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추운 겨울이었다.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로 결정하고 두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전날밤 시어머니에게 크고 두꺼운 금반지를 받는 꿈을 꿨다. 어찌나 반짝거리고 두꺼운지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다 꿈이 깼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거는 로또 아니면 태몽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기다리던 태몽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혹시 그게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퇴근하고 꼭 로또를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출근하자마자 대뜸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나에게 다급히 말을 걸어왔다.
“실장님. 혹시 강아지 임보 해주시면 안 돼요?”
“임보?”
이야기의 요지는 이거였다. 이틀 전부터 아파트 단지 내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강아지가 있단다. 영하 15도를 오가는 날씨에 주인이 없는지 아파트 주민들에게 발견되어 경비실 박스안에 있다고. 이대로 있다간 유기견보호센터에 보내질것 같은데 아무래도 유기견보호센터는 상황이 열악하니 그전에 임보하면서 주인을 찾아보고 싶다고. 자신이 임보하고 싶지만 사회성이 좋지 않은 강아지를 키우고 있던 직장동료는 몇개월전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다 포기했던걸 알기에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임보 하면 정들어서 어떡해..”
“며칠만이라도 해주세요. 제가 주인 찾아볼게요.”
“내가 할 수 있을까?”
“제가 알려드릴게요. 제발요!!”
붙잡고 늘어지는 직장동료의 말에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다. 게다가 몇개월전 찾았던 유기견보호센터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수히 많은 철창속에 또 한마리가 추가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흔들리는 나의 눈빛을 봤는지 직장동료는 무작정 핸드폰으로 강아지 사진을 내밀었다.
“실장님이 키우고 싶다고 했던 하얀 강아지예요!!”
사진을 보자 내가 그렸던 강아지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한 하얀 강아지였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는 불안한 눈빛과 주인과 헤어진지 오래되지 않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부정의 대답도 긍정의 대답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 사진만 바라봤다. 그리고 갑자기 밀려드는 업무에 다시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지만 일하는 내내 박스 안에 있던 하얀 강아지의 표정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남편과 저녁을 차려 먹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할일을 하다가 씻고 침대에 누워서도 그 강아지의 눈빛이 계속 아른거렸다.
“여보. 며칠 전부터 OO네 아파트에 강아지 한 마리가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주인이 안 나타나나 봐. 너무 추운데.... 주인찾을때까지 우리가 임보라도 해볼까?”
“그래! 데려와!”
종일 떠다닌 고민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는데 돌아온 남편의 쿨한 대답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강아지를 안 키우기로 결정해 놓고 영하 15도가 넘나드는 날씨에 나타난 강아지를 덜컥 임보 하기로 결정했다. 혹여나 남편 마음이 변할까 시간이 늦었지만 직장동료에게 임보 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다음 날 직장동료는 강아지와 기본적인 물건들을 챙겨서 우리 집으로 와 주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며칠동안 자신들 아파트를 돌아다녔던 강아지가 걱정되었는지 사료, 옷 등등 물건도 많이 기부해 주셨다. 실제로 만난 그 녀석은 겁이 많아 보였고 사진보다 많이 작았다. 직장동료는 우리 집에 들어와 강아지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혹시 강아지 몸에 인식 칩이 있을지도 모르니 강아지를 데리고 같이 집 근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인식 칩은 없네요. 태어난지는 10개월 정도 됐고요. 육안으로는 별다른 질병은 없어 보입니다만 잠복 고환이라 중성화 수술을 필수로 해줘야겠어요. 안 그러면 나중에 병 생겨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등록되어있는 강아지가 아니었다. 태어난 지 10개월. 이렇게 어린 강아지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우리에게 왔을까. 제발 일부러 강아지를 버린것만은 아니기를. 이렇게 어리고 날씨도 추운데 그런 못된마음을 가진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같은 인간이라는게 너무 챙피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는 계속 떨고 있었고 우리 집이 낯설었는지 직장동료의 품에 안겨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도 크게 아픈 곳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직장동료와 우리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배웅을 하러 강아지만 두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여태 아무 소리 안 내던 조용한 녀석이 우리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 왕- 왕- 짖기 시작했다.
"우리 안보이니까 짖는다?"
"너무 목소리 안내서 혹시 수술시킨 거 아닌가 했는데. 짖기도 하네요"
집에 돌아오니 강아지가 있는 우리 집 풍경이 너무 낯설었다. 만약 2개월 전 고민 끝에 강아지를 데려왔다면 이런 풍경이었을까. 그 후 나는 돌아다니며 집안일을 하고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그 녀석은 나를 경계하면서도 졸졸 쫓아다녔다. 놀아주고는 싶은데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를 몰라서 유튜브를 찾아 공부하며 강아지와 함께 있었다. 한겨울에 주인 없이 얼마나 돌아다녔을지도 모를 녀석에게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따뜻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가 걱정이었다. 남편과 내가 출근 후 텅 빈집 안에 혼자 있을 녀석이 너무 걱정되었다. 고민 끝에 집에 돌아다니는 안 쓰는 핸드폰으로 거실에 cctv를 설치해 놓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내가 현관문으로 사라지자마자 그 녀석이 왕- 왕- 짖어대기 시작했다. 설마 하루 종일 그러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cctv로 지켜본 녀석은 늦은 오후까지 현관 앞에서 점프하며 짖어대고 있었다. 불안하고 괴로운 듯 짖어대는 녀석을 핸드폰으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평소라면 퇴근 후 요가를 가야 했지만 녀석이 걱정되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왔다. 어제는 나를 낯설어하더니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꼬리 흔들며 반가워하는 녀석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웠다.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른채 주인을 잃고 여기저기 떠돌다 낯선 집안에 혼자 있었으니 얼마나 불안했을까.
좋은 꿈을 꿨으니 로또를 사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조차도 잊은 채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