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과 함께 그림을 올린다. 물개냐, 바다표범이냐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고래다.
고래 가족 큐스패밀리를 그리기 시작한 건 2012년. 갑자기 번뜩인 아이디어였지만 완성 후 아주 만족스러웠고 그릴수록 애착이 생겼다. 몇 번의 공모전에도 출품했고 수상도 하면서 출발이 좋았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음을 쓴 만큼 상심했고 덩달아 대학원 공부가 바빠지면서 고래 가족은 구석탱이 신세가 됐다.
2014년 어느 날 대학원 친구 연진이가 취미로 복싱을 시작했다며 자신의 경기 영상을 보여줬다. 한 번의 펀치에도 아마추어의 어색함이 물씬 느껴지는 짧은 휴대폰 영상. 미숙하지만 순수한 열정의 움직임이,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연진이가 멋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10년 전 복싱을 했었다. 내게도 관장님이 스파링을 제안했었는데, 나는 끝내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맞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잘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유정처럼 나 역시 사람들에게 잘하는 모습만을 보이고픈 마음이 누구보다 컸다.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한 수퍼바이저가 나의 이런 모습을 직면시켰다.
"선생님은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큰가봐요?"
그때까지도 나는 '인정받고 싶다'는 나의 욕구를 직접 들여다본 적이 없었기에 이 질문이 당황스러웠고, 부끄러웠다. '인정 받고 싶냐?'는 질문은 내가 되게 인정을 못 받아봐서 이에 목말라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라 더 기분이 가라앉는다. 종 종 인정을 받았던 경험이 있음에도 나는 그것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더 인정 받고, 확인 받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생각하며 나는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다. 인정받고 싶다고 인정하니 그런 나의 욕구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고, 인정에 대한 갈증이 한결 해소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인정을 받고는 싶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은 많이 줄었다.
지난 해 불현듯 구석탱이 신세였던 고래 가족 큐스패밀리가 다시 떠올랐다. 새로 그림을 그리고 처음으로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심지어 이런 어줍잖은 글까지 덧붙여서.
가끔은 정말 너무 너무 부족한 것 같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런 나를 기록하고 보여주고 싶다. 얻어터지더라도 링에 오르고 싶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