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앙리 루소
'소설 쓴 사람 술 마시는 날'
합평반 사람들은 합평하는 날을 이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합평은 소설 하나를 놓고 여러 명이서 평가하는 자리입니다. 평가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었어요.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느니 '작가의 감상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가 있냐'느니 하는 말들이 오갔습니다.
'이미 세상에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많은데 내가 꼭 글을, 소설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소설을 써온 누나가 합평이 끝나고 한 말이었습니다. 문체부터 스토리, 캐릭터까지 두루두루 욕을 먹다 보니 아주 심각하게 자신감이 꺾여버린 모양이었어요.
그땐 저도 '욕을 먹는 일'은 수준에 이르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고 그걸 견디지 못하면 포기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세상에 나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재능이 없으면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맞다'라는 생각이었고 글쓰기, 문학은 특정해 말하기 어렵지만 어떤 재능, 자격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잘 쓰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직설적인 성향이 그 욕심을 꺾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례에서 꼭 처음부터 천재성이나 재능, 특별함을 가져야만 책을 쓰거나 글, 소설,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오늘은 그중 한 가지 사례인 앙리 루소의 사례를 소개해 볼까 해요. 그는 세관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주말마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너 원근법이 뭔지는 아니?
'걔? 세관 공무원이지 무슨 화가는 화가야 ㅋㅋㅋ'
'주말 화가 정도는 쳐줄 수 있겠다'
아카데미의 화가들은 그를 세관 공무원, 일요화가 등으로 부르며 어설픈 딜레탕트(전문가적인 의식이 없고 단지 애호가(愛好家)의 입장에서 예술 제작을 하는 사람)로 볼 뿐이었습니다. 그림체도 그림의 주제도 무엇 하나 기존과 같지 않았어요. 실제로도 기초적인 원근법과 묘사, 붓 터치가 많이 서툴렀다고 합니다.
앙리 루소는 상심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꾸준히 식물원을 드나들며 주말마다 자신의 그림을 그렸어요. 자신이 천재라고 확신했고, 자기 그림에만 몰두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카데미나 주변의 시선을 염두에 두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와 그림 진짜 좋네요. 제가 다 사겠습니다.'
꾸준히 그림을 그리던 앙리 루소는 마흔을 넘어 오십이 다 돼서야 세관 공무원이 아닌 '화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해요. 특히 피카소의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피카소는 앙리 루소의 그림을 많이 수집합니다.
아카데미의 타성에 젖지 않은 순수함, 상상 속 경험을 그리는 화가라는 인정과 함께 야수파와 초 현실주의의 시초로 자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야수가 처발라 놓고 간 거 같다"라는 조롱에 가까운 멸칭이 '야수파'라는 하나의 개성과 장르로 굳어진 사례입니다.
'글은 아무나 쓴다.'
만약 합평을 하던 당시로 돌아간다면 그 누나에게 '의견은 듣되 개의치 말고 계속 본인의 글을 쓰시라'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 '글은 아무나 쓰냐'라고 묻는다면 먼저 기초적인 한글을 떼면 쓸 수 있다고, 일기를 쓸 수 있다면 책도 쓸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에 혼자 쓰고 혼자 보거나, 아예 글쓰기를 접으셨다면 꼭 다시 글을 쓰시고 포스팅, 칼럼 또는 책으로 만들어 공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좋습니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멋지니까요. 마지막으로 오아시스의 보컬이자 기타를 담당한 노엘 갤러거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건 직업을 위한 활동이 되어서는 안 돼. 네가 즐거워서 해야지. 그리고 5년쯤 지나서 네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해도, 뭐 어때? 그냥 구석 스탠드에 세워놓기만 해도 보기에 멋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