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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30. 2022

아니 에르노와 세월, 칼 같은 글쓰기

2022 노벨 문학상 수상자


 





  내가 아니 에르노를 처음 접한 건 2010년 즈음이었다. 책을 접한 건 아니었고, 당시 '네스티요나'라는 인디밴드를 좋아했었는데 그분의 홈페이지에 아니 에르노의 이런 글귀가 시선을 끌었다. 


  내겐 글을 쓰면서 따로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나의 첫 글쓰기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문학적으로 지향하는 바 없이 그저 내밀한 생각을 털어놓는, 말하자면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글쓰기였어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내면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요. 몹시 우울한 어느 저녁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을 글쓰기에 바치리라고는 특별히 예측한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쓰기'위해 열중했던 게 기억나는군요.


  하지만 직설적인 성향이 아주 빨리 그 욕심을 꺾어버렸어요. 이미 쓴 글을 지우는 일도 없었고, 형식에 대한 근심이나 규칙성에 대한 의무감도 없었어요. 어쨌든 나는 자신을 위해, 나 자신을 은밀한 감정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글을 썼고, 누군가에게 내 일기장을 보여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답니다. 이 충동적인 태도는, 다시 말해 미적 판단에 대한 무관심은,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거부는(내 일기장은 언제나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져 있었죠) 내가 출판을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여전히 나의 내면 일기 쓰기 속에 간직되었죠. 난 내 그러한 태도가 여전하다고 믿어요. 말하자면 어떤 독자를 미리 염두에 두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뜻이죠.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中에서.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네스티요나의 보컬 '요나'는 아니 에르노의 광팬이며 모든 앨범에 땡스 투로 '아니 에르노'의 약자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팬과 팬이 팬으로 엮이다니 참 재밌다.-


  아니 에르노는 아주 충실하고 밀도 있게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 낸다. 데뷔작《빈 옷장》에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다룬《남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여성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불안감과 고독함을 표현했던 작가는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 이후 최고의 프랑스 현대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은 1941년부터 2006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프랑스를 '우리들'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자전적 소설, 1인칭 소설을 주로 써온 작가에게 있어 이것은 카메라를 뒤로 빼고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확장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수십 년간 쌓은 내공과 작가로서의 인사이트가 빛을 발해서인지 밀도가 낮다거나, 유치하지 않다. 오히려 더 폭넓은 지평으로 나아간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대'담론이 사회의 큰 어젠다 중 하나인데, 아니 에르노의 '세월'은 세대와 가족,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으니 참조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가녀장의 시대'를 쓴 이슬아 씨의 신문 인터뷰 중, '문학은 좀 더 정치적이었으면 좋겠고, 정치는 좀 더 문학적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작가의 이런 가치관은 그 자체로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역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느냐'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니 에르노는 '칼 같은 글쓰기'에서 말하다시피 자신의 문학이 경제적/정치적 용도로 쓰이는 것을 배격하는 편이다. 쓰는 것은 어떤 용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존재양식이라 보는 게 적절하다. 마치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판다가 대나무를 먹는 것처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책이 가진 힘과 영향력은 자꾸만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노벨 문학상의 수상은 그 과정 중 일어난 한 사건이고, 작가의 철학이나 깊이에 비추어보면 아마도 작은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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