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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Sep 07. 2020

작가가 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작가가 되는 과정은 험난 한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쓰는 걸 좋아했다. 보통 작가들은 읽는 걸 좋아해서 '나도 한번 써볼까?'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반대였던 것 같다. 나는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읽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를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 소모가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다. 최근 들어서 의도적으로 다독을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여전히 나는 읽을 때 보다 쓸 때 더 즐거움을 많이 느끼는 작가 같다.


 쓰는 것과 읽는 것은 정말 다르다. 막장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보면서, 맞춤법도 엉망인 소설을 읽으면서도 내가 발로 써도 저것보다는 잘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해도 그게 되는 작가들은 정말 몇 명이 없다. 많이 봐서 늘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많이 써서 늘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보통은 잘하는 걸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부족한 걸 깨닫게 되고, 그럼 자연스럽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되는 것 같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작품 외적으로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아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품에서 충분하게 설명을 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독자에게 알아 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프로의 범주를 벗어났다. 그런데 한 작품을 만들 때 정말 많은 일이 있다.


나 또한 글을 쓰면서 꽤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힘들어서 운 적도 있고, 서운해서 운 적도 있다. 운동을 시작하고, 하루에 5~6개나 되는 비타민을 먹기 시작한 것도 힘들어서였다. 언제가 커피를 사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정말 문득 깨달았다. '아, 이러다가 죽겠구나.' 여기서 더 심해지면 병원에 가야겠구나. 그 길로 운동을 시작했다.


작가 중에서는 약을 먹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대체적으로 밝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내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다. 사람, 동료 스트레스를 안 받는 대신 정말 '골방에 갇혀'작업을 하기 때문에 모든 걸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출판사와 담당자는 한계가 있다. 출판사에서 잘못한 것들, 플랫폼에서 잘못한 것들까지도 소비자인(독자님들)는 전부 작가에게 욕을 한다.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할 마음은 없다. 당연한 권리이고, 작가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게 맞다고 본다. 웹소설 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소비를 하는 입장에서 그 모든 걸 (심지어 내 분야도 아니고, 스트레스를 풀자고 보는 소설에서) 알아야 할 필요성은 없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는 건 영화의 스토리와 영상, 그리고 배우의 연기가 전부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는 너무 별로였지만, 그 뒤에서 분명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고생했겠지?'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영화를 만드느라 무슨 일이 있었고, 감독이 어떤 비하인드가 있었는지 사서 찾아보지 않는 알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상품을 만들고 소비한다는 것은 스크린 뒤에, 상품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굳이 알 필요는 없다. 그야 업계 종사하는 사람 입장으로서 알아주면 좋긴 하지만. 솔직히 모르고 봐 주는 게 더 편하다. 그런데 작품 뒤에 있는 작가들을 보면 짠할 때가 많다.


당장에 나만 해도 '상업적으로 내놓은 글'과 '내놓지 못한 습작'을 비교한다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업작으로 내놓지 못한 글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재작년 즈음부터 생긴 목표가 '쓴 글은 전부 상업 시장에 내놓아보자.'였다.


보이는 직업(작가가 아니더라도)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물 밑에서 발버둥을 치는 백조와 같다. 그 글을 쓰기 위해 하루에 10시간씩 잠을 못 자며 발버둥을 치고, 약을 먹고, 울면서 글을 쓰며 괴로워해도 결국 글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카카오는 기사에 덧글을 없애고, 네이버는 연애와 스포츠에 (연예인 악플로 인한 자살, 스포츠 선수 악플로 인한 자살) 기사에 덧글을 잠정 폐지했다. 최근에 브런치에서도 덧글 관리를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바꿨다는 공지를 보았다. 종종 덧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글을 올리시는 작가님들을 뵀다. 아마 그런 분들의 의견을 반영한 수정이라고 생각한다.


웹소설 플랫폼의 덧글은 작가가 관리할 수 없다. 그중에는 정당하게 구매를 하고, 이 글이 별로여서 적은 것도 있지만 아닌 글들도 넘쳐 난다. 심지어 1화(무료)만 보고 '이 글은 쓰레기'라고 폄훼하기도 하고, 작가의 인성을 논하기도 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웹소설 업계에서도 작가가 악플 때문에 죽었다고 유서를 남겨야 뭔가가 바뀔까? 그런데 언론에 기사가 나지 않고, 서로 쉬쉬한 사건들 중에서 악플때문에 힘들어서 생을 마감한 작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 항공사에서 승무원 과장까지 근무하시다가 정년 퇴임하신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때, 진상 손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비행기 기체의 문제라고 할 지라도 내 잘못이 아닐지라도 손님 앞에서는 웃으면서 '기체가 너무 흔들려서 불편하셨죠?'하고 웃으면서 넘어가게 된다고. 심지어는 웬만한 성희롱에도 눈 하나 꿈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비스업의 끝판왕으로서 존경스러우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과 힘듦이 있었을까 싶었다.


모 작가님이 어느 날 덧글을 보다가 '작가 새끼 모태 솔로가 분명함 ㅋ' 하는 덧글을 발견했다고 한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데 너무 열이 받아서 '결혼했고, 애도 있다.'라는 덧글을 남겼다. 하루쯤 지나 되돌아와서 보니까 모태솔로 발언을 했던 독자가 덧글을 지웠다.


우리야 술 안주거리로 떠드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일들이 정말 비일비재하다. 어떤 작가님은 '범인은 현장에 다시 되돌아온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악플을 달았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고, 괜히 마음이 쓰여서 다시 돌아왔을 때 자기 악플에 동조해주지 않고 반박글이 달리면 열이 받아서 자기들끼리(심지어 작가는 끼지도 않았다.) 콜로세움이 일어난다. 악플을 달고 돌아와서 덧글을 지우는 독자보다. 악플을 달고 당당하게 쳐다도 안 보는 독자가 더 낫다.


최근 들어서는 안 좋은 이야기나 욕을 봐도 눈 하나 꿈벅하지 않는다. 이런 일에 내성이 생기는 게 씁쓸하면서도,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으니 어딘가에서 재미있게 내 글을 봐주는 당신을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그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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