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년 직장 생활에 이렇게 일한 적이 있나 싶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 중국 노동절 5일짜리 황금 연휴기간에도 매일 출근했다. 점심은 건너뛰고 일한다. 야근은 기본이다. 불 꺼진 어둑어둑한 사무실에 나홀로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한국에서도 며칠씩 철야근무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주니어 시절이었다. 업무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다. 주어진 일만 하면 되던 시절이다. 사무실에서 선배들 눈치를 보면서 퇴근하지 못하고 시간을 때우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 주재원 업무 밀도는 상상한 것보다 힘들었다. 일 하나하나가 중요한 결정들이었다. 조금만 잘못 결정해도 몇 천, 몇 억 원씩 손실이 생겼다. 실제로 어제도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수 천만 원의 손실이 생기기도 했다. 이를 해결해야 하니 좌불안석이다.
매일 써 내려가야 하는 보고서의 양이 엄청나다. 하루도 빠짐없이 보고서를 쓴다. 사업장이 2개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보니 보고서로 소통하는 일이 잦다. 법인장에게도 100% 보고서로 소통한다. 멍하니 보고서를 쓰다 보면 노트북과 키보드와 물아일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그렇게 부임 후 첫 3개월을 보냈다.
몸이 축났다.
아침에 눈을 떴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는데 극심한 요통이 찾아왔다. 겨우 겨우 허리를 달래며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물만 좀 묻힌 후 출근했다. 그리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허리 추간판 탈출증이었다.
사무실에서 너무 오래 앉아있었다. 운동을 멀리 했다. 걷지 않았다. 차로 출퇴근했다. 전형적으로 건강이 악화되어가는 악순환의 과정이었다. 병원에서 몇 차례 치료를 받고 나서야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왼쪽 가슴에 뜨끔 뜨끔한 통증이 찾아왔다. 누르면 아팠다. 가슴에서 시작된 통증은 온몸으로 퍼져갔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코를 풀기만 해도 가슴에 따끔따끔한 통증이 찾아왔다. CT를 촬영했다. 뚜렷한 원인을 잡아내지 못했다. 갈비뼈 실금이나 근내막염증을 의심했다. (참고로 나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갈비뼈 실금에는 약이 따로 없었다. 의사는 일단 좀 쉬라고 한다.
"에... 에... 에이취!"
재채기를 느낄 때면 두려움이 찾아온다. 재채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채채기를 한 번 하면 가슴과 허리로 통증이 퍼져간다. 기침도 힘들다. 가슴과 허리에 통증이 전이된다.
'제대로 쉬지 못하면 질병이 찾아온다.'
이러다 죽겠지 싶다.
생각을 고쳐 잡았다.
왜 이렇게 미련한 지 모르겠다. 이미 한번 해본 주재원이다. 주재원 생활은 마라톤이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하면 반드시 후반에 퍼진다. 완주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좀 내려놓기로 했다. 반드시 쉬기로 했다. 사람을 만나서 수다를 떨자. 드라마를 보면서 멍 때리기로 하자. (중국어 공부를 위해 중드를 보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기로 했다. 그것도 일이 된다.) 유튜브를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도 좋다. 아무 생각 없이 1~2만보를 걷기도 하자. 그래야 주재원을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을 정하자. 팽팽한 실은 언젠가는 끊어지기 마련이다. 주재원이라는 여정을 잡은 양손에 살짝 힘을 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