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 Jun 14. 2021

큐플릭스 - 다다(DADA) Part.2 요즘 내 기분

(연재소설/로맨스/웹소설)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https://brunch.co.kr/@qrrating/221 



  오후 아홉시 아틀리에 앞, 


  “자 받아”

  다다는 더플백을 건넸다. 코끼리 다리를 만들 때 매고 있던 물건이다. 


  “이게 뭐야?”


  “털실 8만 원어치”


  “응?”


  “그냥 따라오기나 해”

  다다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대 건물 앞이었다. 통유리로 외벽을 덮은 세련된 건물이다. 다다의 가방 안에는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원색의 털실 뭉치들이 가득했다. 다다는 실뭉치 하나를 풀어 층계 손잡이에 묶고는 나에게도 붉은 실 뭉치 하나를 건넸다. 


  “그냥 내가 하는 대로 해”

  다다는 층계를 냅다 뛰기 시작했다. 실이 빠른 속도로 풀려나갔다. 


  나는 다다가 묶어놓은 청실 아래쪽에 붉은 실을 엮고 달렸다. 놀이터에 온 아이들처럼 한참을 달리고 보니 층계부터 강의실까지 온통 무지개처럼 걸린 실들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다다는 땀에 젖어 숨을 몰아쉬었다.


  “이거…. 과제 이름이 뭐야?” 


  “요즘 내 기분을 자유롭게 표현하시오”

  다다의 진지한 표정에 웃음이 났다.


  자취방에 돌아가는 길, 두리번거리며 걷는 버릇이 바보 같다는 다다의 말에 한곳에 시선을 두고 걷기로 했다. 멀찍이 선 가로수였다. 가로수에 닿은 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보았다. 가로등 빛에 손가락으로부터 한 다발의 손가락이 접목하듯 돋아났다. 가지마다 온통 무지개 같은 실이 걸리고 흔들릴 때마다 어떤, 소리를 내곤 했다. 애잔하면서도 가냘프고, 한편으로는 불안한 소리였다. 


  2학기가 끝나고 우리는 제법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다의 아지트를 손봤다. 조교인 선배에게 건물 설계도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오래되긴 했지만, 제대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나는 깨진 창문마다 방풍비닐을 덧대고 콘크리트가 갈라진 곳에는 실리콘 주사기를 꽂았다. 공장 형태의 구 공과건물은 커다란 장비를 품고 있었는지 고정을 위한 타공이며 배관, 철편이 많았다. 선배의 도움으로 죽은 리프트까지 되살릴 수 있었다. 


  “근데 네 친구 진짜 미술과 맞아?”

  다다의 그림을 본 선배의 반응이다.


  단발을 고수하던 다다는 방학동안 머리를 길렀다. 머리핀을 찔러 넣은 모습이 꽤 산뜻하다. 다다는 미디에 아트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행위예술가를 자처하는 한 유튜버가 바이올린을 들고 와서는 작품을 깨부쉈다는 이야기였다. 직원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바이올린을 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짜릿했다'나?


  “내가 좀 이상한 걸까?” 무심코 ‘어’라고 할 뻔했다.


  다다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테이블에 놓인 노트를 살짝 훔쳐봤다. 사물, 동물, 사람 등등 다양한 스케치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아지트에서 보았던 유치한 그림과는 다른, 사실적이고 정교한 스케치였다. H라인 스커트에 재킷을 걸친 인물 크로키에서 선명하게 내 얼굴이 보였다. 다음은 리폼한 청치마를 입은 나였다. 부끄러움에 스케치북을 덮었다.


  며칠 뒤 아지트를 찾아갔을 때 다다는 여전히 커다란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바르고 있었다. 뒤로 묶은 머리에 목선이 드러나 보인다. 아지트는 선배가 만져준 리프트 덕택에 2층까지 그림을 걸 수 있어서 제법 아틀리에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림을 왜 그렇게 그려? 스케치는 잘하던데”


  “오늘도 너무 많이 그렸다.” 다다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붓을 작업대에 올려놓고 창가로 다가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입체파니 야수파니 하는 거, 다 조롱하는 말이었어. 처음엔 야수가 처발라놓고 간 거 같다. 그림을 다 조각내놓은 것 같다. 그게 이름이 된 거야. 벤틀리라고 알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생 눈꽃 사진만 찍었어. 그리다 지쳐서 찍은 거지, 사람들은 벤틀리를 병신 취급 했어” 

다다는 연기를 뿜고 말을 이었다.


  “벤틀리는 5,000개가 넘는 눈꽃을 찍었어. 그리곤 눈꽃의 벤틀리라고 불렸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다다는 창밖으로 꽁초를 튕기고는 돌아서서 내게 입을 맞추었다. 아지트에 걸린 ‘요즘 내 기분’이 바람에 흔들렸다. 






예고편 : part.3 비파괴 검사


나는 점점 더 다다에게 빠져들어간다. 하지만 가까이하려 할수록 다다는 나를 피하는데, 쉽게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추상화 같다.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제보/아이디어/피드백 등 환영합니다!!


큐플릭스QFLIX 기부형 자율구독료 : 신한은행 110-311-434110 허광훈




작가의 이전글 큐플릭스 - 다다(DADA) Part.1 미친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