       


  코끼리 다리와 마주쳤다. 과실을 향하던 중이었다. 기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대한 코끼리 다리가 보였다. 나는 하나뿐인 코끼리 다리를 보면서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왜 네 개가 아닐까’ 건물을 한번 돌아봤지만 나머지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흐릿하게 찍힌 CCTV 사진과 함께 범인을 찾는다는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넓게 파인 라운드 티며 스키니 진, 가느다란 체형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대자보에는 기둥에 붙어 작업에 몰두하는 사진과 더블백을 맨 채 유유히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찍혀있다. 나는 학과 사무실로 찾아가 범인의 신상을 고했다. 서양미술사 자기소개 시간 그녀는 자신을 ‘다다’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변기도, 자전거 안장도 이름만 붙이면 예술품이 되던 게 벌써 한 세기 전입니다. 21세기 인간 스스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다다의 표정은 진지했다.    


  “니가 일렀지?”

  당황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다는 내 멱살을 잡고 강의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서양미술사 강의였다. 얼굴이 빨갰다. 역한 술 냄새가 났다. 나는 몸을 빼려 애쓰며 대꾸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눈을 피하고 말았다.


  “너 말고 공돌이 새끼가 또 있어?”   

  어찌할 줄 몰라하는 사이 다다의 몸이 내 쪽으로 포개졌다. 당혹감과 불쾌감, 부끄러움 같은 감정들이 솟아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다가 한걸음 떼는 순간, 나의 가슴팍에서 흘러내리는 토사물이 김을 내고 있었다. 새로 산 티셔츠인데….


  “아․․․.”

  다다는 뒤돌아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발길을 돌렸다. 휘청이는 모습이 영 불안했다. 


  다음 주 수업 다다는 내 옆에 앉았다. ‘그날은 미안했다.’라고 말했지만, 전혀 미안한 기색이 아니었고 깔깔깔 웃어 보였다. 어이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 자판기에서 조지아를 뽑았다. 캔이 떨어지는데 뒤에서 손이 뻗어왔다. 다다는 내 조지아를 쥐고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이건 너 해라”

  나는 다다를 흘겨본 후 음료수 한 캔을 더 뽑고 레종을 꺼내 물었다. 


  “그거 알아? 그 건물 설계한 사람이 너희 교수더라 사진 찍어서 메일 보내줬지, 좋아하던데?” 

  다다는 강아지처럼 웃어 보였다. 


  나는 한 달 동안이나 그녀의 말보로를 피해 다녔다.


  “일어났어?”

  다다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한없이 불안하게 떨리는 내 표정을 즐기는 것도 같았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 여자 화장품 냄새가 났다. 다다의 기숙사였다. 남학생이 여자 기숙사에 들어왔다가는 무슨 징계를 받을지 몰랐다. 종강기념으로 마신 술이 문제였다.  


  “화장은 내가 해놨어, 고맙지?”

  다다의 손거울 안에는 화장한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가리킨 곳에는 가발과 붙임머리, 세트로 맞춘 옷과 신발이 놓여있었다. 내 티셔츠는 허리가 잡힌 비대칭에 청바지는 청치마로 군데군데 불규칙한 패턴이 그려져 있었다. 숙취 같은 어지럼증이 올라왔다. 


  “어때?”


  “멜빵이라도 주면 안 될까?”

  당시 나는 대칭에 대한 강박으로 벨트를 매지 않았다.


  “그럼 소리 지를 거야”

  다다의 표정이 진지하다.


  나는 놓여있는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몸에 좀 끼긴 했지만, 그런대로 입을만했다. 다다는 그림 솜씨보다 리폼 솜씨가 더 나았다.


  “이쁘다.” 다다의 표정에 만족스러움이 차올랐다. 

  기숙사를 탈출한 나는 한동안 술을 끊었다.


  2학기 중간고사 과제는 비파괴 장비로 공과 건물을 안전진단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도서관에서 버니어캘리퍼와 줄자, 색연필, 4색 펜 건물 설계도를 두고 균열이 생길만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1998년 지어진 건물은 괴물이었다. 당시 도입된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내진설계로 H빔 골자에 두께가 80cm에 달하는 콘크리트가 타설 된 4층 건물이었다. 강도는 70메가 파스칼, 35층짜리 아피트 1층 콘크리트의 강도의 두 배였다. 콘크리트는 두께가 80cm가 넘어가면 굳으면서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균열이 생기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처리까지 해놓았다. 교수는 벙커를 만들고 싶었을까? 혹시나 싶어 기둥과 보의 연결부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실금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발견한 것은 2006년 증축한 4층의 옥탑 건물, 전공이 늘어나면서 창고로 쓰던 것을 서둘러 증축해 올린 건물이다. 시기는 비교적 최근이었지만, 그 설계나 재료에서 조악함이 느껴졌다. 적은 비용으로 외주를 맡긴 모양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창고 건물은 전면 콘크리트에 깊고 큰 균열을 안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다다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기숙사 뒤의 폐건물은 다다의 아지트였다. 벽돌들 사이로 배관이며 골재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다다는 그곳을 아틀리에라고 불렀다.


  나는 크레파스로 그린 다다의 낙서를 구경했다. 컬러풀하고 유치하다. 폐건물 한가운데는 캔버스와 이젤이 놓여있다. 다다는 앞치마를 입고 붓을 들었다.


  “아, 오늘은 너무 많이 그렸다.” 

  30분쯤 그렸을까? 다다는 유화물감이 뭉개진 팔레트를 작업대에 던져놓고 말했다. 물감을 칠한다기보다 ‘처바른다’는 표현이 옳았다. 나이프로 물감을 떠서 바르기도 했다.


  “너무 대충 그리는 거 아니야?”

  나는 도통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그림 그리는 거 원래 싫어해”


  “좀 심한 거 같은데….


  “뭐래?” 창밖으로 꽁초를 튕긴다.  


  다다는 이런 식이었다.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사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주파수를 쏘고 다니면서 느낀 것은 어떤 사람이건 ‘균열’이라고 할 만한 단점, 비밀 혹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다다는 내 주파수 대역에서는 도저히, 어떤 균열도 포착할 수 없었다. 


  붓으로 몇 번 처바른 듯 한 그림은 2~3일 후엔 어떤 형태를 가지고 완성되어 있었다. 그림은 어떤 빛들의 조합 같았다. 선명한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온갖 원색이 어우러진 그림이었다. 멀리서 보면 민화를 연상시키는 어떤 형태를 띠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형태가 없는 완전한 추상화였다. 다다는 멍하니 그림을 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 오늘 할 거 없지? 저녁에 과제나 도와주라” 

  “싫어”




  오후 아홉 시 아틀리에 앞, 

  “자 받아”

  다다는 더플백을 건넸다. 코끼리 다리를 만들 때 매고 있던 물건이다. 

  “이게 뭐야?”

  “털실 8만 원어치”

  “응?”

  “그냥 따라오기나 해”

  다다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대 건물 앞이었다. 통유리로 외벽을 덮은 세련된 건물이다. 다다의 가방 안에는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원색의 털실 뭉치들이 가득했다. 다다는 실뭉치 하나를 풀어 층계 손잡이에 묶고는 나에게도 붉은 실뭉치 하나를 건넸다. 


  “그냥 내가 하는 대로 해”

  다다는 층계를 냅다 뛰기 시작했다. 실이 빠른 속도로 풀려나갔다. 


  나는 다다가 묶어놓은 청실 아래쪽에 붉은 실을 엮고 달렸다. 놀이터에 온 아이들처럼 한참을 달리고 보니 층계부터 강의실까지 온통 무지개처럼 걸린 실들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다다는 땀에 젖어 숨을 몰아쉬었다.


  “이거…. 과제 이름이 뭐야?” 

  “요즘 내 기분을 자유롭게 표현하시오”

  다다의 진지한 표정에 웃음이 났다.


  자취방에 돌아가는 길, 두리번거리며 걷는 버릇이 바보 같다는 다다의 말에 한 곳에 시선을 두고 걷기로 했다. 멀찍이 선 가로수였다. 가로수에 닿은 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보았다. 가로등 빛에 손가락으로부터 한 다발의 손가락이 접목하듯 돋아났다. 가지마다 온통 무지개 같은 실이 걸리고 흔들릴 때마다 어떤, 소리를 내곤 했다. 애잔하면서도 가냘프고, 한편으로는 불안한 소리였다. 


  2학기가 끝나고 우리는 제법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다의 아지트를 손봤다. 조교인 선배에게 건물 설계도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오래되긴 했지만, 제대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나는 깨진 창문마다 방풍비닐을 덧대고 콘크리트가 갈라진 곳에는 실리콘 주사기를 꽂았다. 공장 형태의 구 공과 건물은 커다란 장비를 품고 있었는지 고정을 위한 타공이며 배관, 철편이 많았다. 선배의 도움으로 죽은 리프트까지 되살릴 수 있었다. 


  “근데 네 친구 진짜 미술과 맞아?”

  다다의 그림을 본 선배의 반응이다.


  단발을 고수하던 다다는 방학 동안 머리를 길렀다. 머리핀을 찔러 넣은 모습이 꽤 산뜻하다. 다다는 미디에 아트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행위예술가를 자처하는 한 유튜버가 바이올린을 들고 와서는 작품을 깨부쉈다는 이야기였다. 직원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바이올린을 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좀 이상한 걸까?”  무심코 ‘어’라고 할 뻔했다.

  다다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테이블에 놓인 노트를 살짝 훔쳐봤다. 사물, 동물, 사람 등등 다양한 스케치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아지트에서 보았던 유치한 그림과는 다른, 사실적이고 정교한 스케치였다. H라인 스커트에 재킷을 걸친 인물 크로키에서 선명하게 내 얼굴이 보였다. 다음은 리폼한 청치마를 입은 나였다. 부끄러움에 스케치북을 덮었다.


  며칠 뒤 아지트를 찾아갔을 때 다다는 여전히 커다란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바르고 있었다. 뒤로 묶은 머리에 목선이 드러나 보인다. 아지트는 선배가 만져준 리프트 덕택에 2층까지 그림을 걸 수 있어서 제법 아틀리에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림을 왜 그렇게 그려? 스케치는 잘하던데”

  “오늘도 너무 많이 그렸다.” 다다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붓을 작업대에 올려놓고 창가로 다가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입체파니 야수파니 하는 거, 다 조롱하는 말이었어. 처음엔 야수가 처발라놓고 간 거 같다. 그림을 다 조각내 놓은 것 같다. 그게 이름이 된 거야. 벤틀리라고 알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생 눈꽃 사진만 찍었어. 그리다 지쳐서 찍은 거지, 사람들은 벤틀리를 병신 취급했어”  

 다다는 연기를 뿜고 말을 이었다.


  “벤틀리는 5,000개가 넘는 눈꽃을 찍었어. 그리곤 눈꽃의 벤틀리라고 불렸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다다는 창밖으로 꽁초를 튕기고는 돌아서서 내게 입을 맞추었다. 아지트에 걸린 ‘요즘 내 기분’이 바람에 흔들렸다. 







   “왜? 또 뽀뽀해줄까?”

   내 고백에 다다는 말했다. 어색해지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봄날의 교정을 같이 거닐었고 함께 담배를 피워댔다. 내 고백은 다다의 놀림감이 되어 자주 내 속을 뒤집어놓았다. ‘넌 내가 생각보다 인기가 많다는 걸 알아야 해’부터 ‘너랑 나랑 대칭이 된다고 생각해?’ 같은 말들을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내뱉곤 했던 것이다.


  “미친 나무다.”

  다다가 가리킨 곳에는 어른 키만 한 철쭉이 흰 꽃과 자주색 꽃을 함께 피워놓았다. 그녀는 하얀 손으로 한 송이씩 철쭉을 꺾어 귀에 꽂았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만해 미친년 같아.”

  나는 다다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날이 더웠다. 우리는 근처 매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입에 물었다. 다다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다다의 얼굴은, 어쩌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몰랐다. 담배를 피우거나 그림을 그릴 때와도 달랐다. 철쭉이 지고 녹음이 짙어질 무렵 나는 망구비어에서 그녀에게 두 번째로 고백을 했다. 귀걸이와 편지까지 준비했다. 다다는 테이블에 놓인 편지와 귀걸이를 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나도 비파괴 검사하려고?”

  나는 예상치 못한 다다의 반응에 말을 더듬었다. 다다와 가까워질수록 그녀는 모호해졌다. 다다는 어느덧 그림이 되어있었다. 멀리서 보면 형태가 보이지만, 가까이 볼수록 알 수 없는 대화가 끊기고 술병만 늘어갔다. 취기가 올랐다. 다다의 얼굴이 빨갰다. 들어가자고 하려는 참에 다다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니가 여자였으면….”  

  잔뜩 취한 모양이었다. 나는 다다를 부축 해 일어났다. 절반쯤 몸을 일으켰을 때 다다는 문득 망구 비어 한가운데로 걸어가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다. 긴 머리카락이 마구 흔들렸다. 표정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친 나무였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피해 다녔다. 나도 그게 옳다고 생각했지만, 텅 빈 마음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장마가 시작되고 전공과목 시간조차 창문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빗소리가 특수한 주파수로 금 간 곳을 드러내 보이는 듯했다. 다다는, 다다는 실금조차 가지 않았을 테다. 우리는 대칭이 될 수 없는 관계이고 비대칭 사이에서는 균열이 발생하기 쉬웠다. 나는 마침내 다다를 잊기로 다짐했다. 빗소리가 점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야 놀이동산 가자”

  한 달 만에 다다에게서 온 연락이다. 나는 다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어린이 대공원을 찾은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문 다다는 정말인지 놀러 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동물원에서는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빠르게 크로키를 하기 도 했다. 담배 피울 때와 닮은 표정이 언 듯 보였다. 나는 늘어지게 뻗은 사자를 맥 풀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다다의 팔이 내 팔을 감아왔다. 포근한 향기가 났다. 더운 날씨에도 불쾌하지 않았다. 다다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고백을 받아주려고 하나?’하는 희망도 조금씩 솟아올랐다.  


  돌아온 우리는 닭갈비에 막걸리를 해치우고 망구비어로 향했다. 나는 믹스너트를 집어먹으며 맥주를 기다렸다. 휴대폰을 향해 내리깐 다다의 눈이 속눈썹에 가렸다. 문득 다다의 콧날과 턱 선이 두드러졌다. 평소 털털한 모습과는 달라 영 익숙지 않았다.  


  “오늘 너 집에서 자고 가야겠다.” 맥주를 마시던 다다가 말했다.

  “취했냐?” 당황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너도 내 기숙사에서 잔 적 있잖아?”

  다다는 카시오 전자시계를 힐긋 바라보았다.

  “통금도 지났어, 기숙사.”


  “생각보다 깔끔하네.”

  자취방에 들어온 다다의 첫마디, 자취방을 찾아온 여자는 다다가 처음이었다. 내 방은 좌우 대칭에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다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냈을 뿐인데 벌써부터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캔을 다시 2열로 정리했다.      

  우리는 나란히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다다는 내가 준 반팔과 잠옷 바지를 받아 입었다. 잠이 올 리 없었다. 나는 폐인처럼 살다가 겨우 사람처럼 살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바퀴벌레를 보고 ‘내가 저것보다 나은 게 뭘까’라고 생각했다는 말에 질색하면서도 웃는다. 다다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졸업이라 했다.


  “봐봐”

  다다는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롤러코스터 위였다. 기대하는 표정도 잠시 롤러코스터가 움직이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다다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착했을 때는 다다의 안도하는 모습에 살짝 눈물이 비쳐 보이기도 했다. 


  “과제야, 자화상. 형식은 자유.”

  그 짧은 영상에 다다의 모든 표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과제를 도와준 셈이었다. 그녀 다운 자화상이다.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난 먹을 때가 제일 좋아, 넌 뭐 할 때 제일 행복해?”

  “나?”


  잠시 눈을 깜빡이고는 다다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백색소음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손을 겹치고 입을 맞추자 빗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어떤 표정과 소리도 자화상에 담기지 못할 터였다. 나는 온전히 하나가 된 것 같은 감정에 취해 몸을 움직였다. 다다의 체온은 애틋했다. 키스를 끝내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다다는 살짝 웃어 보였다. 상체를 숙여 목에 키스를 하고 가슴을 애무했다. 소리가 났다. 


  “그만해”

  손이 내려가자 다다는 움직임이 멈추었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워서 표정을 잘 가늠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차가웠다. 나는 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다는 내게 등을 돌리고 눕는다. 등이 떨리고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다 쪽으로 몸을 돌려 눕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쓸었다.


  “비에서 토마토 냄새가 나”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방안에 붉은빛이 도는 것 같기도 했다. 다시금 빗소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다다는 다시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취기가 오르고 졸음이 쏟아졌다. 잠이 쏟아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다를 기숙사로 바래다주었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입에 물고 평소처럼 대화를 주고받았다. 밤새 쏟아진 비 때문에 교정은 한층 짙어 보였다. 기숙사 앞에서 손을 흔드는 다다의 표정은 밝았다.   


  기말고사가 끝나갈 무렵 여름은 정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나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자취방에는 맥주 캔이 알루미늄 광산을 차려도 좋을 만큼 굴러다니고 있었고 일 년간 공들여 운동한 몸은 한 달만 에 쳐지기 시작했다. 다다와 함께 하면서 느꼈던 새로운 감정들이 도리어 나를 어쩔 수 없게 만드는 독으로 치환된 듯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몇 번인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아틀리에를 찾아갔지만, 다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학을 앞두고 다다의 아틀리에를 찾은 날 미술과 건물에 거미줄처럼 걸렸던 ‘요즘 내 기분’이 흔들리고 있었다. 장마가 지나가면서 크레파스로 그린 작품들이 번져 보였다. 유화도 물감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몇 개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어쩐지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다다의 이젤은 건물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대형견 같기도 했다. 살펴보니 평소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갈색 갱지에 싸인 직사각형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다다의 더블백이 놓여있다. 나는 이젤에 아이스크림 봉지를 걸어두고 조심스럽게 그림의 포장을 뜯었다.


  그것은 그동안 봐온 다다의 그림과 달랐다. 짙은 갈색 배경에 살색과 검은색이 거칠게 섞여 보였다. 군데군데 붉은색과 녹색이 실선으로 강세를 주고 있다. 나는 다다의 크로키에서 그 인물을 본 적이 있다. 두 여자는 몸을 겹치고 서로를 애무하고 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반이 명암에 가려있었지만, 그 초록색 명암으로 말미암아 더 선명해 보였다. 다다의 자화상이 담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를 닮은 여자는 등허리에 단검을 감추고 있다. 갱지 안에는 그림 말고도 한 장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나는 더블백을 매고 그림을 안은 채 다다의 아틀리에를 빠져나왔다. 


  선배는 나를 위로한 답치고 노래방이며 클럽이며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그때마다 나는 술만 연거푸 들이켤 뿐이었다. 다다의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죄책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소주 한 병을 더 시키자 선배는 그만 마시라며 손사래를 쳤다. 믹스너트를 씹는데 눈물이 났다. 선배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비파괴검사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무너지는 건물이 있는 거 아냐?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거야.”  

  “선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취했다 인마, 일어나자”     

  나는 선배의 부축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혼자 갈 수 있겠냐고 묻는 선배의 말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자취방 앞, 가로등 불이 붉었다. 밤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몽땅해진 담배를 비벼 껐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두 번째 담배를 꺼내 물고 그녀가 건넨 편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담배를 땅에 꽂고 비비 밟자 여린 불꽃이 파지직 일었다. 나는 힘없이 쭈그려 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찾는다. 불을 붙여 "흡" 하고 깊은 들숨을 쉰다. 담배 끝이 진홍으로 타들어 간다. 나는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전한 불씨가 나를 미치게 했다. 태우고 태워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새벽이 오고, 가로등이 꺼지고, 밤이슬이 내렸다. 울음을 삼켰다. 


  다다의 더블백에는 붉은색 일기장 하나와 스케치북 20권, 화구통에 담긴 그간의 작품들이 있었다. ‘너에게 너와 만나기 전의, 나를 선물할게’ 일기장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일기장에는 그림에 대한 치열한 고민들이 빽빽한 글씨로 들어차 있었다. 스케치북은 지난 4년간 다다가 그린 그림들로 가득했다. 화구통 안의 작품은 사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리얼했다. 비로소 다다가 품고 있었던 균열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틀리에에 크레파스를 칠하던 날 다다의 일기였다. 공대 건물 기둥 하나를 코끼리 다리로 만들던 날도 비슷한 내용의 일기가 쓰여 있었다. 한계에 직면한 사람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요즘 내 기분’을 설치하던 날 다다는 비로소 아이가 될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후의 기록은 대부분 나에 대한 것이었다. 나에 대한 애정부터 작품에 받는 영감, 그리고 죄책감까지 솔직하게 쓰여 있었다.     


  담배를 끊었다. 대칭에 집착하는 버릇도 버렸다. 더 이상 균열에 주파수를 방사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선배는 교수님께 나를 추천해 다달이 연구비를 받고 조교처럼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건축공학 계열로 초음파 탐상. 자분 탐상. 탄성파 시험. 방사능 시험 등등 적용할만한 기술이 많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대도서관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러닝머신 위에서도 뜬금없이 눈물이 나곤 했다. 처음에는 다다를 따라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영 재능이 없었기에 그만두었지만,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다다를 본 건 반년 후 인천공항 라운지에서다. 다다는 호주의 예술가 코뮌에 들어가 작업을 하기로 했다고 연락해왔다. 오랜만에 본 다다는 더 마르고 어두워보였다. 오랫동안 감추어진 균열이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네가 가지 말라면, 가지 않을게.”

  다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잠시 아래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너 왜 건축할 때 나무랑 콘크리트랑 안 섞는 줄 아니?”

  다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도는 문제가 아니야, 선팽창계수가 달라. 잘 서 있다 싶다가도 얼마 못 가서 갈라지고 무너져 내릴 걸? 그게 나무 잘못이니? 콘크리트 잘못이니?”

  다다는 잠시 생각하다 웃어 보였다. 그녀 다운 미소였다. 나는 게이트를 향하는 다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날 밤 뒤늦게 폭설이 내렸다.      




  ‘미친 나무’


  나는 프로젝트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목재는 품종, 습도, 건조 상태, 병해 유무 등등 고려사항이 많은 데다 현행법상 도심지 목재 건축은 불법이기 때문에 시골 주택에나 알맞은 재료였다. 선배님, 심지어 교수님도 만류한 이유다. 하지만 ‘미친 나무’가 상용화된다면 이론상 10층에 달하는 고층건물을 목재로 지을 수 있게 된다. 


  법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다. 그동안 외국의 사례를 수집하고 그동안 배운 이론과 국내 기술, 상용화 가능성까지 공들여 조사했다. 시제품까지 만들어가며 졸업논문에 몰두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충분히 상용화할 수 있다’


  석사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뒷산에 올랐다. 캠퍼스는 대도서관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그리스풍의 인문대 건물, 우측에는 유리로 외장을 덮은 미대, 체대 건물, 그리고 언덕 위에 자리한 투박한 공과대 건물이 있었다.(창고 건물은 철거되었다.) 그리고, 다다의 아틀리에가 있던 자리에 ‘네오 르네상스관’이라는 새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서양미술사 시간에 배운 바로는 그리스 건축의 코린트 양식을 차용한듯했다. 다다라면, 저 기둥 사이에 코끼리 다리 하나쯤 넣지 않았을까? 웃음이 났다. 얼굴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너는 꿈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다. 다다의 언어는 그때그때 날씨나 습도에 영향을 받았다. 나는 갖고 싶어 이를테면 그림들을 무한히 그려내 만든 온전한 그림을, 그런 건, 이미 그림이 아니지 않을까 나는 대체로 싸늘한 반응이었지만, 다다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건 관념에게나 줘버려. 흥, 그리곤 무더운 여름이었다. 미로 속에 갇히는 꿈이라도 꾼 걸까, 무너진 것은 벽? 나는 차마 생각해내지는 못하고 다짐했다. 다다의 방식이었다. 우린 아방가르드야, 내 생각도 그래. 나는 나무를 심어 선물할 거야. 괜찮겠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사방에서 토마토 냄새가 진동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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