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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n 21. 2021

큐플릭스 - 도이 Part.1 유언 집행자

(연재소설/청소년문학/웹소설)


  너무 지쳤다.

  살아갈 기운이 없다.

  이건 자연사다.


  삼촌은 세 줄짜리 유서와 열 세 장의 서류를 남기고 떠났다. 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아버지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까만 원피스 차림으로 조문객을 맞았다. 다른 친척은 오지 않았다. 동료 문인 몇이 찾아와 육개장을 비우고 돌아갔다. 먹먹함에 숨이 막혔다. 키 크고 마른 여자가 녹차 캔을 건넸다. “네가 도이니?” 나는 캔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자기보다 좋은 시인이 될 거라고, 항상 그러더라.” 나는 ‘항상’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녹차를 비웠다. 묵직한 덩어리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속이 메스꺼웠다.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녹차를 게워냈다.


  “도이야. 삼촌, 보고 싶어질때 연락해”


  여자는 내게 초록색 명함을 건넸다. 일렁이는 초록색이다.


  사인은 익사, 삼촌은 강원도 작업실 정원 가운데 파놓은 인공연못에서 둥둥 뜬 채로 발견되었다. 언젠가 여름방학 종아리를 걷은 삼촌의 모습을 기억한다. 하얀 발이 물 아래로 어른거렸다. 나는 허리까지 오는 수심에 만족할 수 없어 수시로 자맥질을 하곤 했다. 그러니까, 성인 남자가 익사할만한 깊이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매달려 수사라도, 부검이라도 해야하지 않느냐고 흐느끼며 말했다.


  “시간 낭비야.”

  아버지의 말은 차가웠다.


  다섯 시가 넘어 변호사가 찾아왔다. ‘유언집행자’라고 했다. 반 무테안경이 눈을 가려 마치 삭선을 그은 것처럼 보였다. 납작한 서류가방에서 한 뭉치의 서류  가 나왔다. 변호사는 손을 내미는 아버지가 아닌, 내 앞에 서류를 두었다. 서류마다 삼촌의 날인이 찍혀있다. 변호사는 스마트폰을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약 그전에 죽는다면, 성년 이후 10년 동안 지급해주세요. 위탁은 안 됩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들었을 때 재생이 끝났다. 변호사는 삼촌이 강원도 별장을 포함한 자산을 전부 현금화해 회사에 맡겼고 내가 성년이 되는 해에 지급될 것이라고 보충했다. 아버지는 말도안 되는 소리라며 일갈했지만, 변호사는 잠시 안경을 추어올리더니 망자의 유언을 분명히 이행하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라며 일축했다.


  아버지는 삼촌을 ‘나약한 새끼’라고 말했다. ‘감상적 쓰레기’라거나, ‘약쟁이’같은 말도 서슴지 않았다. 어머니가 양복이라도 입으라고 권했음 에도 마지막까지 군복을 벗지 않았다. 아버지를 생 각하면 지시봉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지시봉은 삼촌의 펜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는 삼촌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코란도 스포츠 뒷좌석에 앉았다. 어릴 적 내가, 자주 이렇게 안기곤 했었는데. 눈물이 났다. 후사경으로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울음을 그치고 더 깊게 단지를 끌어안았다.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수목장원이다. 


  삼촌은 서류에 장례절차부터 묻힐 곳까지 스스로 정해두었다. 잔디밭에 열을 맞춘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장이 끝난 자리에 향나무가 심겼다. 새파란 잎사귀가 선명했다. 날씨는 지독 하게 맑았다. 나는 향나무 잎사귀를 한 움큼 뜯어 붉게 드러난 흙 위에 털어냈다. 성긴 부스 러기가 붉게 드러난 자리를 감춘다. 치마에 묻은 향나무 잎사귀를 발견한 건, 차에 오르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예고편 : part.2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도이는 대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머문다. 군 장교인 도이의 아버지는 유약한 도이의 성격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다음화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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