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상속녀를 자처하는 '애나 델비'는 겉보기엔 완벽한 지식과 톤 앤 매너를 가진 유럽의 상류층 자제다. 특별히 착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당당하고 스스로 '존경'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한다. 이게 또 잘 먹힌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사랑을 바라기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애나 델비는 스스로 만든 '자신'에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주변 사람들마저 속이고 매료시켜버렸다. 마치 태풍처럼, 자신은 고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요동치게 만들고 지나간 자리를 폐허로 만든다. 패션 센스, 적당한 오만함, 미술에 대한 지식, 돈을 물 쓰듯 쓰는 버릇, 주변의 유력자, 슬쩍슬쩍 흘리는 신탁자금에 대한 썰 등등은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뉴욕 '사교계 명사'라는 구체제와 SNS를 중심으로 한 '인플루언서'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지향점이 겹치면서 혼란이 만들어진다. 이전에 '별 볼일 없는 1인이 혼이 담긴 구라를 통해 사교계 명사들과 섞여 인생역전을 노린다.'라는 서사를 지닌 영화로는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가 있다.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 행동을 상습적으로 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리플리 증후군'의 리플리다. 애나의 경우에도 리플리의 서사를 따라가긴 하지만, 본인만의 독특한 지향점이 있다. 리플리가 그나마 인간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애나는 ADF라는, 애나 델비 재단 설립에 목을 맨다. 자신의 능력, 전능함을 끊임없이 부풀린다. 리플리는 사교계 인사들의 퍼스넬러티를 카피해 성공하려 했다면, 애나 델비는 뉴욕 사교계 인사의 퍼스넬러티는 진작 카피한 상태로 "진짜"가 되고자 분투한 것 같다. 거액의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고 진지하게 성공할 생각이었다는 말이다. 델비는 "꽃보다 남자"나 "쓰루 마이 윈도"같은 신데렐라 내러티브에는 별 관심이 없다.
여기에는 SNS, 현대 자본주의, 물신주의, 전능감같은 키워드를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 이야기는 실화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