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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by 박성희

여자는 평생 살면서 딱 한 번 결혼하고 싶다는 충동이 미친 듯이 밀려올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기만 잘 버티면 결혼 안 하고 살 수 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유부녀가 말해줬다.


나는 그 시기를 잘 버티지 못했다. 그 시기에 구 전 남친, 현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다. 삼십 년을 비혼주의자라고 떠들고 다니기 바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전남친을 만나고 일 년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마치 누가 비혼주의자였냐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나의 전남친도 비혼주의자였다. 운명이 있다면 우릴까 라는 유치한 생각이 들 만큼 신기했다.


비혼주의자였던 전남친이 연애하고 1년 만에 프러포즈를 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허락했고, 우리는 결혼을 준비했다. 결혼식장, 신혼여행, 혼수, 신혼집, 등등 세상에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은 건 처음이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결혼식이 두 달 남았을 무렵. 엄마를 보러 예비신랑과 강원도로 향했다. 그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엄마는 작은 식당을 하고 있었기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식당 한편에서 저녁을 차려 먹었다.



“oo야..... 결혼하는 거 할머니랑 아빠한테 말 안 할 거니?”



내가 당연히 싫어할 걸 알았던 엄마가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응 당연히 안 불러. 우리끼리 할 거야,”

“그래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혹시.... 엄마 때문이면 엄마는 상관없으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응 안 불러 엄마. 더는 얘기하지 마~”



엄마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며칠 뒤 일이었다.

엄마 식당에 고모와 고모부, 할머니가 다녀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소문이 잘 나는 우리 동네 특성상 같은 마을에 사는 할머니 귀에 나의 결혼 소식이 들어갔고, 내 연락처는 모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던 할머니는 엄마 식당에 쫓아와 엄마에게 따져댔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안 부를 거냐고 왜 연락하지 않냐고. 이렇게 소식을 빨리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를 닦달해서 내 연락처를 받아갔고 조만간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걱정하는 엄마에게 잘했다고 연락 오면 내가 잘 이야기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뒤 예비신랑과 저녁을 먹으며 결혼 준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두워진 내 얼굴빛에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예비신랑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괜찮다며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바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잘 지냈니. 고모부다.”

“.......... 네”

“응. 엄마한테 이야기 들었다. 결혼... 한다고?”

“네.”

“한 번뿐인 결혼인데... 고모부가 생각을 해봤는데 이건 아니지. 아버지한테 연락은 해야지?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해”



친가 쪽에서 나는 장녀였다. 아버지 위로 큰아버지가 계셨지만 결혼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고 모범이 되도록 더 엄격했다. 하지만 고모부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그동안 지켜오던 예의범절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도 어른들의 말씀에 끼어들거나 대든 적 없던 내가.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부.... 죄송한데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씀 하세요. 저희 아빠가 집을 나가고 고모네 집에 있을 때 저희한테 연락 한번 안 해주시더니. 이제 와서 제 결혼식에 아버지를 불러라 말라하시는 거예요? 후회요. 지금 후회라고 하셨나요? 후회해도 제가 해요.”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고모부야말로 이건 아니죠. 여태 저희가 힘들 때 연락 한번 없으시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러시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저희 엄마 식당에 찾아오지 마세요.”

“고모부가 어른으로서 말하는 거야!”

“저도 이제 서른입니다. 저 이제 어리지 않아요. 제가 다 판단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제 와서 이러시는 거 정말 불편합니다. ”



아마 많이 놀라셨을 거다. 한 번도 대들지 않았던 나였고 몇 번 뵙지 않았지만 볼 때마다 착하다고 칭찬만 해주셨던 분이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셨을 텐데. 솔직한 내 생각을 전부 뱉어내고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와 핏대 세우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처음 한 게 하필 가족이라는 게 서글펐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자 마주 앉아 있던 예비신랑이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했던 일이지만 이렇게 감정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른답지 못한 대처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다시 한번 그 순간이 온다면 나는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나도 이제 어른이고 다른 사람들이 쏟아내는 가시 박힌 말들을 막아야겠다. 어렸을 때처럼 가만히 들으며 온몸에 상처 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행복할 자격이 충분하니까.



그 일이 있은 후 친가 쪽에서는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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