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스릴러/웹소설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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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은 이제 작문을 배운다. 내년에는 기술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열쇠기술에 흥미를 보였다. 나는 더 배울 필요가 없었으면서도 그녀를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직 독어가 서툰 아말이 고맙기도 했다.
의사는 ‘당신은 성공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길 전해왔다. 세 사람 이상 관계를 확장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나? 비록 하나는 강아지긴 하지만, 슈나이더는 대부분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폐인처럼 연명하다가 ‘잘못’되고 만다고 했다. 이번에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야외수업 어때요?”
여선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어깨 아래로 내려왔다. 패딩 모자 뒤로 부채처럼 펼쳐질 정도다.
“그럴까?”
“빨리 나오세요. 아인도 데리고, 크리스마스 시장은 처음이죠?”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있다. 크리스마스 보름 전부터 장이 들어서고 시청 근처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장식품을 사서 트리를 꾸미기로 했다. 한 걸음만 움직이면 다른 상점이, 그 옆에 또 다른 상점이 시선을 끌었다. 가족 단위로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운영한다고 여선이 말해주었다. 노점 식당에서 학센을 해치우고 광장으로 향했다. 아말은 거의 뛰어다니듯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여선은 아인을 데리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날씨는 추웠지만, 노란 크리스마스 등과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어떤 온기를 전해 주는 것 같았다.
아말이 광장 가운데 멈춰 섰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길거리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중년의 독일 남자가 심취한 듯 건반을 탔다. 잘 손질된 수염이 퍽 신사 답다. 음률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10유로 지폐를 꺼내 상자에 넣었다.
“쇼팽 전주곡 4번 E단조에요”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아말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아말은 여선과 음악에 대해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여선의 모습이며 꼬리를 흔들며 앉아있는 아인, 처음 보는 자연스 러운 표정의 아말,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잃어버린게 무엇인지. 한 곡이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연주자는 목례를 하고 다음 곡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여선이 곡 제목을 맞췄다. 두 곡을 더 듣고서야 우리는 다른 곳을 향했다.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요. 뱅쇼 사올게요.”
여선은 북적거리는 시장으로 사라졌다.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말은 옆에서 자기가 산 물건을 하나씩 꺼내보며 미소 지었다. 근사한 전나무를 사고 싶었다. 우리가 꾸민 트리 앞에서 카드와 선물을 교환하고 크리스마스 음식을 잔뜩 사다가 맥주 파티를 할 테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몸에 열이 올랐다. 잠깐 아말에게 아인을 맡기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여선을 혼자 보낸게 마음에 걸렸다.
“사람이 되게 많아요. 좀 걸리겠는데요?”
여선은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었다. 못마땅한 표정이다.
“좀 비싸지 않아?”
“잔은 반납하면 값을 내줘요. 가져갈 거죠? 이런 게 나중엔 다 추억인데…. 재민씨는 그런 거 없어요? 추억 같은 거”
“난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 사실이야. 기억을 전부 지웠나봐, 내가.”
나도 모르게 의사의 어색한 말투가 따라 나왔다.
“진짜 재미없다.”
머그잔 세 개가 우리 앞에 놓였다. 암적색 와인에서 계피 향이 났다. 여선은 잔을 집다 그 만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아까운 듯 쭈그려 앉아 깨진 머그잔을 바라본다. 한잔 더 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멀리서 탁음이 메아리쳐왔다. 익숙하면서도 불온한 소리였다. 본능적으로 여선 을 덮쳐 안았다. 곧 귀가 멍해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과 함께 총성이 메아리친다. 곧 넘어지고 부딪히고 구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리 옆으로 사람이 쓰러졌 다. 떨고 있는 여선을 보며 손짓했다. ‘엎드려 있어.’ 여선은 커다랗게 뜬 눈으로 내 손을 주 시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간헐적으로 총성이 들려오더니 이내 소리가 멎었다. 또 한 번 알아 들을 수 없는 외침이 들려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말이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손이 붉게 물들었다. 엎드린 여선의 머리카락 사이로 암적색 액체가 배어 나왔다. 비릿한 향기에 숨이 막혔다. 다시 시야가 흐려졌다.
part.5 여선의 수업료는
사건 이후 아말은 단지 무슬림 출신이라는 이유로 독일경찰에 연행된다. 나와 여선은 퇴원 후 집에 돌아온다. 여선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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