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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May 08. 2022

주재원은 미친 듯이 바쁘다?

3개월 만에 일요일 오전을 쉰다.


중국 주재원으로 온 지 3개월 차다.

지난 22년 직장 생활에 이렇게 일한 적이 있나 싶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 중국 노동절 5일짜리 황금 연휴기간에도 매일 출근했다. 점심은 건너뛰고 일한다. 야근은 기본이다. 불 꺼진 어둑어둑한 사무실에 나홀로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한국에서도 며칠씩 철야근무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주니어 시절이었다. 업무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다. 주어진 일만 하면 되던 시절이다. 사무실에서 선배들 눈치를 보면서 퇴근하지 못하고 시간을 때우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 주재원 업무 밀도는 상상한 것보다 힘들었다. 일 하나하나가 중요한 결정들이었다. 조금만 잘못 결정해도 몇 천, 몇 억 원씩 손실이 생겼다. 실제로 어제도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수 천만 원의 손실이 생기기도 했다. 이를 해결해야 하니 좌불안석이다.


매일 써 내려가야 하는 보고서의 양이 엄청나다. 하루도 빠짐없이 보고서를 쓴다. 사업장이 2개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보니 보고서로 소통하는 일이 잦다. 법인장에게도 100% 보고서로 소통한다. 멍하니 보고서를 쓰다 보면 노트북과 키보드와 물아일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그렇게 부임 후 첫 3개월을 보냈다.



몸이 축났다.


아침에 눈을 떴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는데 극심한 요통이 찾아왔다. 겨우 겨우 허리를 달래며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물만 좀 묻힌 후 출근했다. 그리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허리 추간판 탈출증이었다.   


사무실에서 너무 오래 앉아있었다. 운동을 멀리 했다. 걷지 않았다. 차로 출퇴근했다. 전형적으로 건강이 악화되어가는 악순환의 과정이었다. 병원에서 몇 차례 치료를 받고 나서야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왼쪽 가슴에 뜨끔 뜨끔한 통증이 찾아왔다. 누르면 아팠다. 가슴에서 시작된 통증은 온몸으로 퍼져갔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코를 풀기만 해도 가슴에 따끔따끔한 통증이 찾아왔다. CT를 촬영했다. 뚜렷한 원인을 잡아내지 못했다. 갈비뼈 실금이나 근내막염증을 의심했다. (참고로 나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갈비뼈 실금에는 약이 따로 없었다. 의사는 일단 좀 쉬라고 한다.


"에... 에... 에이취!"

재채기를 느낄 때면 두려움이 찾아온다. 재채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채채기를 한 번 하면 가슴과 허리로 통증이 퍼져간다. 기침도 힘들다. 가슴과 허리에 통증이 전이된다.   

'제대로 쉬지 못하면 질병이 찾아온다.'

이러다 죽겠지 싶다.  



생각을 고쳐 잡았다.


왜 이렇게 미련한 지 모르겠다. 이미 한번 해본 주재원이다. 주재원 생활은 마라톤이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하면 반드시 후반에 퍼진다. 완주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TK5njgyTeJI


좀 내려놓기로 했다. 반드시 쉬기로 했다. 사람을 만나서 수다를 떨자. 드라마를 보면서 멍 때리기로 하자. (중국어 공부를 위해 중드를 보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기로 했다. 그것도 일이 된다.) 유튜브를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도 좋다. 아무 생각 없이 1~2만보를 걷기도 하자. 그래야 주재원을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을 정하자. 팽팽한 실은 언젠가는 끊어지기 마련이다. 주재원이라는 여정을 잡은 양손에 살짝 힘을 풀기로 했다.


3개월 만에 쉬는 일요일 오전의 휴식이 달콤하다. 덕분에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썼다.

오후에 다시 출근할 수밖에 없지만 다음 주부터는 제대로 쉬자고 다짐해본다.



걷자....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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