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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Aug 30. 2023

닭볶음탕에 한 잔

09. 

얼큰한 닭볶음탕에 닭다리를 하나 건져서 살을 발라 국물에 적셔서 한 잔 



 나에게 있어 닭볶음탕은 조금 특별한 음식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 레시피에 어느 백반집을 가도 꼭 있고 도시마다 유명한 먹자골목에 하나씩은 있는 닭볶음탕. 흔하디 흔한 닭볶음탕이 나에게 특별한 음식이 된 것은 스무 살 즈음이었다. 나는 고등학교까지 강원도에서 자랐고 대학교를 수원으로 오게 되면서 얼떨결에 자취라는 세계에 발을 디뎠다. 자취에 자도 모르면서 일단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수원역 근처에서 가장 저렴한 옥탑방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다. 


 가족들과 아침저녁으로 부딪치며 살다가 홀로 살게 된 옥탑방 살이는 여름이면 무지하게 덥고 겨울에는 뼈 시리게 추워서 날씨의 변화를 그대로 체감하는 외로운 생활이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고 집에 자주 가고 싶었지만 거리도 거리인지라 학기 중에는 수업과 아르바이트로 바빠서 강원도로 내려갈 수 있는 건 방학이나 긴 연휴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꾹 참고 참아서 강원도 집에 내려가기로 한 전날이면 엄마는 나에게 꼭 전화를 걸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홀로 타향살이를 하는 딸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닭볶음탕이 생각났다. 엄마가 해주는 매콤 진득하고 강원도 감자가 듬뿍 들어간 닭볶음탕. 나에게 있어 닭볶음탕은 엄마의 맛도 강원도의 맛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수원 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 30분을 달리고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을 더 들어가면 우리 집이 나온다. 내가 온다는 소식에 버스정류장까지 동생들이 항상 마중을 나왔고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지만 조금 어색하기도 한 우리 사이를 얼큰한 닭볶음탕이 분위기를 풀어주곤 했다. 우리는 다리가 두 개밖에 없다고 서로 먹겠다고 싸우지도 않았고 엄마가 큰 냄비에 푹 끓여낸 닭볶음탕을 식탁 한가운데에 놓고 퍼먹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 같이 감자를 하나씩 가져가서 국물에 으깨 닭고기살을 발라서 한 숟갈 떠먹으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어댔다. 이제 막 술을 먹기 시작한 딸과 엄마는 소주 한잔을 따라놓고 전화로 다 하지 못했던 근황을 이야기하며 보고픔을 달랬고 동생들은 곁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장난치기 바빴다.  


 그 맛을 잊지 못해 강원도에 올 때마다 닭볶음탕을 해달라며 엄마에게 주문을 했고 한 번은 강원도집에 있는 3박 4일 내내 엄마에게 매일매일 닭볶음탕을 해달라고 조른 적도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구시렁구시렁 욕을 하면서도 매일 아침 새로운 닭볶음탕을 해 주셨다. 


 아직도 닭볶음탕을 먹으면 그때의 엄마의 맛과 가족들과 하하 호호 떠들며 먹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음식은 맛보다 추억으로 기억한다는 말이 그래서 있나 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난히 하루가 공허한 날에 나는 닭볶음탕과 소주가 생각이 난다. 가족들의 따뜻함과 엄마의 맛 그리고 고향의 맛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추억의 음식이다.  


 닭볶음탕은 조선시대에도 닭찜, 닭볶음, 닭조림등 비슷한 요리가 있었고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 대신 간장과 마늘, 생강, 후추를 사용하였으며 조리방식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닭고기를 스튜 형식으로 조려 먹는 요리는 세계적으로 너무 흔한 요리이고 닭고기부터가 대중적이고 조리 방법 역시 보편 된 조리법이기에 각 나라 별로 차이가 있으나 비슷한 형태의 요리가 많다.


 비슷한 형태의 요리가 많아도 내가 추억하고 기억하는 요리의 맛은 감히 따라올 수가 없다. 아마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에게 있어 닭볶음탕을 능가하는 요리는 생기기 어렵지 않을까. 요즘도 종종 남편과 술안주로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만만하게 해 먹는 게 닭볶음탕이지만 스무 살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그 맛을 재현할 수가 없다. 엄마의 손맛이 들어갔고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맛이라 흉내 낼 수 조차 없다. 


 오늘따라 강원도 계시는 엄마가 조금 보고 싶다. 지금 잠깐이라도 엄마에게 안부전화 한 통화씩 해보시는 게 어떨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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