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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n 20. 2021

큐플릭스 - 태양의 서커스 Part.5

(연재소설/판타지/웹소설) 유라 마커스의 차가운 얼굴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https://brunch.co.kr/@qrrating/227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발길은 어느새 미트라의 숙소에 닿았다. 문을 두드리자 슬립 차림의 미트라가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밀어젖히며 입술을 핥았다. 부드러운 입술과 달리 어깨가 탄탄하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허벅지 사이로 몸을 붙였다. 다리가 골반을 감아왔다. 오래 줄을 탄 여자의 다리였다. 그녀는 몸을 움직여 자세를 바꾸더니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젖은 몸이 버틸 수 없을 만큼 나를 빨아들였다. 나는 맥없이 사정하고 말았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나른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 쪽으로 몸을 누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짓말은 금세 들통 났다.


  유라는 고아원에서 살았다. 아무도 혼혈아를 입양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14살 유라는 고아원의 맏언니로서 온갖 잡일에 치이며 칭얼대는 아이들을 달래야 했다. 여름방학이었다. 평소처럼 아침을 배식하고 빨래를 널고 청소를 마칠 즈음 한 무리의 여학생이 고아원을 찾아왔다.


  “유라야 여기서 뭐 해?”


  유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벽에 걸린 사진들 사이에 유라 마커스의 사진이 있다. 커다란 회색 눈의 소녀, 다음 학기 유라는 ‘미국에 사업하는 아버지를 둔 혼혈 친구’에서 ‘버림받은 거짓말쟁이 고아’가 되어 있었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한 유라는 고아원에서 나와야 할 나이가 되었다. 여성보호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유라는 고아원에서 맡아둔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을 기반 삼아 독립을 하기로 했다.


  ‘사람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유라는 생각했다. 친구도, 어른도, 아이도, 부모도 유라 마커스에게는 지긋지긋하고 증오스러운 대상일 뿐이었다. 단칸방을 구한 유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졸 인정고시를 치렀다. 같은 해 치른 대학고사 성적도 원하는 대학을 지원하는데 발목을 잡지 않았다. 유라 마커스는 거리가 가깝고 등록금이 싼 지방대학 영문과에 진학했다. 유라는 그즈음 많은 책을 읽었다고 했다.


  물건을 진열하거나 계산을 하는 일을 빼면 유라의 차가운 얼굴은 책을 향해 있었다. 손님들도 구태여 말을 걸지 않았다. 유라는 자신이 고양이 한 마리로 충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유라는 매일 11시에 찾아오는 젊은 남자에게 문득 호감을 느꼈다. 담배와 커피, 가끔 맥주를 사 가는 남자는 유라에게 말을 걸어오는 몇 안 되는 손님이었다. 유라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와 따뜻한 미소가 좋았다. 대화는 점점 길어졌다. 온도는 달랐지만 비슷한 점이 많았다. 둘 다 고아였고 독서취향이 비슷했다. 그도 삶이 ‘지독히 외롭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유라는, 자신이 녹고 있음을 느꼈다.


  유라는 종종 남는 도시락을 주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폐기 직전의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고도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가게 문을 나섰다. 유라는 남자의 허리를 안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책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편의점에 오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어디가 아픈가?’ ‘사고라도 난 걸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남 걱정이다. 12시가 가까워져 오자 유라 마커스는 맥주와 도시락을 챙겨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집은 가게 맞은편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빌라다. 우편함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호수를 찾았다. 그녀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기에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부드럽게 열린다. 집안은 크고 휑뎅그렁한 공간에 단출한 가구뿐 아무것도 없었다. 집을 둘러보는데 문득 안쪽 방에서


  양 울음소리가 들렸다.


  유라 마커스는 역시 앓고 있는 모양이라 생각하고 안방 문을 열었다. 거기서 유라가 본 것은, 양과 섹스를 하는 남자의 실루엣이다. 유라를 눈치챈 남자는 황급히 바지를 찾아 입었다. ‘툭’하고 맥주와 도시락이 담긴 봉지가 떨어졌다. 


  “유, 유라 내가 다 설명할게”

  남자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남자가 양과 섹스를 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야···. 사실 오늘 좀 외로웠어. 16세기 선원들은 외로움 때문에 배에 양과 소년들을 태웠다고 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 나는 소년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하지만 양은···. 유라 듣고 있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라 마커스는 당황해서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남자의 성기가 유라의 시선을 끌었지만, 이내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과 이상하게 굽어진 무릎, 발 대신 자리한 검고 반질반질한 발굽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유라, 당신을 만나고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미안해. 난 이제 사람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 너무, 너무 외로워. 난 그녀와 함께 떠날 거야.” 남자는 침대 위의 양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녀를 닮은 아이를 낳고 풀을 뜯으며 사는 게 내 운명인 것 같아. 양꼬치가 되어 죽어도 좋아.”


  유라는 할 말을 잃었다. 반인반수라니, 16세기 선원은 뭐고 저 양은 뭔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의 집을 박차고 나온 유라는 집에서 한참을 울었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유일한 식구인 데이비드를 바라본다. ‘나라면 데이비드와 섹스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를 닮은 고양이를 낳고 한 마리 고양이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유라는 도쿄행 티켓을 끊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모두 찾았다. 남자와 디즈니랜드를 가려고 했지만, 아무런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학교도 필요 없다. 유라는 마지막으로 일류 중의 일류라는 ‘태양의 서커스’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유라 마커스는 거기서 외줄을 걷는 한 여자를 보았다. 오롯이 공중에 뜬 여자는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스크린은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마치 초인 같은, 아름다운 표정이다. 그 위라면 외로움 따위는 초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라는 집을 정리하고 단장을 찾아갔다. 유라 마커스는 그렇게 미트라가 되었다.


  이야기를 마친 미트라는 이내 잠이 들었다. 나는 이불을 덮어주고 미트라의 숙소를 나와 내 숙소로 향했다. 피로가 몰려왔다.




  마지막화 예고편 :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다시 한 번 조건을 되새긴다. 암전된 무대 가운데로 걸어나온 주인공의 표정이 비장하다.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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