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의 달인
SF 소설가 아서 클라크는 과학 3법칙을 남겼다. 내용을 살펴보면
1법칙: 어떤 뛰어난, 그러나 나이 든 과학자가 무언가가 "가능하다" 고 말했을 때, 그것은 거의 확실한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그가 무언가가 "불가능하다" 고 말했을 경우, 그의 말은 높은 확률로 틀렸다.
2법칙: 어떤 일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불가능의 영역에 아주 살짝 도전해 보는 것뿐이다.
3법칙: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위쳐 세계관에서 '인간'은 모든 종족 가운데서 가장 지배적인 위치에 놓인 종으로 등장한다. 우월한 마법 능력을 가지고 있던 엘프들은 인간에 밀려 멸종 직전이고 다른 아인족들도 소수만 남아 몬스터처럼 출연한다. 예니퍼는 그중에서도 쿼터 엘프로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었고 의붓아버지에 의해 '마녀 타사이아'에게 돼지 한 마리만 못한 값에 팔려간다. 즉 소수민족+장애(외모 컴플렉스)+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진 캐릭터다. 하지만 쿼터 엘프 특유의 마법사적 자질로 각성하면서 전기 예니퍼 / 후기 예니퍼로 나누어도 될 정도로 격렬한 변화를 거친다.
시리의 MBTI 해석에서 처럼, MBTI 검사의 경우 1. 최근 우울증과 같은 문제가 있었는지, 2. 가까운 사람과 이별 또는 사별하지는 않았는지? 3. 이직이나 퇴사, 전학과 같은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자아에 변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경우에는 검사를 권하지 않는다. 마법사로 각성하기 이전 예니퍼는 이 모든 고난을 다 겪는다. 그러므로 이 포스팅에서는 예니퍼의 자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한 마법사 각성 이후의 예니퍼를 다루어보려고 한다.
마녀 테세이아에 따르면 위쳐 세계관에서 마법은 '혼돈을 제어하는 능력'이다. 원리를 파악하고 질서를 만들며 힘을 이용한다. INTJ 유형의 키워드는 '전체적으로 조합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들'인데, 이 전체적으로 조합하는 대상은 사실 혼돈 상태에 가까운 것들이며 이러한 혼돈을 파악하기 위해 강력한 직관을 사용한다. INTJ 유형의 별명은 '과학자형'이다. 앞서 아서클라크의 '과학 3법칙'을 인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쳐 세계관에서 마법은 과학과 구분되지 않는다.
마법사가 된 예니퍼와 위쳐 게롤트가 드래곤을 잡기 위해 협업할 때도 예니퍼와 게롤트는 견해 차이를 보인다. 게롤트는 ISTJ 또는 ISFJ에 가까운 유형인데 이 유형은 스스로 경험하고 축적한 데이터로 이야기하는 유형이다. 과거 예니퍼는 외모 컴플렉스로 '마법 성형'을 한 적이 있다. 그 대가는 불임이었고 예니퍼는 다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게롤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예니퍼는 미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한다. 자신의 통찰에 대한 맹목적인 고집도 INTJ의 특징 중 하나다. 예니퍼는 극 중에서 마법을 행하다가 거의 죽을뻔하기도 한다. 자신의 이상,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주변에서 보기엔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일을 벌인 셈이다. 시즌 1에서 예니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아서 클라크의 법칙에 따르면 아마도 이루어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프로젝트의 어원에는 pro[앞에]+ject[던지다], 즉 던져놓은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브제의 어원인 라틴어 오브옉툼과도 의미가 같다. 오브제는 19세기 예술인 다다이즘과도 연결되는데, 비 일상성-초현실주의, 상징-환상과 연관성이 있다. 마법이나 직관의 사고방식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혁신가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앞에(Pro) 던져놓고(ject) 이를 회수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애플도 디자인을 먼저 하고 기능을 설계하는데, 이는 단순히 미관을 중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을 먼저 설정해놓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니퍼도 여러 불가능(선천적 장애, 인사 불이익, 불임) 등에 있어서 이러한 태도를 지닌다. 현실주의자인 척하는 이상주의자다.
INTJ는 매체에서 빌런으로 주로 등장하는 유형 중 하나다. 겨울왕국의 엘사도 원래는 아렌델을 파괴하는 악역으로 구상했다고 하는데, 엘사를 악역으로 구현했다면 아마도 예니퍼같은 느낌의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독립(*협업도 목적으로 함), 분석(혼돈 이용), 논리-완벽, 이론, 개념, 신념, 비평 등 키워드만 나열해보더라도 예니퍼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예니퍼는 지적 나르시스트에 가깝지만, 시즌1 마지막에는 다른 모습도 보여준다. 시즌2가 기대되는 매력적인 캐릭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