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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Mar 30. 2022

6. 어쩌다 보니 13년째
하고 있습니다.

내 첫 직장은 유명한 체인병원이었다. 아마 대다수의 예비 치위생사들의 꿈은 종합병원이나 큰 병원에서 일하는 것일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게 로망이었다. 그래서 집 근처에도 치과가 널렸는데 한 시간 반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치과를 친구와 함께 취업했다. 무엇보다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병원이라 좋았고 친구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연차가 쌓일수록 내 능력도 쌓였고 퇴근 후 힘들면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3년을 일했고 갑자기 친구가 퇴사를 당했다. 당시 병원에 공동원장이던 두 원장님의 불화로 불똥이 튀어 멀쩡히 일 잘하던 친구가 어느 날 휴가를 썼다는 이유로 퇴사를 당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화딱지가 났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우리였고 부당한 이유로 퇴사를 당한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나도 더 이상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달 뒤 나도 퇴사를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직장을 어이없게 퇴사 후 더 이상 치과라는 공간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치위생사 면허증으로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3개월 공부 후 의료기술직 공무원에 도전했다.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의료기술직 공무원에 3개월 만에 합격할 리 없었고 일 년 뒤에 있는 시험을 다시 보기 위해 일 년 동안 공부만 할 수 없기에 난 다시 치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은 치과에 가서 복잡하지 않게 살자라는 생각으로 작은 치과에 취업했다. 원장님 한 명, 실장님 한 명, 진료실 두 명. 이렇게 작은 치과에서 일해보는 건 또 처음이라 진료실의 모든 것을 내가 다 책임지 통솔하는 게 좋았다. 원장님도 나를 믿어주셨고 나도 3년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3년이 다 돼갈 무렵 원장님의 신뢰가 깨지는 일이 발생했다. 평소 날 존중해주시던 분인데 내가 쓸모없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번째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나는 유럽으로 떠났다. 3년을 일했던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써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6개월을 쉬었다.      


치과에서 받은 상처에 넌덜머리가 났지만 돈이 떨어지면 내가 돌아갈 곳은 치과밖에 없었다. 당시 7년 차였던 나는 다른 치과에 취업했다. 면접 볼 때부터 이분은 좀 다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강하게 박여 일하기로 결심했다. 면접에서 봤던 느낌대로 원장님은 직원을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이었다. 무엇보다 진료가 우선이었고 함께 진료한다는 생각으로 치위생사에게 의견을 항상 물어봐주시던 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장으로 6년을 일했다.


진료실에서 일할 때와 실장으로 데스크에서 일할 때는 많이 달랐다. 진료실은 거의 서서 일을 하기 때문에 몸이 고되고 꼼꼼하게 진료를 챙겨야 하는 반면 데스크에서는 하루 종일 울리는 전화기를 붙잡고 환자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며 직원들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아야 했다. 한마디로 진료실은 몸이 힘들고 데스크는 정신이 힘들었다.


6년을 데스크에서 일하면서 정신이 힘든 것에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를 해야 했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 혼자 눈물을 훔치는 날도 더러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퇴사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벌써 내가 14년 차다.      


예전에 대학 때 교수님이 10년 동안 한 직장에 다녔던 이야기를 해주셨던 적이 있다. 그때는'와 어떻게 10년을 치위생사로 일해? 난 그전에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13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4번째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이번에는 제발 원장님이 정년 퇴임할 때까지 곁에서 일하고 싶은 치과를 만나고 싶다. 적어도 나의 네 번째 직장은 우리 치과 참 좋은 치과라고 자긍심을 갖고 다닐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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