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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수정을 하게 되기 전까지 내가 했던 노력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먼저 한약 먹기.
임신이 되지 않다가 한약을 먹고 한 번에 임신했다는 등 한약의 위대함에 관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한반도 한약을 먹어본 적 없는 나는 이것부터 해보자는 마음으로 한약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알아보던 중 ‘경기도 난임 한약 지원사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경기도에서는 매년 나이 제한 없이 경기도에 거주하는 난임부부에게 한약 3개월을 전액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다.
< 경기도 난임 부부 지원사업 조건 >
1. 주민등록상 경기도에 거주하는 난임 부부(사실혼 포함)
2. 난임 진단을 받은 여성 & 난임 진단을 받은 여성의 배우자로서 정액검사 결과 기준치 미달의 경우
기왕 먹는 거 지원받아서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임 진단서를 받기 위해 가까운 병원에 생리 시작 후 이틀 뒤로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았다. 먼저 난임이란 결혼 후 1년 동안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만 35세 이상은 6개월을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진단서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검사가 필요했다. 남편은 정자검사, 여자는 혈액검사, 심전도 측정, 소변검사, 나팔관 조영술을 받아야 했다. 아니 받을 때는 몰랐는데 적다 보니 여자는 왜 이렇게 많은 거냐고.
첫날은 남편과 함께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며칠 뒤 생리가 끝나고 나 혼자 나팔관 조영술을 받으러 갔다.
나팔관 조영술 후기를 찾아보니 80%는 하나도 안 아프고 10%는 좀 아프고 10%는 엄청 아프다고 했다. 겁이 났지만 나는 대중성을 따르겠지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검사실을 마주하니 무서웠다. 아주 큰 엑스레이 판에 옷을 갈아입고 누웠다. 차갑고 낯선 곳에 누워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간호사분이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낯선 곳에서 따뜻한 손을 잡아서였을까. 왼쪽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간호사분이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아 주셨다.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으시죠?”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오열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씀하셨다.
“울지 마세요. 괜찮아요. 환자분이 뭘 잘못해서 여기 와 있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힘든 만큼 나중에 예쁜 아기가 와줄 거예요”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울기만 했는데 어쩜 내 마음을 이리 잘 읽으셨을까. 수많은 사람이 나팔관 조영술 하는 걸 보면서 이분은 보살이 되셨나 보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의사분이 들어오셨다. 자세를 교정해주고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처음 겪는 고통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내 몸 깊숙이 어딘가가 쥐어짜듯이 아팠다. 시술 전부터 울기 시작했던 눈물은 거의 통곡과 괴성에 가까웠다. 끔찍했던 시간이 지나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시술이 끝났다. 왼쪽 나팔관 한쪽이 미세하게 막혀있었고 조영제로 뚫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아팠을 거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다.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몸을 일으켜 탈의실로 들어갔다.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오자 서러움과 통증에 펑펑 울어버렸다.
진짜 이런 일까지 해가면서 아이를 갖게 되면 정말 행복할까.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이런 모든 일을 겪고도 아이가 와주지 않을까 봐. 정말 오고 있긴 한 것인지. 만날 수는 있는 건지. 눈앞이 깜깜하다.
다 끝났다는 안도와 엄마 되는 건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에 눈물을 닦았다. 이제 겨우 한 계단 오른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지치는지 모르겠다.
며칠 뒤 난임 진단서를 받으러 갔다. 나의 난소 나이는 내 나이와 같게 나왔고 남편의 정자검사도 운동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원인불명의 난임 진단서를 받았다. 이 종이 한 장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한약 지원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받은 진단서지만 너는 난임이야 라는 불합격 결과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차라리 확실한 원인이 있었다면 마음이 덜 아렸을까. 우리는 드디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