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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n 14. 2021

큐플릭스 - 다다(DADA) Part.1 미친나무

(연재소설/로맨스/웹소설)



  ‘미친 나무’


  다다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시간이 부지런히 금을 긋고 있을 때도 다다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 사이를 유희하곤 했다.


  다다를 생각하면 뭉텅 잘려나가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잘려나간 자리에 새 가지가 꽂히고 살아남아서 다른 색의 기억을 피워내다가 흩어져 내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땅속에 처박힌 굳건한 입이다. 몸속에 나이테 같은 문장을 새기고 미친 꽃을 피우고 싶었다.




  중간고사 즈음이었다. 나는 내키지 않으면 수업을 빼먹기 다반사였다. 자취방은 어둡고 찌든 냄새가 났다. 누울 자리를 만들려면 쓰레기부터 치워야 했다. 몸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자기 전 바퀴벌레와 눈을 마주쳤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매일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알람은 매일 아침 6시 41분 23초에 맞추었으며, 초중고 결석은커녕 지각 한번 해본 적이 없었는데 대학교 1년이야 그렇다 치고, 복학 후 학교생활은 엉망 그 자체였다.  


  심리학과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이런 걸 방어기제 중 '반동 형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욕구와 정반대되는 행동이 과장되어 표출된다나? 나는 좀 생각이 다른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일종의 '예기'가 아닐까 싶다. 미리 찾아오는 불안, 감정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음날 아침 목욕탕에 갔다. 몸의 물기를 닦는 동안 전신 거울로 꼼꼼히 살핀 몸은 20대 남자의 몸이라기엔 어폐가 있었다. 처진 뱃살과 마른 팔, 근섬유가 있긴 한지 의심스러운 가슴팍, 이상하게 뚱뚱한 하체가 전체적으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울 속 마주친 얼굴은 움푹해 보였다. 그곳에 한가득 혐오감을 담고 있다.


  입주 후 처음으로 자취방을 청소했다. 담배 선인장을 내다 버리고 대용량 쓰레기봉투에 건초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잡히는 대로 쑤셔 넣었다. 지저분한 바닥에 압살당한 바퀴벌레가 껌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바닥을 쓸고 매트릭스와 이불을 내놓자 왜 미니멀리스트들이 집안에 물건들을 그렇게 내다 버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자취방은 거의 비어 있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월 3만 원 밖에 하지 않았다.)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시들시들했던 중간고사를 만회하기 위해 대도서관에 머물며 늦게나마 수업을 따라가려고 애썼다. 


 

 한 학기가 끝나고 세부전공을 택하면서 전기나 토목, 전자, 건축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비파괴 공학’을 선택했다. 무전기처럼 생긴 장비를 매고 주파수를 방사해 건물이나 기계의 고장 난 부분, 금 간 부분을 찾아낼 때면 공들여 감춘 비밀을 꿰뚫어 본 것 같은 희열을 느끼곤 했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데, 나는 이걸 사람한테 쏘면 어떻게 될까 종종 상상해보곤 했다.(특히 방어기제 어쩌구 했던 그 친구에게 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구멍 난 학점을 메우기 위해 계절 학기를 들었다. 교양필수와 개인적인 흥미로 신청한 서양 미술사, 나는 거기서 다다를 만났다. 


  코끼리 다리와 마주쳤다. 과실을 향하던 중이었다. 기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대한 코끼리 다리가 보였다. 나는 하나뿐인 코끼리 다리를 보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만들려면 네 개를 다 만들어야지...' 구조적으로 아름답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흐릿하게 찍힌 CCTV 사진과 함께 범인을 찾는다는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기둥에 붙어 작업에 몰두하는 사진과 더블백을 맨 채 유유히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찍혀있다. 마스크를 썼지만, 넓게 파인 라운드 티며 스키니 진, 가느다란 체형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학과 사무실로 찾아가 범인의 신상을 고했다. 서양미술사 자기소개 시간 그녀는 자신을 ‘다다’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변기도, 자전거 안장도 이름만 붙이면 예술품이 되던 게 벌써 한 세기 전인데,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는 다다의 표정은 진지했다. 


  “너지?”


  감이 좋은 편인가 보다. 당황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다는 내 멱살을 잡고 강의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서양미술사 강의였다. 얼굴이 빨갰다. 역한 술 냄새가 났다. 나는 몸을 빼려 애쓰며 대꾸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눈을 피하고 말았다.


  “너 말고 공대생이 또 있어 여기?” 

   어찌할 줄 모르는 사이 다다의 몸이 내 쪽으로 포개졌다. 당혹감과 불쾌감, 부끄러움 같은 감정들이 솟아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다가 한걸음 떼는 순간, 나의 가슴팍에서 흘러내리는 토사물이 김을 내고 있었다. 새로 산 티셔츠였다.


  “아․․․.”

  다다는 뒤돌아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발길을 돌렸다. 휘청이는 모습이 영 불안했다. 


  다음 주 수업 다다는 내 옆에 앉았다. ‘그날은 미안했다.’라고 말했지만, 전혀 미안한 기색이 아니었고 깔깔깔 웃어 보였다. 어이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았다. 캔이 떨어지는데 뒤에서 손이 뻗어왔다. 다다는 내 캔커피를 쥐고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대신 이거 줄게”

  나는 다다를 흘겨본 후 음료수 한 캔을 더 뽑고 레종을 꺼내 물었다. 


  “그거 알아? 그 건물 설계한 사람이 너희 교수더라 사진 찍어서 메일 보내줬지, 좋아하던데?” 

  다다는 강아지처럼 웃어 보였다. 대머리 교수가 그런 취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나저나 너 종강 뒤풀이 때 올 거지?"




  “일어났어?”


  다다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한없이 불안하게 떨리는 내 표정을 즐기는 것도 같았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 화장품 냄새가 났다. 다다의 기숙사였다. 남학생이 여자 기숙사에 들어왔다가는 무슨 징계를 받을지 몰랐다. 종강 기념으로 마신 술이 문제였다. 


  “화장은 내가 해놨어, 고맙지?”

  다다의 손거울 안에는 화장한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가리킨 곳에는 긴 머리 가발과 신발이 놓여있었다. 내 티셔츠는 허리가 잡힌 비대칭에 청바지는 청치마로 군데군데 불규칙한 패턴이 그려져 있었다. 숙취에 어지럼증이 올라왔다. 


  “어때?”


  “야 미쳤어?”

  나는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아 더 뭐라 그르면 소리 지를 거야? 꽐라되서 업혀온 주제에, 나갈 때 걸리지 말라고 변장까지 준비해놨더니...”

  다다의 표정이 진지하다. 


  듣고 보니 따로 반박할 말이 없었기에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펌프스에 발을 올렸다. 굽이 꽤 높았다. 발이 작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런 건 또 어떻게 구했는지 의아스러웠다.


  “이쁘다.” 

  다다의 표정에 만족스러움이 차올랐다. 기숙사를 탈출한 나는 한동안 술을 끊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느낀 게 있다면, 굽 높은 신발은 상당히,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다.







  2학기 중간고사 과제는 비파괴 장비로 공과 건물을 안전진단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도서관에서 버니어 캘리퍼와 줄자, 색연필, 4색 펜 건물 설계도를 두고 균열이 생길만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1998년 지어진 건물은 괴물이었다. 당시 도입된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내진설계로 H빔 골자에 두께가 80cm에 달하는 콘크리트가 타설 된 4층 건물이었다. 강도는 70메가파스칼, 35층짜리 아피트 1층 콘크리트의 강도의 두 배였다. 콘크리트는 두께가 80cm가 넘어가면 굳으면서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균열이 생기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처리까지 해놓았다. 교수는 벙커를 만들고 싶었을까? 혹시나 싶어 기둥과 보의 연결부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실금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발견한 것은 2006년 증축한 4층의 옥탑 건물, 전공이 늘어나면서 창고로 쓰던 것을 서둘러 증축해 올린 건물이다. 시기는 비교적 최근이었지만, 그 설계나 재료에서 조악함이 느껴졌다. 적은 비용으로 외주를 맡긴 모양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창고 건물은 전면 콘크리트에 깊고 큰 균열을 안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다다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기숙사 뒤의 폐건물은 다다의 아지트였다. 벽돌들 사이로 배관이며 골재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다다는 그곳을 아틀리에라고 불렀다.


   나는 크레파스로 그린 다다의 낙서를 구경했다. 컬러풀하고 유치하다. 폐건물 한가운데는 캔버스와 이젤이 놓여있다. 다다는 앞치마를 입고 붓을 들었다.


  “아, 오늘은 너무 많이 그렸다.” 

  30분쯤 그렸을까? 다다는 유화물감이 뭉개진 팔레트를 작업대에 던져놓고 말했다. 물감을 칠한다기보다 ‘처바른다’는 표현이 옳았다. 나이프로 물감을 떠서 바르기도 했다.


   “너무 대충 그리는 거 아니야?”

  나는 도통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그림 그리는 거 원래 싫어해”


  “좀 심한 거 같은데….


  “뭐래?” 창밖으로 꽁초를 튕긴다. 


  다다는 이런 식이었다.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사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주파수를 쏘고 다니면서 느낀 것은 어떤 사람이건 ‘균열’이라고 할 만한 단점, 비밀 혹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다다는 내 주파수대역에서는 도저히, 어떤 균열도 포착할 수 없었다. 


  붓으로 몇 번 처바른 듯한 그림은 2~3일 후엔 어떤 형태를 가지고 완성되어 있었다. 그림은 어떤 빛들의 조합 같았다. 선명한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온갖 원색이 어우러진 그림이었다. 멀리서 보면 민화를 연상시키는 어떤 형태를 띠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형태가 없는 완전한 추상화였다. 다다는 멍하니 그림을 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 오늘 할 거 없지? 저녁에 과제나 도와주라” 


  “싫어”




예고편 : part.2 요즘 내 기분


다다는 즉흥적으로 과제 도움을 청한다. 나는 무언가에 빨려 들듯이 다다의 계획에 동참하게 되고 그녀의 스케치북을 살펴보게 되는데....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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