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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Aug 02. 2023

조개찜과 한 잔

07.

잘 익어서 껍질과 분리된 탱글탱글한 조개와 소주 한 잔


  



 몇 개월 전 직장 내에서 잠복결핵검사가 의무화되면서 모든 직원이 단체로 피검사를 한 일이 있었다. 평소 잔병은 있었지만 큰 질병은 없었던 내가 당연히 음성이 나오리라 걱정도 안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검사 후 2주 뒤 받아 든 결과지에는 '잠복결핵 양성'이라는 생소하고도 잔인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글씨를 읽기는 했는데 뇌로 들어오고 이해하는데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한참이 걸렸다. 양성? 음성이 아니고 양성? 양성이라면 걸렸다는 거 아닌가? 너무 놀란 나머지 육성으로 말해버렸다.


 정말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 후로 며칠 뒤 쉬는 날 잠복결핵 치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으러 갔다. 잠복결핵 양성은 우리나라 국민 1/3이 갖고 있는 흔한 것이고 결핵균이 몸에 들어왔지만 면역력이 좋아 증상이 발현되지 않고 몸 안에 갖고 있는 것이라고. 전염력은 없지만 컨디션이 안 좋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결핵증상이 발현될 수 있는 것이기에 결핵약을 4개월 먹고 위험성을 낮춰야 한다고. 4개월간 꾸준히 약을 먹되 그 기간 동안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천청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렇다. 여기서 천청벽력이란 잠복결핵 양성이라는 것보다 4개월간 강제 금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단을 받은 그날은 너무 우울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겼던 나에게 4개월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렇다고 무시하고 약을 안 먹기에는 나의 면역력을 꾸준히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우울한 마음을 다잡았고 드디어 약을 먹기 시작하기 직전 남편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술안주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조개찜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뒤 집 근처에 조개찜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하니 소주는 유독 더 달았고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낸 조개찜은 완벽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 무슨 조개찜이냐고 하겠지만 조개구이보다는 덜 덥지 않을까. 나는 그냥 조개가 먹고 싶었다. 시원한 바다가 옆에 있지 않아도. 추운 겨울이 아니어도. 4개월이라는 금주 처방을 받은 나에게 조개찜이 위로를 해 주었다. 이 맛있는 걸 먹으려면 몇 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이번기회에 조금 쉬어가는 거지 뭐. 라며 나의 마음을 달랬다.


 술을 좋아하지만 건강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끊을 수도 있어야 진정으로 술을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가 나에게는 그 시기였기 때문에 4개월이라는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었고 4개월을 잘 견디고 나서 마신 술은 더 달았다.  


 조개찜은 해감만 잘해 놓으면 요리과정은 쉬운 편에 속한다. 해감이란 조개들이 갖고 있는 흙이나 찌꺼기를 뱉어 내게 만드는 과정이다. 양파와 고추, 청양고추, 편마늘을 올리브유에 볶다가 밑간을 하고 조개를 넣고 볶아서 물과 미림을 넣고 한소끔 끓여내면 맛있는 조개찜이 완성된다.


 잘 익은 조개찜을 발라내어 간장 고추냉이 소스에 찍어먹거나 초장에 찍어먹어도 참 맛있다. 물론 조개찜의 화룡정점은 조개를 먹다가 조개찜 국물을 한 국자 떠마실 때가 아닐까. 요즘 연이어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피해를 본 지역도 많고 습한 공기와 후덥지근한 날씨에 불쾌지수도 올라간다. 이런 날은 뜨겁고 시원한 조개찜에 위로 한 잔을 받는 건 어떨까. 먹고 싶어도 못 먹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진짜 딱 한 잔만 먹어 보자.





https://m.oheadline.com/articles/OZ5khaoDvy4lKDS4ooQp5A==?uid=fafdf5a0a74c4bcd905e6b4169c91f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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