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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n 21. 2021

큐플릭스 - 도이 Part.2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연재소설/청소년문학/웹소설)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https://brunch.co.kr/@qrrating/234



  삼촌의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나는 아버지의 바람과 거리가 멀었던 k대학교 문창과에 입학했 다. 삼촌의 모교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 기말고사 즈음 처음으로 참여한 합 평에서 뛰쳐나온 이후로 도저히 강의를 들을 수 없었다.


  “그 단어를 사용할 때는 단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지 않나요?”


  “도이씨의 시는 명확한 주제가 없는 것 같아요. 소설이든 시든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는 주제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예쁜 단어의 나열 같은데요. 이부분은 너무 뜬금없고”


  맞는 말이었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말을 전부 받아내고 각오와 반성까지 마쳤음에도 그날 이후 나는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에어컨도 들지 않는 작은 방에서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마치 번데기라던가 누에고치로 변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강원도에서 복무 하는 아버지는 두 달에 한 번씩 휴가를 내 집에 들렀다. 아버지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공부 잘 하는 말 잘 듣는 딸’이었던 내가 변한 것을(사실 변한게 없었는데도) 모두 삼촌 탓으로 돌렸다.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는, 이른바 절절포 정신을 강의하기도 하고 1개 소대로 중공군 2개 대대의 진격을 막았다는 김만술 소위의 일화를 풀어놓기도 했다. 간호대 학 모집 요강을 들고 와서는 간호장교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한 적도 있고 ‘제 7특공여단 여군 하사 모집’포스터를 가져와 내 앞에 놓기도 했다. 녹색 위장크림을 바른 여군이 소총을 든 채 나 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내가 사람들 앞에만 서면 덜덜 떤다는 사실을.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한 거야?”

  나는 포스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래도 생도 때는 괜찮았어.”

  어머니는 식탁을 치우며 말했다. 아버지의 예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뽀얀 얼굴에 날렵한 체형, 군인답지 않은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붉은 얼굴에 두 배쯤 큰 덩치, 미간에 내 천자로 찍힌 주름 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내년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건 어때?”


  ‘우리 딸이 공부는 좀 했잖아’라는 말이 딸려왔다. 나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웅얼거렸다. 방 문을 닫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책상에는 읽다 만 시집이 놓여있다. 삼촌의 유품이다. 노트북을 켜 고 내키는 대로 시를 써 보기도 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그동안 쓴 시를 갈무리해 두 개 신문사에 등기를 붙였다. D일보와 지방신문사인 G신문, 첫 신춘문예 투고였다.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았다. 삼촌이 살아있었다면, 살아있었더라면.


  날씨가 춥다. 나는 G일보 본심에 올랐다가 떨어졌다.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 렀다. 타라미수와 크림빵, 엄마가 좋아하는 단팥빵, 비싼 타르트까지 내키는 대로 집게를 뻗었다. 봉지가 제법 묵직했다. 빵이 뭉개 지지 않게 조심하며 걸었다. 하늘은 짙은 푸른색이다. 눈조차 파랗게 내릴지 모르겠다. 몸 전체가 감색으로 물드는 상상에 잠길 즈음 푸른 대문에 닿았다. 문을 열자 아버지의 코란도가 눈에 들어왔다.


  방문을 닫았다. 노트북으로 배경음악을 틀었다. 오아시스, 앨리엇 스미스 같은 브릿팝이 좋았다. 삼촌도 내킬 때면 기타를 잡고 ‘Between The Bars’를 부르곤 했었다. 톤 낮은 목소리가 다른 노래 같으면서도 어쩐지 잘 어울렸다. 비공개 블로그에 포스트 쓰기 버튼을 누르고 시 를 썼다. 한 줄 쓰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이야 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문틈을 파고들었다. 나는 헤드폰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 탁자에는 어머니가 내놓은 녹차가 김을 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차를 한 모금 하더니 늘 비슷한 내용 의 정신교육을 시작했다. 나는 말이 끝나는 타이밍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올해는 뭐 생각해둔 게 있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적막이 감돌았다. 아버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실은 시를 쓰고 있으며 올해 등단은 못 했지만, 본심에는 올랐다고 고백했다.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버지의 표정은 한층 더 험악해져 있었다. 심장이 떨렸다. 아버지는 손바닥을 올렸다가 차마 때리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쳤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일어나고 큰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찻잔을 치우곤 TV를 켠다. 과장된 성우의 목소리, 주춤주춤 몸을 일으켜 내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자 허기가 몰려왔다. 저녁에 사 온 타르트를 꺼내 물었다. 타라미수와 크림빵, 엄마 몫의 단팥빵까지 전부 먹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예고편 : part.3 던전앤 드래곤


  도이는 통장에 모인 돈을 확인하고 가출을 결심한다. 이제는 전부 혼자 플레이 해야한다.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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