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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Apr 30. 2021

사무실에서 울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윤 팀장은 참 모진 사람이었다. 보고서를 가지고 온 여자 신입사원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다.


"정신이 있는 거야? 어디서 보고서를 이 따위로 써가지고 와? 네가 아직도 학생이야?" 


여자 후배는 한참을 혼난 후에 바로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눈 주변이 빨갰다. 화장실에서 울고 나온 것이다. 눈이 빨개진 모습을 지나가던 윤 팀장이 하필 보게 되었다. 윤 팀장이 혀를 끌끌 차며 한 마디 했다.


"여기가 학교야? 좀 혼났다고 질질 짜게?" 


후배는 축처진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 날 혼났던 후배는 지금은 과장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의미있는 성과를 내면서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다. 후배와 저녁 자리에서 그 때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었다. 그러다가 이역만리 멕시코 사무실에서 흘렸던 내 눈물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남자치고는 눈물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내보다 내가 울 때가 많다. 중년이 되면서 에스트로겐(estrogen)이 증가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와도 눈물이 나온다. 아내는 '이게 뭐 슬프냐'면서 타박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주르르 제 혼자 알아서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사무실에서 울지는 않는다. 


직장은 전쟁터니까... 사무실은 경쟁하는 곳이니까... 경쟁자에게 약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었다. 힘들어도, 슬퍼도, 아파도 이를 악물고 견디어냈다. 사무실은 눈물을 보이는 곳이 아니니까... 

그러다가 딱 한번 눈물이 터진 적이 있었다.


4년 전이다. 멕시코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30여 명 정도 되는 멕시코 팀원들 관리에 공을 들었다. 생일도 챙기고, 팀원 정서를 알뜰하게 살폈다. 직원들과 스페인어로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집으로 초대해서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했다. 보고서를 가지고 오면 잘한 것은 칭찬도 해주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성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했다. 내색하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내가 제법 좋은 팀장이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가 조직문화 설문을 했다. 극악스러운 진단 결과가 나왔다. 경영지원실에서 가장 낮은 점수가 나온 것이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리더십에 문제가 있던 A팀장보다도 점수가 낮게 나왔다. 그동안 우리 팀에 문제가 있었다면 모를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팀이었다. 팀원들 누구 하나 속시원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제법 친했던 현지인 교육팀장과 면담을 했다.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개선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현지인 교육팀장에게 팀원들 인터뷰를 해달라고 했다. 솔직한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터뷰 결과를 듣고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꿈에도 몰랐던 문제가 드러났다. 


'팀장이 한국인 현지 채용직원(바이링궐)을 편애한다는 불만이었다.'

'한국인 바이링궐과 현지인간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갈등의 정도는 심각했다. 팀장으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갈등이 봉합되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팀장이 한국인 직원을 편애한다면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인 바이링궐 직원은 현지인들의 모함이라면서 맞받아쳤다. 직원들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고, 나에게도 상처가 되었다. 문제를 알고도 쉽사리 해결이 되지 않았다. 제법 직장생활을 잘해왔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다. 


필자의 상사였던 박 상무가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박 상무는 필자가 선배처럼 대했던 분이었다. 이역만리 멕시코에서 서로 고생하면서 법인 설립을 이루어냈던 전우 같은 사이었다. 박 상무는 김 팀장 팀의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20년을 경험한 늘 있을법한 직장 상사와 대화의 순간이었다.


그 때 눈물이 터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주르륵 흘러내렸다. 박 상무는 이야기를 멈추고 책상 위의 티슈를 내게 건넸다. 두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이 없다가 박 상무는 한 마디를 건넸다.


"김 팀장! 내가 너를 안다."


그 말이 힘이 되었다. 위로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팀원 간 갈등 문제는 봉합되었다. 서로에게 상처는 남겼지만 그래도 해결은 되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눈물이라고 하면 4년 전 사무실에서 흘렸던 '중년 직장인의 눈물'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아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슴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나만의 비밀이다. 

'사무실에서 울지 말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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