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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n 23. 2021

큐플릭스 - 환생 Part.3 독일어 수업

미스터리/스릴러/웹소설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https://brunch.co.kr/@qrrating/240


  

  “작문에 재능이 있는지 몰랐어요. 소설이에요?”

  여선이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전부 사실이야, 내 꿈도 그 녀석 이야기도.”

  인스턴트커피를 뜯으며 말했다. 여선은 고개를 한번 갸웃거린다.


  “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당신은 그렇게 기억을 잃은 사람치고 너무 여유롭지 않아요?”


  “하지만 사실인걸” 

  나는 여선에게 커피를 건넸다. 


  “음…. 잘 모르겠지만, 글은 계속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독일어로 써보는 건 어때요?”


  내 이야기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너무 여유롭지 않아요?’ 그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말이라면 어땠을까? 내가 10살쯤 더 어렸다면, 이 혼란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말과 대화를 나누고 쓸모없어 보였던 권총이 실용품처럼 느껴졌다. 두려웠던 것은 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분해조립부터 사격까지 권총에 대한 모든 것을 숙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몸 곳곳의 흉터도 예사롭지 않았다. 사십 대 중반의 한국 남자가 권총을 익숙하게 다루는 건 매우 드문 경우다. 몇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힘들게 메워놓은 무덤을 다시 파헤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말은 21살이라기엔 훨씬 어려 보였다. 아마도 십 대 중후반쯤, 긴 머리카락 때문에 어쩐지 여성스러운 인상이다. 녀석은 매일 밤 악몽을 꿨다. 생활도 완전히 망가진 모양으로 몸에 뼈가 다 드러나 보였다. 월급 절반을 가불 해주고 건물관리를 부탁했다. 계단 청소나 세입자 민원 같은 귀찮은 일을 덜 요량이었다. 또 소리를 지르면 곤란하니 악몽을 꿀 것 같으면 이 집에서 자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만들어준 일이나 다름없지만, 녀석은 성실하게 일했다. 영리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언젠가 열쇠를 잃어버린 입주자의 문을 따주기도 했다. 전기를 다룰 줄도 알았고 계단은 먼지 하나 앉는 법이 없었다. 밤이면 베개를 안고 내 집으로 올라왔다. 재밌는 것은 내가 녀석을 깨우는 날 보다 녀석이 나를 깨우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내가 독일어 작문을 연습하고 있으면 아말은 여선에게 회화를 배웠다. 수업료를 대신 내겠다고 하자 ‘재능기부’라며 마다했다. 그 사이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덕분에 한결 성숙해 보이는 한편 아말은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제법 살이 붙었다. 둘 사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사이좋은 오누이를 보는 것처럼 뿌듯하면서도 약간의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이거 켜 봐도 돼요?”

  아말이 오디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약을 먹고 헤드폰을 쓰지 않으면 보통 오디오와 다를 바 없었다. 아말은 음악을 좋아했다. 재미가 붙었는지 근처 시립도서관에서 음반을 잔뜩 빌려다가 오디오에 돌려보곤 했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기에 딱히 방해되지는 않았다. 일이 없으면 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기에 차라리 심심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조용한 음악을 상기된 표정으로 듣는 소년은 아말이 거의 유일할 테다.


  “제 라디오로 잡히는 주파수가 뉴스랑 클래식 채널밖에 없었어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오디오에서는 쇼팽이 흘러나왔다. 커피 두 잔을 타서 한 잔을 아말에게 건넸다. 커피를 홀짝이며 음악에 집중하는 아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잠겨 들었다. 헤드폰 없이도, 약이 아닌 소량의 카페인만으로도 잃어버린 기억의 감각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외출을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아말은 나에게 시립도서관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얀 주사위 같은 도서관 건물은 중심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텅 빈 사각형 공간이 있다. 기하학적인 멋을 부린 건물이었다. 여선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병원 같았다. 아말이 음반을 고르는 동안 나는 유럽 문화사 한 권과 얇은 소설책 한 권을 빌렸다.


  “그냥 같이 들으면 안 돼요?”

  헤드폰을 쓰는데 아말이 말했다.


  “이게, 뮤직 테라피 같은 거라서 헤드폰을 안 쓰면 효과가 없어.”

  파란 알약을 집으며 말했다.


  “들어봐도 돼요?”


  아말에게 헤드폰을 건넸다. 오디오의 진공관이 달아오르자 까만 방이 노랗게 물든다. 시원한 콧날 옆으로 커다란 눈이 반짝거렸다. 기억을 리셋해야 하는 쪽은 이쪽이 아닐까? 나는 한동안 아말의 눈가가 반짝이는 걸 지켜보았다. 





  예고편 : part.4 당신은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11월 말, 시내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셋은 야외수업을 핑계로 야시장을 향한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상점과 들뜬 행인들,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과 구경꾼으로 활기차게 북적댄다.


  하지만 곧 예기치 못한, 탁한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데....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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