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픈 강아지와
마음 아픈 사람이 함께 삽니다.

프롤로그

by 박성희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면 꼭 1 묘 1 견과 함께 사는 삶을 꿈꿨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 키우는 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내가 심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냥 알레르기가 아닌 온몸이 퉁퉁 붙고 가렵고 눈물, 콧물 다 쏟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알레르기.


그 후에 나는 알레르기 없는 강아지만이라도 꼭 같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기억 속에 최초의 강아지는 초등학교 시절 시골집 앞마당에 묶어놓고 키웠던 똥강아지다. 한 마리를 키우다 사라지면 어디서 또 다른 한 마리가 나타났고 그렇게 다섯 마리 정도가 우리 곁을 떠났다. 새로운 강아지가 올 때마다 나는 외모에 따라 점순이, 점박이, 흰둥이, 깜둥이 같은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나같이 귀여웠고 보드랍고 따뜻했다. 집 앞을 오갈 때마다 내가 보이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던 사랑스러운 존재들. 아마 그때부터 나는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삶을 꿈꿨나 보다. 나는 강아지가 보이면 꼭 쓰다듬었고 우리가 먹다 남은 밥으로 강아지의 끼니를 챙겨줬고 내가 심심해할 때마다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부끄럽지만 그 시절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강아지를 그렇게 키웠고 나는 너무 어렸고 잘 몰랐다. 그랬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생겼다. 영하 15도에 떠돌고 있는 강아지를 만났고 만난 지 14일 만에 평생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강아지와 함께 살기에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공부할게 많았지만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강아지가 나에게 주는 행복은 거대했다. 그리고 함께 한지 일 년 육 개월이 지났을 때 나의 강아지는 다발성 뇌수막염 판정을 받았다. 치료를 받다가 죽을 수도 있고 치료를 다 받아도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마음이 아파 울기만 했다. 두 살밖에 안 된 내 강아지가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나를 끝없이 자책했고 더 잘해주지 못한 걸 후회했다.


강아지는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 따위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지금 함께 하고 싶었다. 5년만 아니 1년만이라도 강아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나는 못할 게 없었다.


그때부터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강아지와의 뇌수막염 투병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보잘것없는 나의 글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강아지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이 글의 끝에 강아지가 나와 함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쓰고 기록하고 강아지를 보살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힘든 치료와 쓴 약에 하루 종일 힘없이 누워만 있는 강아지를 대신해 나라도 정신 차리고 살아야 했다. 나는 너무 힘들었고 강아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펫로스 증후군을 미리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언제 강아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너무 힘이 든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 치유할 수 있기를 바라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도 나는 강아지와 산책하고 약을 먹이고 보살핀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생길 수 있을법한 이야기 혹은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