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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n 23. 2021

큐플릭스 - 환생 Part.2 임대업자는 혼란스럽다.

미스터리/스릴러/웹소설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https://brunch.co.kr/@qrrating/240



  “당신처럼 빠르게 배우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여선은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 말할 때마다 짧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독일어를 배운 지 두 달 차였다. 의사는 현지 적응의 일환으로 사람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된다나? 그녀는 독일 유학생으로 용돈벌이 차 현지인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의사의 어색한 한국어도 그녀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감시를 의심했지만, 격일로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이제 더 배울 필요가 없어요."

  내가 어버버 하는 흉내를 내자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여선은 사소한 것에도 크게 반응했다. 반응은 머리카락에서 시작되는데, 말할 때마다 짧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면서 좋은 냄새가 났다. 그녀가 오지 않는 날이면 온종일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전생의 기록은 전부 사라진 듯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웹에서는 내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몇몇 사이트의 아이디를 새로 만들었다. wiedergebut0415, 독일어로 '환생'이라는 뜻이다. 깨어난 날짜를 뒤에 붙였다. 웹에 죽은 사람의 SNS나 블로그가 무덤처럼 쌓여가고 있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사이버 장의사'는 웹상에 존재하는 개인의 기록을 모두 지워준다고 했다. 추측하건대, 과거의 나도 그렇게 지워진 게 아닐까?


  여선의 SNS 계정을 찾았다. 호기심이 우울한 기분을 뒤덮었다. 역시 회사에서 보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또래 친구들과 찍은 평범한 사진들, 일상을 다룬 토막글 몇 개가 전부다. 팔로우 버튼을 눌렀다. 밖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창문으로 낯선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든다. 여선의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곧 초인종이 울릴 것이다. 여선만 있다면 이 익숙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재민 씨는 지금 무슨 일 하세요?”


  “음…. 임대업?”


  “으음... 아무도 없는 것 같던데?”

  여선은 눈을 반짝였다. 호기심 어린 눈빛이다.


  “이제부터 받아야지, 혹시 방 필요해?”


  여선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교에 기숙사에 살고 있다고 했다. 텅 빈 새 건물이 흥미롭다는 듯 질문을 이어나갔는데, 이럴 때면 꼭 튀어 오르는 고무공을 보는 것 같다. 여선이 돌아가고 진지하게 방을 내놓을 계획을 세웠다. 돈이 급하진 않았지만, 내 소유의 건물을 놀려둘 이유는 없었다. 온라인을 통해 부동산에 의뢰했더니 괜찮겠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세 사람이 식탁에 앉아있다. 두 사람 사이에 알아들을 수 없는 고성이 오간다. 귀를 막았다. 감각이 어지러움과 역겨움으로 비틀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을 잡고 싶었지만, 팔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어디론가 끌려들어 가는 감각을 느꼈다. 세 사람은 거실에 앉아있다. 나는 가운데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두 사람은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무척이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여자의 뺨을 갈겼다. 뺨 맞는 소리가 이명처럼 머릿속을 울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빨라지다가 필름이 끊기듯 사라졌다. 나는 낯선 여자의 손을 잡고 있다. 그녀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얼굴을 올려다보고 싶었지만,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눈은 두 사람을 향해있다. 두 사람도 나를 바라본다. 고철을 보는 눈빛도 그것보단 따뜻할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손에 쥘 수 있는 도구를 떠올렸다. 손바닥에 금속성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겼다.


  여기까지 쓰고 노트를 덮었다.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혼란을 느낄 때 마다 글을 쓰는 버릇을 들였다. 어떤 주제건 좋았다. 전날 꾸었던 꿈이나 여선과 나누었던 대화, 단순한 일기도 좋았다. 파란 알약을 먹고 헤드폰을 쓴 채로 오디오를 켜면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단순한 뮤직 테라피 라기보다 마약이 의심되는 감각적인 환상이다. 의사는 도통 제대로 설명해주는 법이 없었다. 치료의 진도를 물을 때면 얼버무리곤 사람을 사귀라는 둥 외출을 하라는 둥 쓸데없는 간섭으로 사람을 귀찮게 했다.


  방은 금세 나갔다. 시세 절반에 못 미치는 월세에 학생들이 주로 찾아왔는데, 1, 2층은 현지 학생들이, 3층은 한인 학생 두 명과 ‘아말’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차지했다. 내놓고 세만 받으면 될 줄 알았지만, 뜻밖에 해야 할 게 많았다. 어제는 아래층 학생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길 꺼냈다.


  “302호에서 밤마다 비명이 들리는데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왔습니다. 찾아가도 문을 안 열어줘요. 경고라도 한번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학생은 야속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시간이면 나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니 비명을 지르는지 뭘 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학생을 달래 돌려보내고 302호 초인종을 눌렀다. 꿈이 뒤숭숭한 게 비명 탓인지도 몰랐다. 녀석은 매일 밤 악몽을 꾼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용건을 마친 나는 방으로 돌아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공습예보 전단이 떨어지던 날 밤, 아말은 몰래 자물쇠를 풀었다. 포로는 겁에 질려있었지만, 이내 다른 포로들을 이끌고 빠져나갔다. 다음은 부녀자들을 가둔 방이었다. 어리고 예쁠수록 값이 비싸다. 적극적이었던 포로들과 달리 도통 미동이 없었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아말은 자물쇠를 열었고 나머지는 그들 몫이었다. 그대로 IS구역을 넘어 레바논 헤즈볼라 구역으로 향했다. 그림자처럼 한 사람이 따라붙었다. 아말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었다. 해가 뜨기 전에 최대한 이동해야 했다. 언 듯 바라본 그 아이는, 비싸게 팔릴법한 소녀였다. 


  동이 트고 있었다. 잠깐 언덕에 앉아 다리를 풀었다. 가방을 열어 빵을 꺼내는데 총성이 들렸다. 아이의 어깨에 구멍이 뚫렸다. 포복으로 얼마간을 이탈하고 전력으로 뛰었다. 몇 발의 총성이 들릴 뿐 추적해오지 않았다. 바위산 부근에 토굴을 파고 몸을 숨겼다. 동이 튼 이상 더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허기가 몰려왔다. 빵을 씹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죽음 같은 잠이 쏟아졌다. 그날 밤, 아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녀석들은 이미 소녀를 시간(屍奸)하고 버려두었다. 당하는 순간까지 살아있었을지도 몰랐다. 제발 즉사했길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녀석의 토굴은 그 아이의 무덤이 되었다. 빵 반 덩어리를 던져 넣고 흙을 덮었다. 


  레바논 시내에 도착해 시리아 난민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문이 닫혔다. ‘정책이란 때론 바뀔 수 있다’는 그 한마디가 국경마다 수천 명의 난민을 가로막았다. 아말이 독일에 도착했을 때,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장이 서 있었다. 솜사탕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반쯤 삭은 돼지고기가 신물과 함께 올라왔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화약 냄새를 닮았다. 짧은 정착교육을 받고 주어진 지원금으로 지금의 방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그 아이가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예고편 : part.3 독일어 수업


  여선은 '나'와 아말에게 독일어를 가르친다.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가지면서, 셋은 점점 친밀감을 쌓는다. 집안에만 있던 나는 외출을 다니기 시작한다.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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