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퇴근한다. 뭐 사다 줄까?"
"군밤 사다 주세요"
아이들은 밤을 좋아한다. 대형 식품사가 제조하는 시판용 군밤을 먹는 것에 익숙하다. 봉지에 포장되어 있어 언제든지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밤이란 포장된 봉지 안에 들어있는 군밤이 전부인 것이다.
아빠는 봉지에 들어있는 밤을 마트에서 고르고 있었다. 제철인데도 생밤을 구입할 생각을 못했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 처음으로 생밤을 구입했다. 군밤용 밤이 따로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포르단'이라는 품종이다. (포르단밤은 구으면 속껍질이 쉽게 분리된다. 그리고 달다.)
한 바구니 꺼내서 칼집을 낸다. 에어 프라이어 200도에 35분을 돌린다. 아이들과 구어진 밤 한바구니를 두고 둘러앉는다. 잘 구어진 밤은 조개가 입을 벌리는 것처럼 껍질을 벌리고 있다. 힘을 주어 바스락거리는 껍질을 '톡' 벌리면 밤 알맹이가 온전히 튀어나온다. 은근히 희열이 느껴진다.
알맹이 하나를 온전히 입에 넣는 호사를 누린다. 설탕을 넣은 것도 아닌데 달콤함이 입 안 가득하다. 밤 한 알을 온전히 입에 쏙 넣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진다. 왠지 반씩 잘라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내 입에 밤 한 알은 사치처럼 느껴져도 아이들 입에 쏙쏙 넣어주는 밤 한 알은 기쁨이다. '밤 한 알에 아이들의 건강 하나'. 마음으로 속삭여본다.
초겨울 저녁, 가족들과 함께 까먹은 군밤 한 바구니는 추억을 만든다. 시판용 밤이 주지 못하는 따뜻함이 있다.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내년 초겨울이 다시 기다려진다.
아빠 엄마와 둘러앉아 군밤을 쏙쏙 까먹은 기억 한 조각이
아이들의 추억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토요일 저녁이다.
아빠는 다시 인터넷을 뒤적거린다.
포르단밤 2kg를 추가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