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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by 박성희

어렸을 때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래도 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장면들이 몇 개 있다. 그 장면들을 생각하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따뜻해지면서 몽글몽글해진다.


퇴근길에 장미 꽃다발을 등 뒤에 숨기고 들어와 현관문 여는 엄마에게 수줍게 내밀던 아빠, 매년 여름이면 우리를 계곡으로 데리고 가서 며칠씩 텐트에서 지내도록 해주던 아빠, 크리스마스날 내 손만 몰래 잡고 나가서 문구점에서 바비인형세트를 사주고 엄마에게 걸려서 혼이 나던 아빠. 우리가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을 몰래 사와 냉동실에 숨겨주던 아빠,


아직도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원망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가끔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인사를 드려야 할지 생각할 때가 있다. 웃을 수 있을까. 화를 내야 할까. 반가워야 할까. 그리고 지금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실까.


유독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때, 어버이날에, 아버지 생신에, 내 생일에, 아버지가 문득문득 궁금해지고 보고 싶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처음 쓰자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다. 결국은 내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고 오랫동안 결론을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아빠라고 맘편히 불러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늘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웃어주시던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가 집을 나갔던 그때의 나이가 내 나이가 되었고 결혼을 하고 보니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쓸쓸했을지 짐작이 간다.


우리는 아마 이번 생에는 더 이상 좋은 일로 만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아버지와 다시 한번 부녀관계로 이번에는 오래 지내보고 싶다. 우리의 시간은 너무 짧았고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 컸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딸이 되어보고 싶다. 부족하고 서투른 아버지였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아버지이기에 그리웠고 원망했다. 만약에 이 글을 어딘가에서 읽으신다면 아버지의 자식들이 이렇게 잘 자랐고 쓸쓸했다는 거 하나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흘러 아버지의 마지막을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정말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아버지의 마지막을 최대한 늦게 마주했으면 좋겠다.



제가 기억하는 그 어떤 모습보다도 늘 제 꿈을 지지해주던 아버지로 기억하겠습니다.


'날 버린 아버지에게'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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