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대답 없는 아무 소리도 없는
이제는 다 떠내려간 마음을 가만두네
주워 담아봐도
너는 여전할 테니까
나의 빈칸을 비워 둘게
네가 다시 스며올 수 있게
나의 빈칸을 가만둘래요
텅 비어버릴래 네가 없으면
아름다웠나 봐 내겐
아슬아슬했던
그 모든 게 잔인하게 매일 밤 날 조여와도
아무 말도 못 하네
마음을 닫아봐도
나는 여전할 테니까
나의 빈칸을 비워 둘게
네가 다시 스며올 수 있게
나의 빈칸을 가만둘래요
텅 비어버릴래 네가 없으면
기억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을까
어떤 형태라도 내게 다시 꼭 돌아와 줄래
나의 빈칸을 비워 둘게
네가 다시 스며올 수 있게
나의 빈칸을 가만둘래요
텅 비어버릴래
나의 빈칸을 비워 둘게
네가 다시 스며올 수 있게
나의 빈칸을 가만둘래요
텅 비어버릴래 네가 없으면
심리학을 파고 파면 돌고 돌아 결국 빈자리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사람은 한번 살면서 여러 번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페이즈씩을 밟고 넘어설 때마다 상처와 동공이 벌어지고 아무는 과정을 거친다.
어떤 작품은 그 망각의 연속 속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을 잡아 쥐고 뒤흔드는 듯하다.
십센치즈의 '빈칸에게'는 치즈 '로맨스'의 연장 선상 같다.
두 노래 모두 빈자리에 놓인 사랑의 불완전성과 양가성에 대해 말한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너를 이해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라는 문장을 읽고 멍했던 적이 있다.(에브리 타임 어플에 올라온 글이었다.)
잔인하고, 조여오고, 아슬아슬했던 것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이 사랑에 빠진 상태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보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