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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by 박성희

결혼식이 한 달 남았을 무렵이었다. 보통 결혼 준비 막바지에 하는 것이 결혼식 식순 정하기다. 평소 생각해 오던 결혼식의 순서를 각자 정하고 개성 있게 꾸민다. 나는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결혼식장을 다녀본 경험상 주례는 없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퇴근 후 같이 식순 정하기를 하기 위해서 신혼집에서 예비신랑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신혼집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일이 조금 일찍 끝나서 신혼집에 들어섰는데 작은방에서 노래를 큰소리로 틀고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왔지롱. 모해?”



헤드셋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에 심취해 있던 예비신랑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반겼다.



“깜짝아”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이 나밖에 더 있어? 왜 이렇게 놀라! 몰래 축가 연습이라도 하나 봐?”

“아, 아닌데?”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당황하는 얼굴에 뭔가 정말 있는 건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거짓말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우리 식순 정해야 하잖아. 이제 앉아봐”

“어어”

“이거 내가 인터넷에서 주례 없는 결혼식 식순 마음에 드는 거 찾아온 거야 봐봐”

“오 괜찮네. 이걸로 할까? 수정하고 싶은 거 있어?”

“음 여기다가 재밌게 선서 같은 거 넣으면 좋을 거 같아”

“그래 그러자. 아! 그리구 우리 동시 입장하기로 했잖아...?”

“응. 왜?”

“우리 아버지가 손잡고 들어가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라고 하시던데?”



예비 시부모님은 결혼 준비를 하기 전부터 워낙 나를 예뻐라 해주시고 한부모 가정인 우리 가족을 많이 배려해주셨다. 시부모님을 만나 뵙기 전까지는 혹시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안 좋게 생각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이런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계셨다.



“정말?... 음 나는 감사하지. 아버님도 이젠 아버지니까.”



사실 결혼식장에서 나의 가장 로망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예비신랑에게 걸어가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친구의 결혼식을 보면서 만약 그런 순간이 나에게 온다면 이라고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아마 눈물을 보이셨을 것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 이젠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지만, 날 많이 아끼고 사랑해줬던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사위에게 걸어가는 순간 눈물을 보이실 거 같다. 내가 이제 며칠 뒤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걸 알고는 계실까. 들었다면 아버지는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그리고 아버지가 예비신랑을 만난다면 가장 먼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예비신랑을 견제하면서도 많이 좋아해 주셨을 거 같다. 아닌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며 제대로 된 놈인가 검사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고모부의 말처럼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정말 괜찮아?”

“응. 나는 좋아. 그렇게 하자 우리!”



그렇게 나는 예비 시아버님의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했다. 형님 두 분을 먼저 잡고 들어가 보신 베테랑 아버님과 달리 내가 너무 긴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바람에 아버님이 많이 당황하셨다. 시아버님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내 모습에 엄마는 폭풍 오열을 했고, 예비신랑과 내 동생들의 콜라보 서프라이즈 축가로 소소하지만 충만한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매년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결혼식 영상을 돌려보면서 만약에 아버지와 함께 입장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걸어갔다면 더 행복했을까. 아버지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든든했을까. 엄마가 더 많이 눈물 흘리지 않았을까. 세상에 아버지 같은, 아버지처럼 날 대해주실 분은 많지만 정말 아버지는 딱 한 분뿐인데.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싶어 하셨을까. 내 결혼식에 오지 못해서 아쉬웠을까. 여자는 결혼하기 전 생각이 정말 많아진다더니 쓸데없이 수많은 물음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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